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소된 라이딩으로 딸과 아들이 걱정하는 엄마를 바라보다.
정자에 앉아서 메로나를 먹고 있었다. 한 9명 정도 된 거 같다. 대표리더가 한 번도 안 쉬고 계속 라이딩을 나가니 공동 리더를 맡아 달라고 연락이 왔었다. 대표는 한 명이고 공동리더는 10명 정도나 두는 밴드 시스템이었다. 이러면 공동 리더들만 라이딩을 꾸려도 늘 문제없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은 맞다. 5번 넘게 거절을 하였다. 나는 자전거가 좋아서 가는 것이고 어딘가에 매이는 것은 누구보다 싫어한다. 그렇게 같이 타는 친구에게도 물어보니 굳이 네가 그런 거 안 맡아도 맡을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단칼에 계속 거절하고 있었다. (근데 단칼이 아니라 플라스틱 칼이었나 봐.) 둥그런 정자 의자에 앉아서 메로나가 더운 날씨에 녹아내리는 가운데.
"자 지금 공리(공동리더)들이 거의 다 모였는데 J 씨를 공리로 임명하는 것 어떻습니까?"
다들 박수를 쳤다. 만장일치로 내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그럼 공리가 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했다. 이게 뭔가. 나는 다수의 횡포라고 말했다. 나는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친한 친구와 예전의 이 모임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자꾸 칭찬을 했다. 정말 잘 탄다. 근육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 끈기로 조금만 따라다니기 시작하면 금방 늘겠다. 나는 그 말들을 다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그러나 어제 우연히 여여정사 갔다 오는 팀들과 다시 맞닥뜨리면서 처음으로 그들의 칭찬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 여자 공리가 더 필요한 것이구나. 내가 잘 타서... 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어디서 그런 마음이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말하는 태도 혹은 그들의 공동 이익을 위해서 나를 섭외한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4킬로를 달려서 물금 취수장에 도착했다. 인사를 한 뒤 각자 헤어졌다. 나는 자전거 핸들 바가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라이딩하던 언니 부부와 함께 근처 자전거 가게로 갔다. 내 핸들 바는 알루미늄이라 은색 절단기를 가져와서 금방 양쪽 3센티씩 잘라 내었다. 언니의 자전거 핸들바는 카본이라 길이를 정확히 재고 특수 톱을 가지고 와서 힘들게 절단을 했다. 카본이다 보니 자르기도 힘이 들었고 다 절단 후 언니의 자전거는 다시 사포질 같은 걸 해서 절단면을 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스프레이를 가져와 뿌리고 물티슈로 닦아내었다. 뭐지 생각이 들었다. 내 자전거는 알루미늄이라서 그런가 사포질도 스프레이로 뿌려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사장님이 말했다.
"누님(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왜 갑자기 누님이 되는지 알 수 없다), 누님 자전거는 이 핸들바 카본으로 바꾸셔야 해요. 강매는 아니에요. 이탈리아 산은 너무 비싸고 독일산으로 15만 원 정도에 살 수 있는 제품이 입고되어 있어요. 타다가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나는 늘 같이 가던 속된 말로 이빨이 센-입담이 조금 거친-친구와 같이 가지 않은 것이 조금 후회가 되었다. 언니부부 두 사람은 비싼 자전거이기도 했지만 둘이서 알뜰이 서로를 챙기고 있었다. 나는 물티슈를 빌려서 기어가 있던 자리에 난 먼지흠을 빡빡 닦아냈다. 이래서 둘이어야 하는구나 잠시 생각했다. 혼자 점심을 못 먹은 상태라 국수를 한 그릇 먹고 돌아오니 거의 작업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혹시 제 자전거 속도계 보셨어요?"
나는 핸들도 자르고 앞부분의 속도계 꽂던 자리도 더 낮게 처리해 달라고 했다. 이제 그 자리엔 속도계를 꽂을 수가 없다. 속도계가 없어져 여기저기 속도계 봤냐고 묻고 다녔다. 한참을 지나도 못 찾자 사장님이 CCTV를 돌려야겠다고 했다. 언니부부와 나 모든 사람들이 주머니에 있는 것까지 다 꺼내 놓았다. 나는 차 열쇠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 등 뒤 상의 주머니에서 두 개나 나왔고 하나는 차 열쇠 하나는 그렇게 찾던 속도계였다. 너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참으로 미안했다. 혼자서 온통 물 흐리며 단디 수리를 해달라는 사족까지 달면서 자전거 가게를 나서니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집으로 자전거를 싣고 돌아왔다. 아들 저녁을 챙겨주면서 자전거 이야기를 했다. 뭐가 달라졌는지 보라고 하니 아들은 단박에 속도계 자리가 밑으로 더 내려간 것과 핸들바가 짧아진 것을 알아냈다.
"S, 사장님이 알루미늄을 카본으로 바꾸래. 비용은 15만 원 정도 한대."
"엄마 그래서 한다고 했어요?"
"아니 안 한다고 했어. 그걸 하면 몸에 충격 흡수를 덜 받는대..."
"저도 알아요. 엄마 안 하시기 정말 잘하셨어요. 오늘 엄마가 한 것 중에 제일 잘했네. 잘했어.
어떻게 알아요. 그게 독일산 인지 뭔지... 그리고 또 엄마 우리들한테 의견도 안 물어보고 막 교체했다가 또 속아서 들어와요. 엄마 오늘처럼 담부터 그런 자전거 부품 교체할 일이 있으면 우선 저한테 물어보고 하세요."
나는 벌써 중 3인 아들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다. 이 나이에도 잘 속는다. 사람들 말을 잘 믿는다. 혼자 상처받고 말도 못 하고 끙끙댄다. 잘 속진 않지만, 그만큼 밖에서 사람들과 교류를 안 하니깐. 동생은 내가 언니임에도 왠지 모르게 물가에 내놓은 애 같다는 소리를 자주 했었다. 내 딴에는 최선의 선택을 했음에도 다 듣고 나면 정말 그렇게 대단할 수밖에 없는 혜안을 동생이 제시한다. 큰 언니도 별일 없냐고 애한테 묻듯이 정기적으로 전화가 온다. 니만 행복하면 우리 자매는 걱정이 없다고 한다. 자기 몸이 그리 아픈데도 말이다. 동생은 걱정할게 전혀 없고 내가 아픈 손가락이란 말이다.
아들과의 대화가 끝나고, 딸은 안방문 앞에 나는 거실 유리창에 기대어 섰다.
"H야 나 정말 왜 이러니. 아직도 말이다. 난 있지. 라이딩 대표리더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어. 정말 내게 호감이라도 가는 듯 친절했고. 뭐든지 잘한다고 했어. 속도를 30 이상으로 달린다느니. 정말 장난이 아니라고 말이야. 그리고 다른 라이딩 친구들도 잘한다 잘한다... 이런 소리들을 계속하니 정말 내가 잘 타는 줄만 알았지... 근데 말이야... 그게 아니야. 모든 것은 그게 아니었어. 다들 날 이용하는 것 같아... 정말이야 정말로..."
딸 H는 가만히 듣고 서 있었다.
"엄마 모든 걸 다 그렇게 생각해 버리세요. 그게 다는 아닐 거예요. 그렇지만 사람들 하는 말은 다 믿지 마세요."
"나는 왜 이 나이가 되도록 남이 하는 말이 칭찬인지 가식인지 구분을 못하도록 생겨났는지 모르겠어. 나는 정말 아직도 잘 모르겠어. 사람들이 하는 말의 의도를.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것을. 하물며 내가 좋아하는 동호회도 그런데 직장은 어떻겠니. 모두들 나를 잡아먹으려고 설치는 거 같아."
"엄마 너무 그렇게 자책하지 마세요. 밖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 다 믿지도 마시고요."
나는 이렇다. 내가 말하려는 요지는 그렇다. 이렇게 지천명의 나이에도 남들 얘기에 속고 진심으로 거짓을 다해? 얘기하면 그대로 믿게 된다. 그리고 혼자서 심하게 상처도 받고 울기도 하고. 이젠 아이들 둘이 그걸 알아 버린 나이가 되었다. 아직 중 3인 아들도 대학생인 딸도 그렇게 엄마를 걱정하고 아낀다. 그래서 때론 모든 세상일을 다 놓고 떠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저렇게 사랑스러운 두 아이가 있으니 말이다. 나는 언제쯤 철이 들까. 언제쯤 동생도 언니도 심지어 내 딸과 아들까지도 걱정하지 않는 그 나이가 오기는 하는 걸까. 나는 그렇게 철없이 부족한 엄마이다. 안 보고 있을 것 같은 아이들도 엄마가 어떤 상태인지 나보다 더 예민하게 느낀다. 그래서 나는 가끔 눈물이 난다. 내가 이렇게 못난 엄마가 저런 보석들을 낳았다니. 어디서 저런 것들이 이 세상에 선물로 내게 나타난 것인가.
자전거 타는 것은 인생과 닮은 점이 정말 많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욕심내는 것도. 기어 조절이 안되면 실패하게 되는 것도. 자전거 타기를 통해 나는 다시 보았다. 아들이 엄마 걱정을 하고 있단 걸 딸이 엄마가 어디 나가서도 주눅 들지 않길 바라고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까지. 오봉산 라이딩이 취소되고 혼자 낙동강변 라이딩하면서, 밴드 라이딩족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그리고 딸 아들과 대화를 하기까지, 취소된 라이딩은 그에 못지않은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을 삶의 영역을 되새김질해 주었다. 그나저나 저는 언제 철이 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