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분별이 들면서 점점 더 확고해지는 건,
건강한 가정환경이 그 사람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되는구나 하는 것이다.
어떤 이의 부와 명예가 부럽던 시절이 지나고, 어떤 이가 사랑받고 평화롭게 자란 환경이 젤로 부러워졌다.
그 사람 안의 평화는 어린 시절의 풍토에서 기인하는 것을 이해하고 나니,
부모가 된 것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지기도 했다.
내 자녀에게 가장 주고 싶은 것, 천금으로도 못 사는 마음의 평화다.
어떤 존재와 뜨거운 이별을 해 본 적이 없다.
이 문장을 보고 혹시 운이 좋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좀 슬픈 문장이다.
나는 부정이라는 감정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일찌감치 아버지와 이별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편적으로 있지만 내게는 결여된 것.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부끄러웠다.
내게 없는 것이 자랑스러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핍이 많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난 탓에, 내 안의 결여된 것들에 대해 고민을 길게 했다.
나는 이유 없이 아이답지 않게 우울했으나 알고 보니 이유가 없던 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정을 쌓은 적이 없었으므로 아버지와의 이별에 온도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아버지가 그리워질 수는 없었다.
뜨겁지 않은 이별은 떠나는 존재에게 너무 잔혹하다는 걸 아주아주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어떤 존재를 잃고 나서 뜨거운 슬픔이 오래도록 불쑥불쑥 찾아온다는 사실을
강아지 엘을 보내고 처음으로 겪었다.
엘은 보호소에서 데려와 겨우 한 달여 우리와 함께 살았던 강아지였고, 지독한 캔넬코프에 감염되어
밥만큼 주사와 약을 먹었으나 결국 견뎌내지 못했다.
한 달 짧은 시간을 보낸 게 믿기지 않게, 엘이 떠난 후에 남는 감정은 길게 오래갔다.
어느 순간 울컥 올라와서 오열하게 만드는 엘에 대한 그리움이 나는 낯설었다.
작고 순하게 안기는 털뭉치, 아무런 해로움이 없는 눈빛, 보호해줘야 할 존재가 품에 안기는 따뜻함.
엘과 함께하던 좋았던 시간들은 아무 때나 나를 애절하게 만들었다.
어떤 존재와 이별하는 것은 그것을 그리워하는 것이구나.
그 뜨거운 그리움이 싫지 않았다.
그리움은 존재했던 것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더라.
지금은 잃었으나 다시 느끼고 싶은 것. 그리움.
결국 그 그리움 때문에 우리는 다른 멍멍이를 입양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마음으로 깊이 좋아하던 친구가 몇 해 전 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남편이 이제 그녀가 더 이상 안 아플 거라서 다행이라 말했을 때,
앞으로는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구나.
묵직한 슬픔으로 그녀가 그리워질 나를 걱정했다.
찐한 이별은 그 존재를 뜨겁게 그리워해주는 것이더라.
문득문득 떠나간 친구가 그리워지는 시간이 나는 좋았다.
기억해 주고 때때로 말을 걸어보고, 먼 곳으로 그리움을 보내는 것은
떠난 이에게 향을 피우는 것과 같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리움을 희석해 가는 시간이 진정한 애도의 과정이 아닐까.
아까운 이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진정한 이별의 의미를 알게 된 것 같았다.
이제서야.... 그리워질 시간도 없이 떠난 아버지께,
아무 비울 것 없는 이별이었어서 애도하지 못한 아버지께,
그리움 대신 안타까움이 앞서는 아버지께,
오늘 뜨겁지 못해도 따뜻한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아버지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어요.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바래요.
그러니.
언젠가 내가 떠날 때 남기고 싶은 것도 그리움이어야 하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나를 그리워할 수 있도록 시간을 쌓는 것,
사랑하던 이를 떠나보냈을 때 내가 두고두고 그를 그리워할 시간을 쌓는 것.
이별은 그리워질 시간을 쌓고 무너뜨리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사는 동안 뜨거운 이별을 준비해 보리라. 그리워질 순간들을 원 없이 즐겁게 살리라.
기왕이면, 아주 뜨거운 이별이면 나는 좋겠다.
父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