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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Mar 07. 2024

딸, 생일을 축하해

모든 사물들에도 응원을 담아 너에게 보내


이 글은 "2024 사계김장생 문학상" 수필 부문, 특별상에 당선되었습니다



2004년 3월에 내렸던 굉장한 기록적 폭설에,

길이 뚫리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병원에 가지 못하고 낳을 뻔했던 아이.

네가 태어나던 날을 생각하면 길가에 사람 키만큼이나 쌓여있던 눈이 떠올라.

오늘은 네가 태어난 지 꼭 스무 해가 되는 날이구나.

딸, 생일을 축하해.


해마다 너의 생일이 오면 너를 낳던 날의 풍경과

새로 태어난 너의 붉은 얼굴이 떠올라.

작은 너를 예뻐하고 사랑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미소가 번져.


시간은 흘렀고,

너에게 온 '사춘기'는 낫지 않는 기침처럼 오래간다고 생각했어.

- 너만 힘든 줄 아니, 그런 너를 겪는 우리도 진짜 힘들거든.

그 마음이 오랜 시간 너를 보던 내 마음이었던걸 고백해.


네가 겪는 방황의 소용돌이가 어디에서 멈출지 모르게,

지금을 겪고 나면 그다음이, 그다음을 겪고 나면 또 다른 다음이 우릴 기다리는 듯했어.

세상의 멸망이 와도 햇살 같은 품으로 품어야 하는 게 부모라던데,

부모가 되어서 온전히 품어주지 못하는 죄책감이 나에게 있었다는 것도 고백해.

가시가 뾰족한 너를 품는 일이 어렵더라. 미안해.


네가 집이 있어도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처럼 세상 밖을 전전할 때.

너는 돌아오지 못하고 네 대신 덩그러니 도착한 너의 가방만이 너의 빈 방을 지킬 때.

부모가 되어 앓는 아픔이 이런 걸까 생각했어.

슬픔이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왔었지.

바다에서 온 물이 나에게도 찰랑찰랑, 너의 마음에도 바다에서 온 물이 찰랑거리겠구나.

마음이 아팠어.


말보다는 글로 전하는 게 쉬운 엄마라서 이렇게 편지를 써.

말로는 다정하지 못했던 엄마의 변명을 이렇게 해.


오래 웃고 지내지 못하던 시간들에 보상을 받기라도 하는지,

회복하는 동안 너는 쉽게 웃고 쉽게 즐거운 아이였더라.

자식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제일 먼저 알아채는 게 부모의 할 일이라 생각해 온 나였는데,

니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 긴 시간 동안 알아채지 못해서 미안해.

자주 아이처럼 웃는 너를 볼 때마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어젯밤 자정이 되어, 너에게 첫 번째 생일축하!! 를 전하고 잠자리에 들었잖아.

밤새 나는 너에게 편지를 썼던 모양이야.

아침에 일어나니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어제에 이어 쓰던 편지처럼 떠올랐어.


"우린 언제나, 너를 응원해 왔어.

 그것만은 세상에 변치 않는 진실이야"


세상의 모든 사물의 힘을 빌어서라도 너를 응원해 왔지.

여행지에서 돌탑 하나도 지나치지 못하고 돌을 하나 얹어 빌고 싶은 마음.

꽃이 필라치면 꽃 봉오리 하나에도 너를 응원하는 마음을 담았었지.

우리 딸도 이 꽃이 힘을 내듯 그러길, 바라는 마음.

세상의 어떤 기운에게라도 잠시 멈추어 너를 부탁하는 마음을 가져왔었어. 우리는.


스무 살 내 딸,

다시 혼자 서 보는 연습을 하기 위해 떠나보는 너에게 응원하는 마음을 전해.

네가 전처럼 불안한 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니

내 마음도 이전처럼 불안하지 않아.

넌 언제든 돌아올 밝은 집이 있고, 너의 사랑 멍뭉들과 너를 맞아줄 엄빠가 기다린다는 걸 

너도 이제 알거니까.


어쩌면 오랜 너의 방황들은 예민한 네가 불안해 미치겠다고 소리쳤던 것일 수 있겠구나.

너의 생일, 오늘 아침에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어.


숱한 불안을 덜어내는 연습을 하는 일이 우리가 삶을 살아내는 일이 아닐까.

이제서야 그걸 깨닫는 엄마를 보렴.

그러니 세상의 엄마들은 얼마나 숱한 실수를 하겠니. 엄마들도 아직 불안한거야.

그 중에서도 자식의 일이 부모는 제일 불안하지. 그래서 가장 보편적인 세상의 잣대를 자식에게 적용시키는 지도 모르겠어. 덜 불안하려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기준으로 당연하고 괜찮은 일들이 너에겐 마땅치 않고 괜찮지 않았던 거야. 

그런 이유로 세상의 속도와 다른 너의 속도로 가는 너를 엄마는 이해하지 못했던 거지. 

이해받지 못하는 너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러니, 딸아.

너는 앞으로 불안을 덜어낼 연습을 충분히 할 기회들이 있을 거야.


그래서 우리, 어제보다 모래알만큼 덜 불안한 오늘들을 살아보자.


네가 걷는 어느 길에서든,

네가 보는 어떤 돌무더기, 어떤 꽃봉오리, 어떤 무지개, 어떤 별들에도

엄빠가 보내는 숱한 응원들이 바람처럼 너에게 전해지고 있구나... 생각해 주렴.

그건 언제까지나 영원히 변치않는 엄빠의 염원인 걸 믿어주렴.


                                                                2024년 너의 생일에, 

                                                                새봄의 기운을 너에게 보내며, 엄마가.

지난 가을의 너와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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