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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Jun 19. 2024

내일 그대와 : 김필, 2017

역주행의 아이콘

결혼 24년 차.

늘 좋기만 하거나 반대로 나쁘기만 한 결혼생활은 원래가 없을 테니,

'노래로 떠나는 시간여행' 연재에 나의 결혼생활에 대한 회고도 하나쯤 담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가출.

살면서 딱 한 번, 집을 나간 적이 있다.

누구든 안하던 행동을 하려면 용기가 매우 필요한 법.

충동적인 내 마음을 가라앉혀야할 지, 일탈을 감행할 지 고민하던 그날의 내가 나는 안쓰럽다.

그것은 내 최초의 반항이고 항거였는데, 대상은 남편이었다.

자꾸 되풀이 되고 앞으로도 반복될 갈등의 지점에서, 한번은 다른 방법으로 맞서고 싶던 마음.

그럼, 다시 돌아가도 그때처럼 그렇게 행동할 거야? 묻는다면,

여전히 다른 방법을 못 찾겠는 그날이다.


입고 있던 운동복에 핸드폰, 손에 든 차 키.

(그리고 핸드폰에 꽂힌 카드 한 장)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한기가 드는 주차장에서 몇 시간을 고민하다 결국 차에 시동을 켰다.

그 착잡한 마음은 그날의 나만 안다.

남편의 그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알려줄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함께 오래 산 사람들 사이에는 대화로 풀 수 없는 어떤 지점이 있다.

살다보니 오히려 같은 지점에서 벽이 생기고 턱, 가로 막혔다.

그가 내 행동에 어찌나올지 두려웠지만, 그때 마음으로 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내 작은 자동차가 두려워하며, 낯선 밤길을 달려갔다.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도시에서, 잘 곳을 구하는 것부터 막막했다.

이미 밤은 너무 깊었고, 괜찮은 방은 남아있지 않았다.

선택이랄 게 없이 허름한 모텔에 들어갔다.

잠이 올리 없는 밤.

그 밤, 내가 집을 나간 사실을 남편은 알지도 못했다.

거 봐. '그러니 집에 안 들어가길 잘한거야' 억지로 핑계를 찾아보던 씁쓸했던 마음.


둘째날이 밝자마자, 근처 큰 마트에서 휴대폰 충전기와 썬크림을 구매했다.

도저히 썬크림도 안 바른 맨 얼굴로 낮시간을 보낼 수가 없겠더라.

다음에라도 혹여 다시 집을 나가게 된다면, 그 두 가지는 차에 꼭 있어야겠구나.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괜찮은 척 관광지도 산책하고, 끼니때가 되면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기도 했는데,

자꾸 목이 메여 밥이 삼켜지지 않았다.

10월이었고, 어디든 단풍이 곱게 물들어있었다.

내 처지와 너무 다른 아름다운 풍경에 눈시울이 계속 붉어졌다.

들째날까지도 남편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전날 모텔에서 보낸 밤이 너무 서글펐기에, 다음날은 괜찮은 숙소부터 잡아두었다.

깨끗하고 밝은 숙소에서 따뜻하게 씻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렇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내일 둘러볼 곳 좀 찾아볼까?

'광주 가 볼만한 곳' 을 검색해 두고 잠이 들었다.

여전히 남편은 아무 연락 무.


셋째 날은 좀 씩씩했던 것 같다.

아침부터 자신 있게 차를 이동해 양림동 골목을 둘러보고,

골목에 있는 카페에서 차도 한잔 마시고,

기세 좋게 무등산까지 올라가 볼 요량이었다.

무등산 아래에 무료 주차도 잘했네 스스로 뿌듯해하며 쑥쑥 걸어 올라가는 길.

그제야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 너 어디야?

- (흥) 나, 무등산인데.

- 아휴... 너 경찰서에서 연락 왔어.

- 어? 무슨....

- 너 역주행했다며. 중앙선 넘어가서 신고당했대.

  지금 경위서 쓰러 OO경찰서로 오래. 가 봐.

그의 목소리에는 나를 걱정하거나 다친 내 마음을 물어볼 생각은 1도 묻어나지 않고,

그저 벌어진 상황을 힐난할 뿐이었다.


일인즉슨, 양림동 골목길에 주차할 곳을 찾느라 작은 로터리를 지났는데

로터리를 인식하지 못한 내가 원의 반대방향으로 지나갔고,

맞은편에서 오던 택시가 마주 오는 내 차에 놀라서 역주행으로 나를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차량 소유주인 남편에게 경찰서에서 연락이 갔단다.


뿌엥...

이게 뭐야. ㅜㅜ

삼일 만에 연락온 남편 전화가 하필 법규 위반을 했다는 질책의 전화였다.

다리에 힘이 탁 풀려버렸다.


더듬더듬 경찰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거듭 죄송하다고 읍소했다.

초행길에 제가 운전이 서툴고 길눈이 어두워서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경위서에도 똑같이 진술했다.

경찰관은 내 행색을 보고는,

이 동네엔 왜 오셨어요? 일행은 없어요? 혹시 음주하셨어요?

저 혼자 여행 왔어요. 저는 술 안 마셔요.

(뿌엥... 무서워요. 경찰서는 처음이란 말이에요 ㅜㅜ)

민원실을 나와 경찰서 주차장에서, 긴장이 풀리면서 엉엉 우는 아줌마.

놀라고 당황하고, 면목없고, 남편이 원망스럽고...

그 상황이 제발 꿈이었으면 좋겠던 나.

그렇게 나는 역주행의 아이콘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에서,

앞유리창이 안 보일 만큼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

한없이 가벼운 내 자동차는 비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고,

착잡한 마음과 흔들리는 차가 무섭기만 한 나는 자꾸만 울고 싶어져서 눈앞이 뿌예졌다.


집 나온 3일.

나를 위로하느라 내내 반복 재생하던 그 노래.

김필의 '내일 그대와'

남편이 미워서 집을 나와놓고는, 나는 왜 또 그런 다정한 노래를 찾아 듣고 있었나.

다정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던 서글픈 내 마음이라고 나는 안다.


뿌엥. ㅜㅜ

눈물 나는 나의 흑역사.

지금도 작은 로터리만 보면, 흠칫! 긴장하는 나의 역주행의 역사다.

그 때의 항거가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는...

그저 꽥 소릴 내보자면, 나는 잘하지도 잘못하지도 않았다.

어찌해 볼 다른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내일 그대와 With you (Inst.) (youtube.com)


내일 그대와  4: 06


조금 두렵기도 해

살아가는 건

어딘지 모른 채 떠나는 길

혼자 걷고 있어도

내 마음은 언제나

그댈 생각해

사라져 가는 저 별도

외로운 이 길도

그대가 있기에


그저 살아가려 해

좀 더 믿어보려 해

어쩌면 다른 내일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 걸

지친 하루의 끝에

그 아득한 길 위에

그댄 이미 기적처럼

나를 웃게 하는 걸


다시 일어서야 해

살아가는 건

불행에 무릎꿇지 않는 것

참았던 그 눈물이

울컥 쏟아질 때면

날 생각해

견디기 힘든 날에도

쓸쓸한 밤에도

내가 곁에 있어


그저 살아가려 해

좀 더 믿어보려 해

어쩌면 다른 내일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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