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부부로 산다는 것

80억 인구 중에 내 자식이 없다니

by 배유정

‘2021년 6월 26일 기준, 세계 인구는 78억 7,496만 5,732 명이다’. 인터넷 백과사전이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이 80억 명 중에 제 자식은 없습니다. 저는 난임 부부 짬을 십 년 하고도 조금 더 먹은 만년 예비 아빠입니다.




난임 부부로 사는 것은 집이 세상이 되어버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세상에 저와 아내, 둘만이 존재합니다. 다행히 우리 둘은 서로 죽이 잘 맞아 항상 재미있고, 둘 다 집돌이 집순이라 세상이 우리를 괴롭히지는 않습니다. 유일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얼굴 모르는 자식의 빈자리입니다.


떠들썩한 곳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함부로 추측할 수는 없지만, 사교적인 난임 부부라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모여서 할 얘기가 자식 얘기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자식, 남의 자식 얘기만 합니다. 난임 부부끼리 모이면 얘기할 자식은 없지만, 슬픔은 나눈다고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배, 세 배가 됩니다. 모임이 지속되지 못합니다. 성격이 어떻든, 결국은 둘만의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게다가 두 사람 다 사교적인 난임 부부는, 사람 못 만나는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고슴도치가 됩니다. 가시까지도 보듬어주고 싶지만 우리 코가 석 자입니다.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것도 별로 와닿지 않습니다. 산부인과에 가면 자리가 모자라서 반은 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병원 밖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임이란 주로 비슷한 나이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보다 젊은 세대는 자주 접하지 못해 낯섭니다. 길에서 보는 젊은 사람들은 연인인지 부부인지 알 수가 없으니 결국 아기를 안은 부부만 눈에 띕니다. 예전과 달리 다들 눈치 안 보고 어유 내 새끼 오구오구 내 새끼 합니다. 출산율이 떨어지니 1인당 가치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집니다. 결국 출산율은 상대적 박탈감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집에 있을 때는 평온하지만 빈자리는 끊임없이 눈에 띕니다. 얼굴 모르는 자식이 아빠를 울리는 방식은 밑도 끝도 없습니다. 아내와 유튜브에서 춤 잘 추는 아이돌 가수를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화면 밖의 사람이나 화면 안의 사람이나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그러다 이 소녀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끼가 넘쳤는지를 보여줍니다. 어린것이 어찌나 춤을 잘 추는지 귀엽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면 좀 전까지 무심히 보던 아이돌 가수가 갑자기 내 딸이 됩니다. 아빠 보라고 춤을 춥니다. 웃으면서 쫑알쫑알 뭐라고 하는데 잘 안 들립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나는 딸을 낳은 적이 없는데 난데없이 내 딸이 있었다가 사라집니다. 아내 몰래 눈물을 슬쩍 닦으려고 했는데 훌쩍거리는 통에 들키고 맙니다.


몇 달 전까지 출퇴근 길에 회사 어린이집 앞을 지나다녔습니다. 아는 사람들의 아들 딸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인사하는 사이도 있습니다. 아침에도 보고 저녁에도 봅니다. 아빠 손 엄마 손 잡고 와서 아빠 손 엄마 손 잡고 갑니다. 길이 좁아서 그 뒤를 졸졸 따라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길이 끝나고 나면 혼자가 됩니다. 계속 혼자였지만 갑자기 혼자가 된 것 같습니다. 저를 보고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줍니다. 아침이면 좋을 텐데 저녁이라 슬픕니다. 아침에 잘 가라고 손 흔드는 대상은 아빠입니다. 저녁에 잘 가라고 손 흔드는 대상은 아저씨입니다. 지금은 저녁이니까 저는 아저씨입니다. 눈앞이 뿌옇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넓은 공터라 보는 사람이 없어 다행입니다.


큰 차가 싫어서 우리 부부같이 덜 큰 차를 샀습니다. 누가 봐도 해치백인데 소형 SUV라고 합니다. 그러려니 하고 타고 다닙니다. 걸어서 출퇴근하다 보니 남의 차에 탈 일도, 내 차에 남이 탈 일도 많지 않습니다. 어쩌다 남의 차를 타려면 카시트 떼는 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안 떼면 그 커다란 차에 어른이 둘 밖에 못 탑니다. 우리 차는 훨씬 작은데 네 사람 탈 수 있습니다. 다섯 사람도 탑니다.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탈 수 있습니다. 덜 큰 우리 차도 카시트 장착되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샀습니다. 인터넷에서 카시트 구경도 많이 했습니다. 카시트 사면 뗐다 붙였다 잘할 수 있습니다. 아직 붙여본 적은 없습니다. 어른 네 명, 다섯 명도 기다림 없이 탈 수 있는 차에 우리 둘이 타고 다닙니다.




회사 건물이 이사하면서 어린이집 볼 일이 없어졌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남의 차에 탈 일도, 내 차에 남이 탈 일도 없습니다. 그래도 유튜브에는 춤 잘 추는 가수들의 어린 시절이 흘러나옵니다. 오늘도 딸 하나 잘 키웠습니다. 또 혼자 훌쩍훌쩍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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