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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Jun 12. 2024

그럴 때마다 : 토이 2집, 1996

나의 연애시대

1997년. 대한민국을 환란으로 몰아넣은 IMF.

IMF가 터지고 나 또한 실직을 하고 백수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기업과 가장들이 무너졌으니, 나 같은 일개 회사원이 백수가 된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사회에 붙잡고 있던 끈이 떨어지고 나서 시작된 나의 연애시대.

내 인생에 있어서 2막이 펼쳐졌다.


한결같이 그 마음 그대로 오랫동안 나를 좋아해 준 사람.

백수가 되고 나서야 그 사람의 존재가 귀하게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도 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나에게도 귀한 사람이 아닌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 연애를 시작했다.

그도 나도 처음인 연애.


서툴고 순수하고 어설프고, 밋밋하고 슴슴하고 짜릿했다.

그전까지 나는 왜 몰랐을까.

연애는 참 좋은 것이었다.

밤늦도록 집에 가기가 싫었다.


처음 시작은, 그저 주는 마음을 받기만 했다.

자기 마음을 받아주는 것만도 감지덕지 고마워했으니,

나는 거만히 팔짱 끼고, 어디 더 잘해봐라 그런 마음.

사랑은 한쪽만 노력해서는 안 되는 걸, 교만했던 내가 알았을 리가 없지.

결국 나한테 그가 없으면 더 이상 안될 만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나에게 지쳤다는 듯 냉정히 돌아서며 그가 했던 말.

- 내가 먼저 널 좋아했다고 해서 니가 날 함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정곡을 찔린 나는, 부끄럽고 미안했으면서도

이제 나도 달라져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그 영악한 남자는 결국 내 남편이 되었다.


IMF는 나를 실직자로 만들고, 우리를 연애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내 남편을 공무원으로 취직시키기도 했다.

기댈 곳 없는 청년은, 결혼할 여자가 생기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결혼해 살면서, 3막이 펼쳐졌다고 해야 하나.

낯설고 고된 현실 장벽이 우뚝 우릴 맞이했지만, 그런 순간마다 지난 연애시절을 떠올리면 위로가 됐다.

꺼내먹을 위로가 내 창고에 쌓여있었다.


연애할 때 그는 학생이었다.

그는 늦은 밤 전화를 걸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고,

(김광석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라디오 헤드의 Creep을 부르기도 하고.)

내가 어딘가 아프다고 작게 말하면, 소리 없이 달려와 내 창가에 약을 놓아두고 갔다고 말했다.

손잡고 하릴없이 동네를 어지간히 걸어 다녔고,

가난했지만 그가 가진 걸 아낌없이 나에게 내어주는 걸 느끼니 행복했다.

자고 나면, 내일 다시 그와 만날 수 있어 기대가 되던 날들.

그에게 재지 않는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나를 나로 있게 해 줬다.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고, 사랑을 한껏 받았다는 경험은 꽤나 나를 성장시키고 치유했다.

내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사랑도 어쩌면 그에게 받은 사랑이 씨앗이 되었을 거라 생각을 한다.


토이가 부른 '그럴 때마다' 가삿말은 항상 그를 떠올리게 했다.

그와 연애할 때도 아닐 때에도.

(정작 그는 이 노래가 자기랑 상관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ㅋㅋ)

'언제든 부르면 나에게 달려와줄 사람이 있다'는 신뢰.

내가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말하면 함께 해 줄 사람이 있다.

함께 산 세월 사이로 묵은 감정과 소비되지 않는 오해들이 찌꺼기처럼 묻어있더라도

그는 여전히 나에게 '그럴 때마다' 불러낼 사람.

나의 연애시대로 이어져 온 나의 역사다.






그럴때마다 - 토이- (youtube.com)



그럴 때마다 3:50


반복된 하루 사는 일에 지칠때면 내게 말해요
항상 그대의 지쳐있는 마음에 조그만 위로 돼 줄께요
요즘 유행하는 영화 보고플땐 내게 말해요
내겐 그대의 작은부탁 조차도 조그만 행복이죠
아무런 약속도 없는 일요일 오후 늦게 잠에서깨 이유없이
괜히 서글퍼질땐 그대곁엔 세상 누구보다 그댈 이해하는
내 자신보다 그댈 먼저 생각하는 남자가 있죠
오래동안 항상 지켜왔죠 그대 빈자리
이젠 들어와 편히 쉬어요
혼자서 밥 먹기 싫을땐 다른 사람 찾지 말아요
내겐 그대의 짜증섞인 투정도 조그만 기쁨이죠
아무런 약속도 없는 일요일 오후 누군가 만나서 하루종일
거릴 걷고 싶을땐 그대곁에 세상 누구보다 그댈 이해하는
내 자신보다 그댈 먼저 생각하는 남자가 있죠
오래동안 항상 지켜왔죠 그대 빈자리
이젠 들어와 편히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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