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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9. 2023

"인생도 결국은 혼자 지고 가는 것이 아니던가...."

일요일 금정산 라이딩 이야기





토요일 오후에 피곤이 몰려와 낮잠을 많이 잔 탓인지 임도길의 자전거 라이딩을 앞두고 오늘 새벽 내내 뒤치닥거렸다. 금정산 동문에서 남문에 걸쳐 북문으로 가는 길이라니. 한 번도 가보지도 못했고 가볼 생각도 못해 본 길이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나. 걍 가기로 했다. 같이 타는 동생이 언니가 가면 무조건 고라면서 유튜브에 올라온 길을 한번 보라고 했다. 안 봤으면 더 좋았을 것을. 11분짜리 동영을 보고서 북문의 업힐(오르막)에 기가 꽉 막혔다. 업힐이 심하면 다운힐(내리막)은 당연한 것. 자전거를 타다 보니 다운힐이 더 고수의 경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기가 꽉 막힌데도 출발을 하는 걸 보면 나는 사오정이 된 셈.

(장난치면서 사진찍고 노는 모습들.)

오늘따라 금정산 북문으로 올라가는 길은 번호표를 가슴에 달고 등반 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고 있는데 유독 눈에 띈 것은 가족과 애완견 등에 261번이라는 번호표를 달고 등반 중이었다. 심지어 4-5살로 보이는 아이까지 등산 스틱을 양손에 들고 북문으로 오르고 있었다. 리더와 주행 대장은 라이딩을 갈 때마다 거짓말을 한다. 이제 업힐은 이게 끝이다나 조금만 가면 된다고 해놓고 가다 보면 몇 킬로나 더 있으며, 업힐이 몇 개 안 된다 해놓고선 가다 보면 초보인 라이너에게는 힘에 부치는 것이 여러 개다.


힘이 들어서 달릴 때는 거의 구경을 하지 못했고 금정산 북문 마지막 코스 1킬로를 남겨두고는 도저히 자갈길인 데다 미끄럽고 등반객과 뒤섞이다 보니 자전거를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보지 못했던 단풍이 보이고 여러 사람들이 눈에 더 들어오기 시작한다.

(금정산 북문에 이르는 등산로옆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모습)

큰 너럭바위 위에서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 오신 분들은 진짜 각양각색의 부류다. 의외로 학생들도 많았는데 삼삼오오 얘기를 하면서 오르고 내리는 모습이 학원 간 아들을 생각나게 했다. 역시 가장 많은 부류는 60-70대로 보이는 분들과 머리가 희끗거리나 나이가 가늠이 안 되는 육체적인 포스를 지니고 바람같이 오르는 분들도 참 많았다. 역시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평소에 얼마나 건강관리가 잘 되었는지 끌바를 하고 가면서 여러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드디어 북문 정상을 앞두고 끌바를 하던 나는 주행대장으로 계신 분이 북문을 50미터도 남겨 놓지 않은 구간에서 숨어서 다시 평지가 짧게 시작되니 자전거를 밀어줄 테니 타라고 했다. 아 그래서 나는 눈속임으로 마치 그 힘든 구간을 오른 개선장군처럼 자전거를 타고 북문입구에 당도했다. 박수를 박으면서. 좀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북문에 오르니 그림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그림 전시회가 열리는 모습들)
(좌:북문 인증샷/우:누가 이렇게 날씬하게 도촬했니...)

나는 다시 이 길 그대로 내려간다는 말에 아찔해 왔다. 하지만 내려가는 길은 이미 오면서 길을 익혔고 끌바를 해도 오르막보다는 쉬웠다. 그리고 웬만큼 단련이 되어서 내리막은 거의 자전거를 탄 상태로 내려갔다. 이후 우리 일행은 금정산성에서 오리 백숙을 먹고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서 동래지하철 분수대로 무사히 귀원하였다.


집으로 오니 무려 327장이라는 사진이 쏟아져 있다. 영상도 어디서 이렇게 도촬이 된 것인지 부끄러워서 보지도 못할 것들도 있다. 대체 우리 같은 초보를 데리고 제대로 즐기는 라이딩도 못하면서 이런 모임을 운영하는 것일까. 리더와 주행대장 그리고 공동리더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깊이 일어났다. 갔던 길을 수십 번 돌아온다. 뒤에 처지는 사람들 밀어 주기도 하고 초보들에게 앞과 뒤에서 세트로 붙어서 밀착라이딩을 한다. 체력은 아마 몇 배로 소진될 것이다. 그래도 짜증내거나 지친 기색이 없다. 정말 진심이다 이 사람들. 자전거실력도 최고지만 남들을 먼저 챙기는 이타심은 더 최고다.


마지막으로 이번 금정산 라이딩으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용기이다. 그렇게 가파른 등산로를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6일 동안 출근하면서 일을 하면 비워야 할 것이 많다. 그리고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은 더 많다. 혼자서 인내하면서 페달을 밟으며 때론 급경사를 완급 조절하면서 오르내리다 보면 자전거위에선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키는 오로지 내가 쥐고 있는 것. 직장일 뿐만 아니라 인생도 그러하지 아니한가. 아무리 주위에서 뭐라고 해도 결국은 혼자 지고 가는 것이 아니던가. 전날 밤 차에서 밤을 지새운 자전거는 오늘 하루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준 일등 공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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