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붙잡는 사소한 순간

온기 있는 시간에 대하여

by Suno

사소한 순간 하나뿐이었다.

내게 남은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기억은.


나에게는 어릴 때 엄마와의 추억이랄까 그런 게 없다.

사는 일 자체가 버겁고 급급했던 부모에게 우리 자매들은 엄마와 추억 쌓기 그런 걸 바랄 수 없었다.

나에게도 유년기 몇 장의 사진이 남아있긴 하지만, 사진 속 내 모습도 흑백과 컬러를 섞어놓은 듯할 뿐이다.

자랄 때 나에 대한 기억도 흑백사진과 비슷하다.

분명 컬러의 시대였는데, 내 기억 속은 무채색의 흑백처럼 흐른다.


나의 사춘기 방황은 길고 외로웠고,

어릴 때 없던 엄마와의 유대관계를 다 자라고 나서야 다시 맺는 것은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라는 이름은 부르기만 해도 코끝이 시큰하다던데...

그렇지 않은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성을 느껴본 적이 없었으므로

남들이 엄마를 부르며 울 때에, 마치 나는 근원적인 감정이 결여된 인간 같았다.


엄마와 쌓아온 그리운 시간이나 추억이 없다는 건

내가 결핍된 인간이고 그게 팩트라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그건 말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였던 거다.


엄마와 쌓은 시간이 없으니 엄마를 기억할 때 느껴지는 온도가 없었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온도.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온도를 느낀다.

따뜻하거나 차갑거나, 그 느낌으로 본능적으로 관계를 욕심내거나 멀리한다.

그런데 나는 엄마에게 느끼는 온도가 없다.


엄마를 떠올렸을 때 좋은 기억은 뭐가 있나요?

상담사가 내게 묻는다.


- 그냥 추운 겨울이었는데, 처마에 고드름이 얼어있었고 나는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나 봐요.

엄마가 집 앞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추워 추워, 어여 들어가. 들어가자" 하면서 나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어요.

그냥 그 장면 하나만 기억나요.


너무 사소한 기억.

그런데 저 기억 하나가 엄마가 미워지려고 할 때 나를 제자리로 붙들어 맸다.

저 장면에서는 엄마를 떠올릴 때 온기가 느껴졌다.

엄마의 '다정함'이 느껴졌다. 자꾸 다시 생각하고 싶어졌다.

구간반복을 하듯이 반복해서 재생되는 어느 겨울날의 순간.

엄마는 내게 다정했다. 고 나는 믿고 싶다.


온기가 있는 추억은 사람을 품어준다.

엄마를 떠올릴 때 기댈 곳 없던 내 기억은, 사소한 기억 하나를 붙잡고 있었다.

물론 엄마가 내 기억보다 훨씬 더 많이 나를 예뻐했다는 증언은 나중에 언니들을 통해 듣게 되었다.

그래, 그럴 수 있겠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내 딸들이 나를 떠올릴 때 딸들이 느낄 온도는 내 기억과 다를 수 있겠다.

그래, 사랑은 주는 사람의 온도와 받는 사람의 온도가 다를 수 있지.

내 딸들은 나를 기억할 때 어떤 온도일까 궁금해진다.

어쩌면 내 얘기에 엄마도 많이 억울해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가진 사소한 기억 뒤에 숱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 기억들 중에 온기를 발견했고,

그 온기가 소중해서 오래도록 붙들고 살았다.

그걸 붙들고 있었기에 너무 다행이다.


숱한 세월이 흘러, 지금은 엄마를 생각할 때 떠올릴 다른 순간들이 많아졌고,

그러니 엄마를 떠올릴 때 느껴지는 온도라는 게 생겼다.

자기 자신이 먼저 서야 하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나눠줄 온기가 없을 수도 있겠구나.

그 상대가 자식이어도...

여전히 서운하긴 하지만, 나도 이제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고 보니

억지로 억지로 그 사람을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아서 여전히 어렵지만)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순간을 붙들고 산다.

끝까지 믿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붙들고 산다.

그걸 믿고 힘을 내고 싶은 순간을 붙들고 산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만나려고, 그렇지 않은 순간들을 묵묵히 산다.

온기 있는 시간은 힘이 세다. 다정함이 힘이 센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