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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Jul 03. 2024

깊은 밤을 날아서 : 이문세 4, 1987

중딩들의 낭만 모험기

이문세 4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한 곡을 골라내기란 쉽지 않다.

모든 노래는 우리가 외울 듯 스며있어서 어떤 곡이든 툭 치면 자동으로 재생되고 순식간에 떼창이 되었다.

그래도 그 앨범에서 제일 별로인 곡을 하나 골라낸다면, 그 답은 또 정해져 있다.

B면 끝에는 건전가요가 의무로 실리던 시절이니까.

논밭뷰를 가로질러 다니던 중학교 시절.

1987년. 중3이던 우리는 고등학생이 된다는 사실에 사뭇 비장했다.

우리가 고등학생이 된다니~~!!

 

누구는 도시로 진학하고 누구는 지방 고등학교에 그대로 남기로 하면서, 우리는 뿔뿔이 흩어지기 직전이었다. 그러니 졸업하기 전에 우리만의 추억을 하나 만들어보자, 어느 날 뜻을 모았다.


격주로 학교에 가던 시절.

토요일이었고, 각자 집에는  "친구집에서 자기로 했어요." 허락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는 하나둘씩 다시 학교로 모였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교실에 숨어 들어가 키득키득 해가 지기를 기다렸을 우리들.

그때 우리는 모두 몇 명이었지? 교실에 빙 둘러앉을 만큼의 많은 숫자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

교실의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커튼을 꼼꼼히 치고, 해가 진 후 수위아저씨가 한 바퀴 돌며 점검을  시간까지 조용조용 기다리던 게 생각난다.

두근두근. 뭔가 대단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 같은 심정.


지금에서 그날을 쓰다 보니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한데, 적어도 이 날 우리의 일탈이 범죄로 보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아날로그 감성,  시절이니까 가능했던 일이라고 웃으며 봐주시길.


우리가 함께 밤을 지샌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우리 반 1번부터 60번까지의 모든 친구들을 호명하고 함께 추억하기.

서로 잊지 않기 위해서 모인 그날밤이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혹시 나인가? ㅋㅋ), 그 일은 정말이지 낭만 그 자체였다.

우리 반 1번부터 60번까지를 우리는 모두 꿰고 있었고, 내가 잘 모르는 친구에 대해서는 다른 친구가 에피소드나 정담을 나누었다. 그렇게 반 친구들 한 명 한 명에 관한 이야기들로 밤이 지나갔다.

다정한 결의 모아지는 밤이었다.


나중에 내가 딸들을 키워보니 저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더라.

요즘 애들은 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도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친한 친구만 있으면 되고 아니면 무척 아쉬운 일.


밤은 꽤나 길고 추웠던 기억이다. 사물함의 모든 체육복을 꺼내 바닥에 깔고 껴입고 있어도 추웠다.

또 하나의 복병은 화장실이었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구멍이 뚫린 푸세식 화장실에 가는 일은

전설의 고향 주인공이 되어보는 일 마냥 참으로 무시무시한 미션이었다.


지금이라면 절대 불가능할 미션. 어쩌면 원하는 아이들도 없을지 모를 일.

삼삼오오 친한 친구끼리 친구집에서 벌이는 안전한 파자마 파티와는 결이 많이 다른 추억이다.


그날의 하룻밤은 우리의 의도대로, 이렇게 나이 50이 넘어서 회상할 수 있는 분명한 추억이 되었다.

이문세의 노래처럼, 깊은 밤을 날아서 추억할 내 동심의 끝자락이다.





깊은 밤을 날아서  3:02


우리들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일들이

어쩌면 어린애들 놀이같아

슬픈 동화속에 구름타고 멀리 날으는

작은 요정들의 슬픈 이야기처럼

그러나 우리들 날지도 못하고 울지만

사랑은 아름다운 꿈결처럼

고운 그대 손을 잡고 밤하늘을 날아서

궁전으로 갈수도 있어


난 오직 그대 사랑하는 마음에 바보같은 꿈꾸며

이룰 수 없는 저 꿈의 나라로 길을 잃고 헤메고 있어

그러나 우리들 날지도 못하고 울지만

사랑은 아름다운 꿈결처럼 고운 그대손을 잡고

밤하늘을 날아서 궁전으로 갈수도 있어

난 오직 그대 사랑하는 마음에 밤하늘을 날아서

그대 잠든 모습 바라보다가 입맞추고 날아오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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