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정 귀신
어렸을 때 고속버스를 타고 청주 외가댁에 종종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 차멀미를 하면서도 외가댁에 가면 정겨운 한약 냄새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너그러운 모습이 좋아 가는 길이 내내 설렜다. 문 열고 들어서자마자 검붉은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포도나무 덩굴도 신기했고, 마당 있는 넓은 집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부엌과 대청마루를 잇는 작은 쪽문을 통해 음식을 날랐고, 사람들은 부엌에서 나와 마당을 거쳐 신발 벗고 대청마루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집은 마당과 층이 있어서 대청마루에 서면 마당이 한눈에 아래로 내려다 보였다. 집은 기와집이었는데 외할아버지가 일꾼들을 시켜 기와를 직접 구워 지은 집이라고 했다. 아직도 눈에 선한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그 집은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막내 이모가 서울 언니(엄마)와 딸들이 온다고 청주 여행루트를 계획해 놓고 있었다. 이모와 연락을 주고받았을 때만 해도 엄마 고향마을을 둘러볼 거라고 해서 청주 관광 코스인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첫 목적지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이다 보니 청주로 가는 차 안에서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자연스레 나누게 되었다. 할머니는 외식을 하면 짜장면과 탕수육을 좋아하셨고 집에서는 무엇이든 지글지글 끓여 간장을 찍어 드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찌개든 국이든 샤부샤부식으로 말이다. 할머니는 위생관념이 유별나셔서 외식을 그리 즐기지는 않으셨는데 중국 음식은 센 불에 볶거나 튀기는 음식이니 그중 위생적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이모 댁에 들러 차 한잔하고 함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로 이동할 계획이었는데 서울을 빠져나가는 길이 엄청 막히는 바람에 곧장 산소에서 외삼촌들과 이모를 만났다. 반가운 분들이다. 엄마의 오누이들은 정답다. 전날 몇 군데 마켓을 돌아다니며 준비한 과일과 떡, 술을 올렸다. 새빨간 사과, 튼실한 배와 감, 왕송이 샤인머스캣 포도, 형형색색 조각떡과 엄마가 따로 챙겨 오신 황태포가 11월 햇살에 빛났다. 할머니 할아버지, 저희 손녀들도 왔어요, 오랜만에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산소 아래 함께 둘러앉아 도란도란 회포를 풀었다.
자리를 옮겨 엄마 성씨 일가가 모여 살았던 상당구 낭성면의 500살이 넘은 은행나무 두 구루 앞에 섰다. 지금부터 530여 년 전, 조선시대 어느 날 누가 어떻게 이 나무를 심었을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나무는 우리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셔 찡그려 가며 나무를 올려다보니 여전히 노오란 은행 열매가 빽빽하게 달려있다. 앞으로 500년은 족히 더 살아 또 다른 우리들을 지켜보겠구나. 엄마는 옛날 곤궁하던 시절에 마을 사람들이 은행을 주워다 팔아 생계를 이어 가기도 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나무 옆에는 엄마의 큰아버지 추모비가 서 있다. 조금 걸어가니 엄마의 큰아버지 집터에 신식 2층집이 지어져 있었다. 누가 사나 들여다보았는데 엄마와 외삼촌이 마당에 나와 있는 사람이 큰아버지 자손임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80이 넘은 오누이는 그분과 한참 옛이야기를 나누고 발길을 돌렸다. 멀리서 걸어오는 두 분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 이곳을 매일같이 다녔을 꼬마 오누이 모습이 겹쳐졌다.
청주 여행지 하면 손꼽히는 곳이 백석정인데 이곳은 엄마와 동생들의 야밤 목욕터였다고 한다. 외삼촌이 청년이 된 어느 날 한밤 중에 백석정에 올라 귀신 나와보라고 큰소리치다가 뒷골이 땅기고 몸을 잡아채는 싸늘한 느낌에 허둥지둥 기어 나오다시피 도망쳤다는 이야기에 점잖은 외삼촌이 그랬다는 게 믿기지 않아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백석정 맞은편엔 6.25 전쟁 후 엄마네 가족이 피난 와서 살다가 엄마가 혼례를 올렸던 그 집이 있었다. 빨간 기와지붕이 되고 조금은 현대적으로 변모했으나 헐리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놀랍다. 언젠가 아버지가 만든 옛날 사진첩의 어느 흑백 사진을 떠올리며 1958년 어느 날 두 분의 어색한 결혼식을 상상해 본다.
엄마네 가족이 안양에 살고 있었을 때 화폐개혁(1950년 8월)이 있었다고 한다. 가지고 있던 돈을 안양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큰 이모와 엄마는 이곳 시골장터에 와서 마른 고추를 사가지고 백석정과 은행나무가 이어진 그 길을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갔다. 얼마나 고달프고 힘이 들었을까. 전쟁 속에도 보통의 삶은 이어진다. 이번 엄마 고향 마을 여행은 마치 내가 엄마가 되어 그 길을 걷듯 그렇게 세월을 넘나드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로 인해 나라는 생명이 이번 생을 살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