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교육 시간이었다.
외부 강사님이 오셔서 안전 교육을 하셨는데,
교통사고 예방을 주제로 하는 영상을 틀며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안전하게 길 건너기, 신호등 지키기, 보도블록 선 안에서 서 있기와 같은
내용을 다룬 영상들이 재생되었다.
강사님은 중간중간 설명을 곁들이며 열정적으로 수업하고 계셨다.
평소 딴짓하지 않고 수업에 잘 참여하는 한 학생이 있다.
그런데 그날 유독 산만한 모습을 보였다.
장난감을 만지다든가, 고개를 푹 숙이고 서랍에서 몰래 뭔가를 손으로 꼬물거린다든가.
강사 쪽으로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몇 차례 경고를 주었다.
장난감 집어넣고 강사님을 보라고 했다.
그래도 아이는 자꾸 딴청을 부렸다.
할 수 없이 세 번의 경고가 넘어가자 난 아이로부터 장난감을 뺏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힝, 거리며 무릎을 끌어모아 얼굴을 묻었다.
수업을 결단코 듣지 않겠다는 그 완강한 고집에
결국 나의 인내도 극에 달했다.
잠시 나와.
아이 손을 끌고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아이는 엉덩이에 힘을 바짝 주고 움직이지 않는다.
이 아이의 부산스러운 행동으로 주변 아이들의 집중력마저 흩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었다.
몇 번의 시름이 오갔다.
그 끝에 회유에 성공해 아이를 데리고 복도로 나왔다.
교실에서는 불을 끈 채 교통사고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복도에 둘만 남게 되자, 난 참아왔던 말들을 쏟아냈다.
지금은 수업 시간이야.
딴짓을 하고 싶어도 하면 될까, 안 될까.
수업 시간에 집중하기로 한 게 우리 반 약속이잖아.
아이는 혼을 나고도 교실에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복도에 주저앉아 버린 아이.
나도 같이 쭈그려 앉았다.
이 아이가 대체 왜 이러는지 알고 싶은 심정으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입술을 꾸물거리던 아이가 몇 분만에 입을 열었다.
무서워.
뭐가.
차가 엄마 잡아먹었어.
그 한 문장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이어서 아이가 덧붙인 한 단어.
검은색 차.
아이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영상 보기 힘들어서 딴짓도 하고 그랬던 거구나.
검은색 차가 엄마, 아빠를 잡아먹어서.
그럼 우리 저 영상 끝날 때까지 여기 복도에 있을까?
네.
이어지는 아이의 침묵에서 깊은 슬픔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몇 분 전 교통사고가 틀어지던 스크린 앞에서 두 귀를 막고 고개를 푹 숙이던
아이의 모습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왜 알아채지 못해 주었을까.
아주 어렸을 때라고 한다.
아이가 가진 최초의 기억이 그토록 아픈 기억일 테지.
아이는 콧물을 훌쩍였고, 아이의 눈가는 눈물로 촉촉해졌다.
아이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우리 인사이드 아웃 영화 봤지?
교실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게임도 하면서 황금색 구슬 많이 쌓아서
슬픈 기억을 교실에서의 행복한 기억으로 많이 덮자.
그렇게 되도록 선생님이 노력할게.
괜찮아, 네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야.
그래도 선생님은 그런 힘든 일이 있었는데도 꿋꿋이 잘 자라서
무려 2학년이 돼서 형아도 되고 배려하는 친구도 되어서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친구 양보하고, 도와주고 싶어 하는 그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잖아.
분명 00이 엄마, 아빠도
우리 00이 장하네 바르게 자랐구나 앞으로 더 멋진 어른으로 자라겠구나
하면서 웃고 계실 거야.
우리 지금 수업 활동 하는데, 다시는 검은색 차가 영필이나 영필이 친구들 다치지 않게 하려면
00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이거든?
힘들겠지만 수업 같이 듣는 게 좋을 것 같아.
같이 한 번 해볼까?
어느새 마음을 진정하고 눈물을 그친 아이가
네,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교실로 들어왔다.
그 뒤 아이는 달라진 태도로 남은 수업에 집중했다.
아이에게는 각자만의 사정이 있다.
특히 원래 안 그러던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면
무작정 탓하기보다 왜 그런지 먼저 물어야 한다는 걸
이번 경험으로 배웠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기에,
아이의 저 작은 마음에도 오만가지 폭풍은 휘몰아치기 마련이기에,
저 작은 머리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함부로 아이의 행동을 막거나 혼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였다.
하지 마 대신 왜 그럴까, 묻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태도는
아이와의 사이에서 오해를 줄이는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