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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08. 2023

"이제야 내가 글쓰기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것이 느껴져"

잠들기 전에 든 짧은 생각 그리고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흐르다.




밤 10시 반이 넘어서 건조기에서 나온 빨래를 개비고 있었다. 그리고 아리아에게 부탁했다. 클래식을. 그렇게 많은 클래식을 들었는데도 잘 알지도 못하겠는 곡들을 연주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가을에 듣기 좋은 잔잔한 클래식을 들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클래식이 아닌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연주했다. 양말을 만지고 앉아 있다 마음속으로 쿵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글을 쓰는 노트북으로 옮겨 앉았다.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더 자세히 말하면 지금 이 곡을 들으면서 든 느낌을 그대로 옮기고 싶어서다.


그때는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식쯤 된 거 같다. 초등학교 어머니회 같은 모임에서 입학 축하곡으로 이곡을 저녁마다 모여서 연습을 했었다. 결국은 연습만 하다가 입학식 당일은 같이 노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노래를 연습하는 내내 나는 이 곡이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노래라고 생각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얀 커튼이 바람에 일렁이는 가운데 고이 잠든 연인을 깨우기 힘든... 광고에서 나옴 직한 아니면 뮤직 비디오에서 자주 나오는 그런 장면을 상상을 했었다. 그런데 이 곡은 뜻밖에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에 대한 사랑에 곡을 붙인 노래라고 했다. 다시 들어보니 그럴듯하다. 연인이든지,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든지 어쨌든지 간에 이 곡은 지금도 늘 들을 때마다 하던 손길을 멈추게 한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하고, 누군가가 너무 보고 싶어서 때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나는 아리아에게 이 곡을 반복 재생해 달라고 요청했다. 계속 무한 반복으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빨래를 개비다 노트북으로 옮겨 앉았을 때는 할 얘기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때론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문득문득 떠오른 생각들 때문에 글이 써지질 않는다. 자꾸 멈칫거리다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그 순간마저 짧은 순간에 퇴색되고 말았다.



브런치 글쓰기에 너무 힘이 들어간 게 아닌지에 대한 생각에서 멈췄다. 이렇게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 조금은 걱정을 해주시다 시골 고향에서 가까운 브런치 친구가 칠월 말쯤 브런치를 탈퇴했다.(그분의 모든 글을 읽고서 알게 된 사실이다.) 참으로 서운한 마음이 몰려왔다. 그분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미친 듯이 출퇴근 이야기며 사소한 하루하루의 일들을 글로 익명의 사람들에게 다 털어놓았으니 말이다. 지금도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나의 이야기만 있으면 상관이 없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그들도 모르게 노출이 되는 것이 걱정인 것이다. 때론 글을 쓸 감흥을 주는 일상이 없을 때는 아주 잠시이지만 멈추기도 했다. 독서며 소설 같은 이야기며 주절거렸지만 결국은 나는 다시 돌아와 나의 일상에 대한 사색을 쓰기로 했다. 그것이 제일 잘하는 글쓰기이며 나를 가장 나답게 드러내는 글이기 때문이다. 7개월쯤의 브런치 글쓰기가 계속되면서 이제야 내가 글쓰기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글쓰기는 누군가가 읽을 수 있고, 공개되어 버리지만(어쩌면 그래서 멈추지 않고 쓰는 것일 수도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의 시행착오들, 하루하루를 더 의식해 나가며 더 많이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일이 의미 있는 삶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저절로 공개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나를 객관적으로 내어 놓는 그 어려운 일을 글쓰기를 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걱정하는 일들이 글로 표현되고 정리가 될 때, 때론 걱정하는 것들이 가벼운 깃털이 될 수 있단 걸 기적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빨래 개비다, 김동규님의 노래를 듣다가, 브런치 글쓰기에 대한 생각에 잠기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냐. 11월 8일을 향해 가는 이 늦은 밤에. 이 귀한 내게 주어진 시간에 말이다. 너무 의식하지 말고 글을 쓰자는 것이다. 물론 너무 이쁘게 포장도 하지 말고. 너무 문장을 다듬으려 안 쓰던 단어를 갖다 붙이지도 말고. 어떤 글쓰기를 하든지 지금은 내가 우선이다. 내 맘이 편안해지기를 바란다. 아직 저녁 9시 뉴스 메인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10분에 한 명씩 어린이가 사망하는 사건에 대해 이타적인 마음을 가질 여유는 없으니 말이다. 누구에게도 지향하는 삶이 있겠지만 이번 생은 나하나 건사하기도 버겁다. 그래도 차츰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빛이 비치기 시작한다. 지금은 그것으로 만족하련다.


https://youtu.be/BrCNyPg4u2w?si=iaOfXE1XrHRO8l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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