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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 Aug 16. 2024

병원 문턱을 넘어야 아는 몸의 이치

  수족구가 한창 유행이다. 주변에서 아이들이 이 못된 전염병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작년 여름 방학이 떠올랐다. 한강 수영장에 놀러 갔다가 둘째 아이가 그 당시 유행했던 ‘아데노 바이러스’에 걸려 일주일 넘게 아팠다. 하필 개학이 임박했을 때였고, 일주일간 학교에 가지 못했다. 자체적으로 방학을 7일이나 연장한 셈이라 개학을 손꼽아 기다렸던 내 마음도 아팠고, 고생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운 좋게도 그동안 아이들이 수족구에 걸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유행하는 전염병을 심하게 앓으면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며 이번 방학을 보냈다. 조금만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으면 집에서 쉬었고,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방학이 열흘 넘게 지나가도록 수영장에 가지 못했다. 급기야 참다못한 아이들이 불평을 하였다.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수영하고 싶다고!


  그렇게 큰맘 먹고 한강 수영장에 다녀왔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다. 그 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관찰했다. 수영장에 다녀온 지 나흘째 되는 날, 12살 딸아이가 입안이 아프다고 했다. 올 것이 온 것인가? 입안을 들여다보니 구내염 증상이 있었다. 평소 피곤하면 입안이 헐곤 했는데, 이번엔 어금니 뒤쪽에도 하얀색의 염증 같은 것이 보였다. 유독 그 부분이 아프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수족구 수포의 모양을 찾아봤다. 아무리 봐도 이 모양이 수포와 같은 건지 잘 모르겠다. 열은 없었다.

  치과에 진료를 보러 갔다. 단지 입안의 염증을 보러 간 건데, 엑스레이를 촬영해야 한다고 했다. ‘육안으로 그냥 봐주시면 안 되냐’고 말해도 소용없는 질문을 했다.  ‘보이지 않는 염증이 숨어 있을 수 있으니 찍어야 한다’는 정해진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살펴본 아이의 입안. 의사 선생님은 단번에 ‘어금니가 나고 있네요! 충치도 없고 아주 좋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동시에 쓰린 마음도 들었다. 똥 누러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으니 진료비 9천 원이 아까워졌다.

  화살은 딸아이에게 돌아갔다. 어금니가 올라온 게 처음이 아니다. 유 경험자인 12살이 엄살 피운 게 괘씸했다. 물론 처음 어금니가 날 때도 잇몸이 아프다고 했을 것이다. 나 역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 보니 그땐 수족구가 유행이지 않았기에 유연하게 대처하였을 것이다. 아무튼 분한 마음에 아이에게 진찰료의 반은 네 용돈으로 지불하라고 말했다. 그 소리에 아이 역시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면목이 없기도 했던 모양이다. 군소리 없이 치과를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용돈을 뜯길 생각에 정신이 혼미했던지 1층에 도착한 것도 모른 채 지하로 하염없이 내려갔다. 마음속이 깜깜해 반쯤 열린 문 틈으로 밝은 빛이 쏟아지는 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나가야 할 문도 분간하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 나는 뱉은 말을 금세 주워 담았다. 용돈 차감은 없던 일로 하기로.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안방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이 안방 문을 열며 말을 걸어서 쳐다보았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눈을 끔뻑거리며 다시 보았더니 초점이 맞으며 원래대로 잘 보였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눈에 어떤 이상이 생긴 것인지 걱정이 되어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노안이었다. 가까이 있는 게 안 보이는 것만 노안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적인 시선 이동에 초점이 천천히 맞는 것도 노안 증상의 일종이라고 하였다. 나의 무지함으로 병원에 지불한 돈이 2만 원이 넘었다. 안과 진료비는 치과보다 더 비쌌다.


  이렇게 몸의 이치를 병원 문턱을 드나들며 돈 내고 배우고 있다. 나이 드는 건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을 것이다. 딸아이의 성장은 내게도 일어났던 일이었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자주 병원에서 성장과 노화의 과정을 확인받을 것 같다. 아직 수족구는 걸리지 않았다. 올여름엔 병원에서 수족구를 확인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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