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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0. 2023

"며칠 전 새벽,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안 바쁜 오늘 하루를 마감하며  쓰는 글





창문을 열어 보니 약간 음산한 기운의 바람이 분다. 순간 차가움이 15도 각도의 창문 방충망사이로 밀려와 바로 훅 닫았다. 그리고 평소 오후 5시 15분의 밝기보다 더 어둡게 느껴진다. 무슨 일인지 어제 오후와 오늘 종일 한가하다. 오너들은 직원이 이런 소리를 하면 참 많이 힘드실 거 같다. 근데 이상하게 안 바쁘면 나도 좋아야 하는데 덜 신나고 더 힘들다. 늘 내 방에서 조잘거리는 소리가 나야 하고, 신이 나고 마스크 안 입꼬리가 요동치며 눈웃음이 번져나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사람을 상대하고 만나는 게 좋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더 드리는 일이라면 퇴근도 점심도 마다하고 도와드린다. 갑자기 자랑질을 하는 건가.(그냥 조금 이쁘게 봐주길 바란다...)

안 바쁘면 책을 꺼낸다. 늘 두 권씩 검은 쌕에 들고 다닌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말이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그냥 불안하다. 그런데 오늘은 도통 책이 들어오질 않는다. 밴드에 들어가 봤다. 여전히 자전거에 미친? 사람들이 있어 지리산 노고단까지 혼자 라이딩을 하고 동영과 사진이 쭉 올라왔다. 거의 자전거 영상과 출석체크하는 좀 웃기는… 나는 이것이 좀 웃기더라. 예를 들면 하루를 웃으며 시작해요와 함께 여러 가지 그림이 그려진 시화 같은 것들이 올라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최신곡이나 추억 돋는 곡 하나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분의 노고에 또한 감사드린다. 눈으로 금방 훑고 이모를 날려드린다. 꼭 좋아서라기보다 함께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과 시간 안에 공유하는 그 느낌을 즐기는 것이다.

안 바쁘다 보니 쓸데없는 짓을 했다. 내가. 브런치에서 혼자 듣기 아까운 두곡을 올렸다.(그레고리 포터곡 한곡과 루머의 Slow 이렇게 두 곡) 내가 너무 좋아하는 고구마와 대봉감 홍시라도 하나 나누는 마음으로 말이다. 다들 일할 오전 시간이니 반응이 없겠지.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 오후에 반응이 궁금하기도 해서 들어갔더니 글쎄. 루머곡은 남고 그레고리 포터 곡이 사라졌다. 전에 나도 아들이 초등학교 오케스트라 악장이어서 어머니회장이 자동으로 되어 밴드를 운영해 봐서 안다. 누가 읽고 나갔는지도. 수없이 글이 올라가자마자 읽어도 한 번도 관심을 표하지 않는 단원 엄마도 많았다. 근데 내가 올린 곡이 사라져 버렸다. 누가 이렇게 한 것일까. 밴드 분위기를 이상하게 조장한 것도 아닌데. 루머곡은 그대로 있었다. 아 나는 깨달았다. 여긴 자전거 밴드지. 안 바빠서 쓸데없는 짓하고 상처 비스무리한 것을 받고 있구나. 그래서 깔끔하게 루머곡도 내가 지웠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나는 다음부터는 밴드에 쓸데없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나눠먹는 마음으로라도 노래를 올리지 말아야지 하고 말이다. 이렇듯 사람은 간사하고 큰 일보다 작은 일에 마음이 쓰이며 기분 상한가 보다 하고.

요즘 브런치 글쓰기에 대해 생각을 좀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의 글을 좋아하는지 취향도 알게 되었다. 우선 여전히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구나 느꼈다. 둘째 글쓰기에 관심이 많구나 느끼고. 세 번째 잔잔한 일상을 알려주는 특별함이 없는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버리는 사색(어떤 작가님 표현을 빌렸다.)을 좋아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느낀 거지만 나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구나 느낀다. 요즘 이사를 해서 오래된 집을 고치고 사진과 올라온 글이 너무 좋다. 자꾸 기다려진다. 화장실 거실 방창문까지 올라왔다. 누구의 글이든지 간에 소중하지 않은 글은 없으리라. 그냥 글을 올려주시면 그런대로 편안하게 읽는다. 재미도 느끼고 감동도 느끼고. 무엇보다 한 분 한 분의 글이 그 작가님에게 가장 소중한 글일 것이기 때문에. 또 내가 그렇기에. 좋아요 누를 때마다 들어가서 다시 정독해 보는 것 같다.



며칠 전 새벽,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거실 통창은 다 열려 있었고. 티브이 앞과 소파 뒤쪽이 다 열려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간간히 차가 지나가는 소리, 오토바이 빵빵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내가 어디에 누워있는지 의식이 되면서도 순간 나는 중국에 잠시 거주할 때를 떠올렸다. 내가 누운 방향이 어디며 어디에 있는 것인지. 중경삼림의 스텝프린팅의 촬영기법이 스쳐 지나갔다. 새벽은 밝아오고 가는 연속적인 가로선들이 엉켜서 커다란 실루엣을 일으켰으며 순간 나는 영화 속 임청하가 된 것처럼 금발의 가발과 트렌치코트를 입고 그렇게 생의 사선으로 달려 나갔는지도. 그 몽환적 느낌은 며칠이 지나고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https://naver.me/xUSEulKc

(이전에는 양조위 장면이 좋았다. 허나 지금은 금성무와 임청하. 더 자세히 말하면 임청하가 나오는 장면이 더 와닿는 것은 20대의 풋풋함보다 지금의 나를 더 사랑하는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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