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Dec 14. 2023

"만 15세의 아들은 성큼 자라 있었다."

아들이 주짓수 지역 A컵에서 은메달을 따다




"엄마 빨리 데리러 와 주실 수 있어요?"


지난 토요일 오후 1시에 퇴근해서 집에서 급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아들이 주짓수 대회에 나갔다. 저번에는 쉬다가 다시 나갔기에 힘도 못쓰고 한 명도 못 이기고 돌아왔었다. 새로 시작한 지 보름 만에 나갔으니 조금 서운했지만 당연한 결과라 받아들였다. 이번에 또 A컵이라고 지역에서 하는 대회였다. 회비 6만원을 입금시켰다. 그리고 손가락에 테이프도 감아가며 맹훈련을 했다. 너무도 주짓수 종목을 좋아하기에.


일하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초등부부터 일반부까지 있다고 해서 중등부는 시간이 좀 걸릴 거라 생각은 했다. 아침 9시에 무조건 도착해서 체급에 따라서 몸무게 측정이 있어 아무것도 안 먹고 나간 데다 누나가 이미 심한 독감 A가 걸려서 전염이 된 상태였지만, 대회에 꼭 나간다고 했다. 그냥 스트레스를 풀고 왔으면, 이왕이면 메달을 따면 좋긴 하겠다.


오후 3시까지 공설 운동장에 도착하니 아들이 멀리 보였다. 노란 짧은 여름 반바지에 상의는 겨울 아우터, 그리고 스포츠 가방을 메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앉아서 손짓하는 폼이, 몸이 안 좋아 보인다. 서둘러 차를 주차해서 아들을 태웠다.


"엄마 오늘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은메달 땄어요. 초등부부터 시작해서 제 경기는 오후 12시 정도에 시작되었는데, 아침에 몸무게가 0.3킬로 정도 더 나가서 빼려고 막 뛰면서 왔다 갔다 했는데 머리가 핑도는거 같았어요. 그리고 11시가 넘어서 식은땀이 쫙 나더니 온몸이 떨리고 머리가 심하게 아팠어요. 코치님이 보시더니  [S야 무리하지 말자. 너 시합 안 해도 된다. 지금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했어요. 그래도 엄마가 6만원이나 회비를 주고 보내주셨는데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타이레놀 1알을 얻어먹고 벤치에서 잠깐 잤어요. 두통은 덜했지만 한기가 났어요. 일단 경기에 들어가서 1명을 제치고 체급에서 동메달을 땄어요. 아 근데 엄마 저 금메달 딸 수 있었는데. 경기에서 비기너일때와 아닐 때 점수 주는 방식이 틀려요.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 둘 다 비기너가 아니었는데 심판이 상대를 비기너라고 생각하고 점수를 줬어요. 코치가 심하게 항의를 했어요. 그런데 이미 판정이 났으니 되돌릴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코치님이 다시 와서 [S야 너 오늘 금메달을 딴 거나 마찬가지야. 오늘 정말 고생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엄마 저도 그냥 인정했어요. 그리고 금메달 딴 친구도 내게 와서 [오늘 좀 그랬다...]며 본인도 인정은 했어요. 그래서 그냥 은메달에 만족할게요."


엄마인 나는 [그래도 엄마가 6만원이나 회비를 주셨는데 포기할 수가 없었단] 말에 조금 찡했다. 그러나 아무 표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아들은 계속 말을 해댔다. 힘은 없었지만 목소리는 밝다.


"엄마 이것 보세요. 은메달이에요. 그리고 이것도 받았어요. 도복요. 근데 저한테 안 맞을 거 같아요. 그냥 팔까 생각 중이에요. 엄마 이건 정말 맘에 드는데, A사 반팔티 모든 참가자에게 다 줬어요. 괜찮죠? 엄마 6만원이 비싸지만 도복과 반팔티도 받았으니 좀 나아요. 그래도 오늘 힘들어도 잘한 거 같아요."


아무 말을 해주지 않아도 될 만큼 만 15세의 아들은 성큼 자라 있었다. 그리곤 아무 말없이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체 사춘기 아들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