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노을
노을은 아주 변덕스럽다.
제 멋대로인 노을 때문에, 노을 그거 뭐 뻔하지 않냐고 말할 수 없고,
오늘 날씨가 맑다고 해서, 흐렸다고 해서 노을의 모습을 미리 상상할 수는 없었다.
여름에 찾아간 노을 첫 번째.
공주 청벽산 노을.
종일 잔뜩 흐리던 하늘에 저녁 무렵 해가 갑자기 났다.
그렇담 노을을 보러 가도 되지 않을까? 갑작스레 찾아간 청벽산 노을.
친절하지 않은 등산로를 30분 넘게 깔딱 고개를 넘어가서야 만난 노을이다.
이 화려하고도 변화무쌍한 모습에 어렵사리 올라간 수고가 사르르 녹았던!
장엄한 하늘과 금강 물줄기가 만났다.
여름에 찾아간 노을 두 번째.
강경 옥녀봉 노을.
어스름 주황빛에 노을 볼 기대를 가졌는데, 그날 노을은 화려하지 않았다.
역시 노을은 제멋대로다.
오히려 해가 지고 나서 지평선에 올라온 붉은 기운이 멋졌던.
여름에 만난 노을 세 번째.
부안 마실길 노을.
붉은 해의 기운보다는, 초록의 바다이끼를 함께 본 즐거움이 더 컸다.
노을을 기다릴 동안 변화하는 모든 풍경이 좋았지만,
마지막 해가 떨어졌을 때의 보랏빛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결국, 노을을 찾아가는 일은 처음 볼 모습을 만나러 가는 거였다.
날마다의 노을은 언제도 본 적 없는 유일한 풍경이었고,
그날의 노을이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었다.
예측할 수 없기에, 노을의 가진 고유성 때문에.
우린 노을을 다시 찾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