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안다는 것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직장생활 때 회사 대표님이 '당신은 어디에서 왔죠? 어디로 가고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특강을 시작한 적이 있다. 이 질문은 '당신은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묻는 것이라고 했다. 한동안 그 질문이 머리에 맴돌았던 기억이 난다. 30여 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자유인이 되었는데 여전히 그 질문은 가끔씩 나를 멍하니 다른 세계로 이끈다. 길을 찾던 차에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엄마의 삶이 내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유인이 되어 첫 번째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내년이면 90이 되는 엄마의 인생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엄마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에 다분히 나만의 주관적 해석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엄마이기에 앞서 거칠고 힘든 전쟁의 역사 속에 한 여인으로 살아온 삶의 이야기이다.
"엄마, 나 이제 쉬니까 시간 많아. 내친김에 청주 이모랑 외삼촌 뵙고 올까? 외할머니 산소에 간지 벌써 10년도 넘었네. 쭉 한 바퀴 돌고 오자. 응?"
"이제는 어디 가는 게 정말 힘들다, 너도 늙어봐라, 내 마음 알 거다"
엄마는 어디 가자고 하면 한사코 손사례부터 치신다. 사실 막내딸인 나도 이제 쉰 살이 넘어 하루하루 컨디션이 예전 같지 않은데 엄마는 오죽하실까 싶어 엄마의 안색을 다시 살핀다. 사람이 누군가의 마음에 깊이 공감한다는 것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라면 아니했을 것을 상대방은 하기 때문에, 또는 나라면 했을 것을 상대방은 아니하기에 그렇다. 잠시 상대방이 되어야 한다. 여행이 힘들어 싫다고 하시는 것은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딸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을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손사례를 치는 엄마를 몇 번 더 졸라 본다. 그렇게 해서 떠나게 된 청주 여행은 내게 엄마로만 존재하던 한 여인의 인생에 대한 궁금증으로 번졌다. 엄마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