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이 취소되고 나는 혼자 라이딩을 나갔다
경주 오봉산 마당바위 라이딩이 계획되어 있었다. 토요일 퇴근하여 안 먹던 과자(아픈 뒤 손을 대고 난 뒤부터 큰일이다.)며 롤케잌 3분의 1, 우유 1.5잔, 홍시 2개 그리고 조미 김에 밥 서너 개 싸 먹고, 그것도 모자라 나는 너구리에 달걀 1개, 양파 반 개, 그리고 쉰 김치를 넣어서 타이머 5분을 맞추어 푹 끊인 것이었다. 너무나 맛이 있어서 순식간에 먹었지만 도저히 국물까지 다 먹으면 배가 터질 것 같았다. 거실에서 창 밖을 쳐다보니 비가 부슬부슬.
아 배가 너무 불러서 미칠 것만 같았다. 아리아에게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과 스피카에 [투나잇]을 신청하고 나는 폰으로 가사를 검색해서 목이 터져라 불러 댔다. 고함을 질러야 소화가 될 거 같아서. 평소 안 하던 짓을 했던 것이다. 한참 투나잇의 고음을 발사하고 있는데 아들이 문을 열고 나와서 [시끄러워요] 고함을 지르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아들과 실랑이가 붙었다.
-너는 엄마가 이런 적이 있었나?
-아니요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아니 없어.
대화가 우습기는 한데 엄마가 오래간만에 소화시킨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진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데 아들이 찬물을 끼얹어서 나는 정말 화도 났지만 너무 서운했다. 엄마가 먼저 잘못한 게 맞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더 좋잖아. 엄마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 뭐 이렇게. 엄마 저도 오늘따라 너무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랬다고요. 언제 제가 그런 적이 있어요? 대화가 두어 번 반복되더니... 나는 울음부터 터졌다. 너라도 엄마에게 예쁘게 말하면 좋잖아. 엄마랑 잘 안 지내서 좋은 게 뭐가 있어. 엄마도 너랑 잘 지내고 싶어. 늘 말이야... 당장 아리아에게 다 끄라고 명령했다. 이미 소리를 질러서 소화도 되고 아들과 언쟁을 하니 기가 빠져서 그냥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리클라이너 소파에 뻗어서 잠을 잤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벽의 디지털시계만 5시 14분을 가리키며 환히 빛나고 있었다. 밴드 리더가 전화가 왔다. 비가 와서 내일 경주 오봉산 마당바위 라이딩은 취소입니다. 아 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으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리더는 남자인데 새벽 5시 14분에 여자인 나에게 전화를 하다니.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소파 위에서 잠을 청했다. 아뿔싸... 오후 5시 14분이구나... 바깥을 보니 비가 추적추적. 아들과 실랑이 후 완전히 잠에 빠졌고 비몽사몽간에 전화는 받아서 하마터면 나는,
"내일 라이딩 갈려고 다 준비해 놨고, 지금 새벽 5시가 조금 넘었으니 곧 일어날게요."
할 뻔했다. 그리고 나는 잠을 더 잤다. 밤 9시 무렵 일어나니 밴드에 새로운 소식이 떠 있었다. 오봉산은 폭파되고 여여정사 벙개(번개)로 간다는 것이었다. 물금취수장에 아침 7시 30분에 모여서 비 오기 전에 빠르게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밤이 되니 비는 그쳤다. 나는 살짝 고민이 되었다. 여여정사도 처음 가보는 곳이요. 맘에 걸리는 것은 원동 2고개 3고개이다. 비 온 길을 또 고개를 넘어서 가야 한다니. 이것은 무리다. 그리고 아침에 그렇게 일찍 출발하다니 오직 하루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인데 싶어서 안 간다고 의사표시를 분명히 했다.
다음날이 밝았고 이런 날은 아침에 눈이 빨리 떠진다. 바깥을 보니 날씨가 너무 좋다. 구름이 끼어 있긴 하지만 라이딩하기에 너무 좋은 날이다. 아직 자고 있는 아들과 딸을 위해 일찍부터 고기를 볶았다. 밥도 새로 하고 우선 아들 주짓수 도복부터 세탁해서 널었다. 대충 싱크대며 거실을 정리하고 밥을 먹으라 하니 조금 더 자고 학원과 알바를 간다고 한다. 오전 10시에 정확히 라이딩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냥 집 앞 해반천 32킬로를 달릴까, 경치가 너무 좋은 가야진사공원을 경유하는 물금 취수장으로 갈까 잠시 고민을 했다. 나는 이미 낙동강변을 따라 화명동 물금 취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비예보때문인지 평소에 비하면 라이딩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다만 카메라 동호회인지하는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갈대옆으로 걷고 있었고, 가야 진사공원옆 골프 연습장에는 단체 야외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스무 명 정도 있었다. 타고 가다 보니 대학생 무리들이 또 40명 정도 낙동강변을 따라 걷고 있었다. 나는 삼랑진 다리 밑까지 한 바퀴를 돌았다. 38킬로 정도의 평지로만 달리기에는 운동이 되지 않아 나는 다시 같은 길로 한번 더 갔다. 반환점을 돌려고 하는 순간 여여정사에 다녀온 팀원들을 그곳에서 만났다. 나에게 왜 미리 온다고 연락을 안 했냐고 했다. 나는 만날 수는 있겠지만 혼자 온 것이기에 연락할 필요가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혼자 달리면 빨리는 가지만 사실 재미가 덜한 것은 사실이다. 다시 만난 팀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머지 19킬로를 신나게 달렸다.
마지막 4킬로를 남긴 지점에서 우리는 공원의 정자에서 메로나를 사 먹었다. 여기서부터 내가 느낀 진짜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