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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부르는 말
나의 비전
by
Suno
Jun 18. 2024
아침 출근길, 손을 잡고 산책하는 노부부를 보았다.
나도 나이가 들고 있으니, 어느 시점의 어른들을 노부부라 칭해야 할까 생각이 든다.
두 분 모두 하얀 백발이었고 몸빼바지를 커플로 입고 있었으며,
신발은 동네 마실을 나온 듯 슬리퍼였다.
내가 주목한 건, 두 분의 걷는 모습이 오랜 세월 서로 몸에 밴 듯 익숙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뒷짐을 지고 손을 모아서 할머니의 한 손을 잡고 반발짝쯤 앞서서 끌어주고 계셨다.
별일 없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일과인 듯 익숙한 몸짓.
얼굴에 배인 평온한 미소.
두 분 모습은, 실례가 안 된다면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을 정도로 내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럴 수는 없었다 ^^)
아침에 본 그 모습은, 종일 내 머릿속에 화두가 되었다.
어쩌면 내가 그리는 나의 비전은 저 모습이었을까.
평화로운 풍경으로, 다정하게 함께 늙는 것.
혹시 너무 소박한 비전이라 생각이 들까?
내가 바라는 가장 가치있는 비전이다.
풋풋한 두 청춘이 만나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 될 때까지,
둘이서 함께 넘은 산이 몇 개고 건넌 강이 몇 개일까.
그리고 둘만 아는 보람과 내밀한 아픔은 또 얼마일까.
한 번 맺은 부부의 연을 끝까지 이어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것보다 자신을 지키는 게 우선의 가치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배우자와
해로
하고 싶다.
함께 가정을 일구고 늙어간 사람끼리 나누어 갖는 끈끈한 무엇이 나에겐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하다.
배우자는 나를 태어나게 해 준 부모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나와 영향력을 주고받는 사이다.
그 사람과 정다운 엔딩을 꿈꾸는 것이 나에겐 가장 강력한 낭만이 아닌가.
백발이 성성해질 때까지,
둘이 기대며 잘 늙고 싶다.
싸우되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만큼 싸우고,
아프되 함께 늙어갈 수 있을 만큼만 아프고,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짐으로 여기지 않아도 될 만큼
둘이 비슷하게 힘이 없어지면 좋겠다.
반발짝만 앞서서 서로를 끌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다정함이 몸에 배어서,
익숙하고 편안한 다정이 밖으로 새어 나오는 노년을 꿈꾼다.
아침에 만난 그 노부부처럼,
함께 하루를 늙어감이 서로에게 소중하길 소망한다.
젊어,
예쁜 꽃길을 어디든 달려 나누어 본 우리가,
늙어, 얼마 남지 않은 날을 바라볼 때도 함께이길
지는 노을을 보며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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