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풀과 나무의 이름

이름이 그리움을 지배한다.

by Suno

지난 계절을 기억할 때 돌이켜보는 것은 주로 꽃과 풀과 나무이다.

그것들의 향과 색을 기억한다.

봄의 땅에서 솟아나는 초록의 것들, 일제히 피어나는 봄의 흰꽃들.

땅내음과 풀내음이 뒤섞인 봄의 향기.

계절이 바뀌고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배롱나무.

가을이 시작되며 변신하는 나뭇잎들.

잎을 떨구는 애처로움이 단풍으로 승화되는 계절.

그리고 하얀 겨울의 동경과 찬 바람의 알싸한 향기.


언제부턴가 꽃의 이름을 풀의 이름을 나무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존재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모르면서 애정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해마다 가을산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노랑 나무의 이름이 궁금해서 마음의 숙제였는데

올해 드디어 그 숙제를 풀었다.

그건 바로 백합나무 단풍이었다.

작년엔 갈참나무의 단풍이 멋스러워 갈참나무의 이름를 기억해 두기도 했다.

백합나무의 단풍을 기억하며, 올 가을을 맞은 보람이 있다. ^^


이름을 모르면서 그리움을 가질 수 없다.

어릴 적 아버지와 단 한번 소풍을 보낸 날, 온 벌판에 자운영 꽃이 천지였다.

이제 흔하지도 않고 사람들은 잘 모르기도 하는 자운영 꽃을

나는 아버지를 기억할 때 떠올린다.

자운영 꽃을 떠올리기에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버지를 기억하기에 자운영을 떠올린다.

그 날 소풍에 자운영꽃이 배경으로 없었다면, 그리움은 희미했을 것이다.


그것의 이름이 그리움을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