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끔 보고 싶은 것
추석 연휴에 아내와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습니다.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아마 근처 바다가 될 것입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그렇습니다. 바다는 그냥 가끔 보고 싶은 것의 대명사 같습니다. 똑같이 바다를 보러 가지만 저마다의 그냥은 다 다릅니다.
같은 바다에 가서도 어떤 사람들은 채우고, 어떤 사람들은 비우고 갑니다. 사람들은 채워지고 비워져서 돌아가지만, 바다는 준 만큼 또 받아서 항상 그대로입니다. 그렇게 한결같은 바다를 보고, 사람들은 또 찾아와 채우고 비우고 합니다. 그렇게 채우고 비우면서 파도가 치고 잔잔해지고 합니다. 혹은, 밤중에 달을 보며 쏟아낸 마음들을 달이 동그랗게 담아두었다가 손톱처럼 비워낼 때, 그 쏟아진 마음에 파도가 치기도 합니다.
나이를 먹고 채울 것도, 비울 것도 없게 되면, 사람들은 확인하러 바다에 갑니다. 채울 것도 비울 것도 없어졌음을 확인하는 것인지, 바다가 그대로 있음을 확인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잠시 들러 무언가를 확인하고 떠납니다.
확인조차 필요 없는 나이가 되면 사람들은 각자의 가슴속에 하나씩 바다를 가집니다. 가끔씩 철썩 하고 파도도 치고, 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합니다. 그렇게 정원처럼 가슴속 바다 소리를 듣다 보면 남은 미련도 가슴속 바다에 녹아버립니다. 아, 이제 가도 되겠다, 하고 슬그머니 떠납니다. 그리고, 바다는 그냥 쏴아- 합니다.
아직은 채우고 비우고 해야 할 나이인가 봅니다. 확인만 하고 오기에도, 내 바다를 가지기에도 이른 것 같습니다. 일단 가서 뭔지 모를 무언가를 채우고, 내가 채우지 않은 것들을 비우고 싶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우리, 추석엔 바다 보러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