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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5. 2023

"한낮에 직장건물을 나서니 눈이 쨍하니 부시다."

집 앞 공원을 오후 2시 무렵에 산책하다.





얼씨구나. 노는 것은 언제나 좋다. 룰루랄라. 한낮에 직장건물을 나서니 눈이 쨍하니 부시다. 손을 이마에 갖다 대어 햇빛을 가려 본다. 그 순간 역시...


'누가 나 두부 한모 사서 갖다줘잉'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누군가 고급승용차를 건물 앞에 대어 놓는다. 그리고 누가 냅다 뛰어온다. 천에 싸인 하얀 두부 한모를 입에 앙문다. 그 순간 '휘리릭' 길을 건너려는 순간 빠르게 도로가로 차가 지나간다. 나는 꿈을 깬다. 깨도 좋다. 오늘 반나절은 내가 내 의지대로 쓰려고 낸 것이다. 내 마음대로 하련다. 아 정말 좋다. 회색의 어두 컴컴하고 시끌벅적한 건물을, 그것도 한낮에 나서기만 하면 이렇게 환한 세상이 열리는 것.


일이 있어 며칠 전에 미리 반차를 낸 것이고, 월요일은 아파서 급반차를 낸 것이고. 자꾸 놀다 보니 노는 것도 방법이 있구나. 마침 몸이 회복되려던 차에 낸 것이라 더 좋다. 이런 한낮에 밖에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일까. 나는 늘 그것이 우선순위다. 바로 집 앞에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이 있으나 내려다만 보고 가본 지 꽤 됐다. 늘 바로 옆길로 지나다니지만 걸어서 산책한 지도. 봄에는 튜울립과 벚꽃으로 계절마다 갈아입는 공원의 사치스런 치마들. 아마도 지금은 국화가 만발했을까. 집에서 내려다보니 잘 보이진 않는다. 집에서 1분 거리라 집에다 차를 대고 공원으로 걸어갔다. 아... 입구에서부터 나는 이 향기... 오늘 단연 원픽은 천리향이다.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향. 소담스런 이 작은 꽃잎은 무엇에 비하랴.

(자태도 향기도 닮고 싶은 천리향. 중국에선 노란 구이화 향이 비슷했다.)

대부분 주말에 보니 매시 정각에 20여분을 분수쇼를 하고 밤에는 컬러음악분수쇼를 한다. 오후 2시 남짓 되었다. 이런 수요일 오후는 누구 차지일까. 입구에 들어서니 어르신 세분이 등나무밑 벤치에서 쉬고 계신다. 호수를 따라 도니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심겨 있다. 벤치마다 등산을 갔다 오신듯한 알록이 옷을 입으신 60대 초반으로 보이신 분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홀로 지팡이 들고 앉아 계신 어르신. 임산부에 남편과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나온 부부. 색색깔의 국화꽃을 따라 도니 앞머리에 양껏 힘을 주신 어머니 3분이 연신 분수를 중심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노랑 연보라 자주 흰 빛깔의 국화가 잘 가꿔져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던 꽃들. 무장해제하게 만든다.)

중간쯤 가니 가운데 데크에는 연인이 분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남자친구로 보이는 분이 포즈를 잡아주다 그만 2시 21분쯤 되니 찍으려는 순간 분수가 꺼져 버렸다. 실망을 한듯한 표정이지만 개의치 않고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그리고 나무 데크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하늘을 바라 보는 젊은 남자. 치앙마이 해외여행 얘기로 수다 삼매경에 빠진 젊은 여성들...


어디선가 여길 봐요... 동네사람들... 외치는 소리가 있어. 때 아닌 청둥오리 떼다. 혼자서 목주위를 주둥이로 쓸어내리고 꼬집고 누군가에게 보내는 수신호인지 알 길이 없다.

(직접 긁어 주고 싶었어. 너의 목을.)
(너무 귀여운 너의 자태들)

한 마리가 혼자 있는가 하면 무리 속에서 혼자 고함을 치기도 하고 따로 두 마리만 구석에서 다정하게 물속을 헤집고 다니기도 한다. 늘 3마리가 있었는데 오늘 보니 최소 10마리가 되는 듯하다.

(덜 외로워 보여 다행이야)

호수가 인공이다 보니 물을 한번 다 빼고 말린 후 다시 며칠에 걸쳐 물을 받았는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듯 물이 흐리다. 다만 다리 밑에 붕어류들은 다 어딘가 데리고 가서 비린내는 안 난다. 새로 생긴 것은 호수 정비를 위한 건지 보트를 띄울 수 있는 곳이 생겼다. 벚꽃나무들은 옷을 거의 다 벗어 몇 잎 남지 않고 월동 준비를 하는 것인지. 나무에 난 흰 버섯류들은 세월이라는 단어와, 노인과, 얼굴에 검버섯을 생각나게 했다.

(좌:벚꽃나무에 붙은 버섯류/우:새로 생긴 보트 터)
(벚꽃나무에 붙은 꽃잎보다 이쁜 나뭇잎들. 올 한해 고마웠어.)

여기저기 아름다운 풍경들 속에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름도 알 수 없는 풀들이다. 쑥부쟁이인가, 토끼풀들, 그리고 기다랗게 올라온 풀잎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아름답고 눈에 띄는 것만 찾으려 하고 도드라지려고... 튀려고 한 것은 아닌지. 그냥 사람들이 꽃이 아니라서 아무렇게나 밟고 지나가는 길 끝의 잡풀이 참으로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그 짙은 초록이 귀하게 여겨졌다. 그중 누구도 자기 모습을 내세우지 않고 비슷하게 웃자라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공생하는 모습으로 내 눈에는 보였다. 짧은 산책이지만 이래서 좋다. 걷다 보면 눈도 정화되지만 곳곳에 흩어진 자연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모두 다 귀하다는 것이다.

(오늘 너는 나의 주인공. 참 예뻐)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 다녀온 후 아들의 하교시간에 맞춰서 갔다가 집에 데리고 왔다. 간단히 간식 겸 저녁을 먹여 학원을 보냈다. 머리가 띵하고 어지럽고 새벽 5시 반에 설사를 심하게 했다 하여 걱정이 되었다. 나는 죽을 먹고부터 완전히 회복되었고 오늘은 이전 기운까지 되찾았는데... 아들이 조금 걱정이다. 딸도 오전에 설사를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이런 컨디션인 가운데 나는 저녁에 외래 전체 회식에 가려고 하는데. 안 가려고 하니 장이다 보니 얼굴이라도 비춰야 할 것 같아서. 일단 마무리하고 다녀와야겠다. 집에서도 퇴근시간이 다가옴을 느껴야 하다니 이상한 꼴이다. 제발 욕심내지 않고 맛난 음식들을 돌보듯이 하고 와야 할 텐데.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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