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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04. 2023

"나 자신의 존재만으로 아름 다울 순 없는가..."

토요일 아침 출근 전 11월 어느 날의 짧은 사색

 




아 운명적으로 글을 쓰라는 뜻이구나. 지금 흐르고 있는 이 곡*을 들으면 왠지 눈물부터 나려고 한다. 방송에 잘 나오지 않는 곡인데 어제오늘 이틀 연속으로 라디오 클래식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지금 현재도... 내가 이 곡을 제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이 곡을 듣고 내 기억 때문에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길 바란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나에게 너무 애절하게 [왜 안 되나요?]라는 물음을 던져 주었다. 그리고 숨이 막히게 만들었고 그러다 눈물이 솟구치게 만들었다. 그러면 달래 주는 듯하다가 결국은 모든 답은 네가 찾아라 하는 식이다... 곡이 끝나자마자 디제이는 말한다.


"노투르노 이곡은 밤에 듣는 음악입니다. 하지만 아침에 들으니 어떠신지요? 첫곡으로 오늘을 시작해 봤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욕실에서, 거울에 얼굴을 오래 비춰 보았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어제 자기 전에 책 읽으며 연속해서 먹은 꼬깔콘 옥수수맛과 초록 감자칩 때문인지 눈 두덩이가 부었다. 생로병사의 비밀을 예전에 볼 때 여성의 얼굴이 어린이에서 노년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빠르게 돌리는 장면이 있었다. 놀라우면서도 저렇게 서서히 변해가니 어느 순간인지 알 수가 없지만 내가 노화 되어 가는구나를 시각적으로 섬뜩하게 느꼈었다. 오늘 아침에 나는 욕실 거울 앞에서 노년 초입으로 들어가는 듯한 맨 얼굴을 보았다. 아주 섬세하게 눈가며 입술옆 팔자 라인이며 눈썹옆라인도 그렇고 아주 미세하게 이마에 자리 잡으려는 주름도 보였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안방 아주 작은 화장대 옆 창문으로 가을로 넘어가는 땅 위의 나무와 경운산을 훑어보았다. 이 지역은 며칠 전 메인뉴스에 아직 한여름이라며 전국 최고 31.2도라는 뉴스가 떠서인지 산은 푸르러 보인다. 그리고 거실로 시선을 옮겨 공원을 보았다. 며칠 전 동생이 와서 공원에 단풍이 들면 오리라 했는데 벌써 단풍이 다 들고 잎이 떨어져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길에 아침운동하는 사람이 무슨 색깔 옷을 입었는지 다 보인다. 한참을 뛰는 사람들 시선을 따르며 쳐다보니 잠이 완전히 깼다. 소파 위에는 어젯밤 읽던 책들 4-5권이 널 부러져 있다. 책은 제대로 못 읽고 졸음에 겨워 과자 두 봉지만 비워내고 침대에 드러누웠나 보다...

싱크대로 옮겨가니 어제 먹은 콩나물 비빔밥 빈 그릇들이, 그 마저도 서로 의지하며 포개지고 붙어서 있다. 오늘도 일을 가야 하니 먹어야지. 다른 곳에 시선을 뺏긴 아침이라 콩나물 양념장 두 스푼을 걷어 올려 뜨거운 밥에 부었다. 그래도 양념장 안의 잘게 썬 양파의 단맛은 느껴졌다. 밥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비벼먹은 후 출근 준비를 한다. 아침부터 생각이 다시 도사리며 온다.
  

정녕 나는 나 자신의 존재만으로 아름 다울 순 없는가. 그렇게 아름답게 비취던 귀밑 흰머리마저 오늘은 노년의 향기가 나는구나.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그 이름.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는 듯한 나를 언제까지 기다리며... 김춘수의 그 의미 있는 무엇이 되려 하는 것인지. 나의 존재자체만으로 빛나게 느껴지던 삶들이 누군가의 사랑으로만 채워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참으로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가을의 문턱에 서있는 나약한 모습들을 십일월 어느 날 보고야 만 것이다...


*https://youtu.be/4_hlgDeg3T0

(제가 최애 하는 곡 5번째에 드는 곡입니다. 여유가 되시면 꼭 감상해 보세요. 슈베르트 노투르노 피아노 3중주 89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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