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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Jun 26. 2024

나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 1991

'시니컬'의 뜻

나는 91학번이다.

내가 다니던 대학의 강의실은 지금 얼마나 바뀌었을까.

 향수를 쫓아, 다니던 대학을 찾아가 보았을 때엔

단과대의 풍경도 1층 로비의 모습도 30년이 지났다 하기에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진 건 내가 세월을 먹고 중년이 되어있을 뿐.


문과대 1층 자판기  커피가 제일로 맛있었기억이나,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로비 우편함에 들어있던 쪽지와 편지들.

그런 것들이 지금과 달라졌을까.

디지털 시대로 상전벽해를 여러번 지나온 것에 비해  건물이 여럿 증축되고 외모가 바뀌었어도, 캠퍼스의  모습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실내 금연이 아니던 시절.

수업 중간에 쉬는 시간은 교수님과 남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 잠깐 쉬자- 하고 강의실에서 담배에 불을 붙임과 동시에, 복학생들과 남자애들도 우르르 복도로 나갔다.

공식적인 끽연 타임.


후~ 내불던 담배연기와 함께 나와 눈이 마주쳤었나.

교수님이 나에게  말,

- Suno. 너는 참 시니컬해.

....?


시니컬이란 말의 뜻을 몰랐기 때문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내 표정은 애매했으리라.

응?? 이런 표정이었겠지.

그 뜻을 찾아보고는, 그 또한 애매해서 그게 칭찬인지 욕인지 구분하려고 고민을 했다.

* cynical 하다 : 1) 냉소적이다. 쌀쌀맞다.

                       2) 감정의 동요가 없다. 영민하다.

대놓고 욕이었다면 교수님이 그 자리에서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 리 없지.

그러니 나는 두 번째 의미를 택한다.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보통의 경우 남보다 빨리 파악해 버린다.

그러니 요즘 말로 교수님이 빌드업해서 뭔가를 설명했다면,

내 표정은 이미 아~ 무슨 말하려는 지 알겠다. 하고 피식 웃었겠지.

내 웃음 때문에 교수님은 김이 좀 샜으려나?

그래서 저는 시니컬한 녀석이 된 거겠죠?

그래도 교수님 수업을 참 좋아했습니다. 저는. ^^


세월이 흘러 그때 교수님 나이보다 누나가 되었다.

시니컬한 어린 제자를 보는 그때 교수님 마음은 무엇이었을지 상상해 본다.

눈치 빠르게 웃자란 아이를 보는 어른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혹시, - 미리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 이 녀석아.

고 말하고 싶으셨던 걸까?


살아보니, 보통의 경우에 끝까지 다 듣고 판단해도 늦지 않았다. 미리 방어하기 위해 내가 생각해 둔 수가 최적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눈치가 빠른 사람은 한 발 앞서 늙는 사람과도 같다. 해맑게 그 상황을 즐길 기회를 놓쳐버리는 조금 슬픈 사람.

상처받을까 손해 볼까 두려웠던 조급함에 오히려 손해를 보는 바보.


그러니,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정서적으로 훨씬 풍요로웠을 스무 살의 나에게 해 줄 말은,

"너의 시간을 세상을 경계하는데 집중해서 보낼 필요는 없어.  너의 결핍을 들킬까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짠하다는 걸, 어른이 되니 나 알게 되었어."

그래. 이제 나도 그 정도는 볼 줄 아는 어른이 된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고 (지금보다 더) 서툴렀던 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지금에 와서야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걸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봐야 나는 나일뿐...

그러니, 신해철이 쓴 '나에게 쓰는 편지' 또한

지금 내가 나의 젊음을 되돌아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신해철 (Shin Hae Chul) "2집 Myself (서곡)" - 나에게 쓰는 편지 (youtube.com)


나에게 쓰는 편지 4:51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 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땐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 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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