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은 여행*15]

애월에서의 제주 2달 차. 사랑의 이름으로, 애월!

by 천백희

21.12.22. 수요일

매일매일 글을 쓰려는 강박에서 벗어나다 보니 너무 벗어나서 애월에 온 지 2일 만에 글을 쓰러 왔다.

처음의 원대한 포부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여행이니 이런 나도 괜찮은 거겠지?

이동하는 날 택시비까지 써서 애월의 숙소로 잘 왔고 정확히 39900원 정도 나왔다.

숙소는 생각과 달라 당황했는데 (관리비 10만 원 추가 지출) 관리하시는 분이 너무 좋으셔서 넘어갔다. 소소하게 나에게 관심도 많으시고 밥이랑도 챙겨 먹으라고 해주시고, 귤농사를 하셔서 귤도 입구에 항상 놓여있다. 차를 따로 안 빌렸다고 하니 아련하게 보시며 버스를 놓치면 오는 길에 태워주신다고도 하셨다.

비수기라 신경을 써주는 건가 하는 생각과+ 따스운 분인가 하는 생각 두 개가 더해져서 섞인 상태이다.

혼자 와서 방구석에 있으니까 걱정되시나 보다.

행복한 상태라 큰일이 날 일이 없는데. 그걸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

생각보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 뷰
생각보다 석양도 아름다운 숙소 뷰. 서귀포와는 다른 느낌의 하늘이다.
바다로 가는 길 밭뷰

숙소는 의외로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다. 1층이라 짐 옮기기도 너무 좋았다. 하지만 무당벌레가 있다! 한겨울이지만 확실히 따뜻해서 그런가 웬 무당벌레인지!

그런 것만 아니면 방도 진짜 엄청 뜨끈뜨끈하고 (바닥에 화상 입을뻔했다.) 시설도 저번보다 깨끗하고 화장실도 분리되어 있어서 만족한다. 수건도 하루에 네 개씩 주시고 정수기도 있다. 와서 하루 차는 방 정리하고 짐 정리하느라 하루가 다 갔고(+ 요새 들어 몰려오는 상담 손님들까지)

이틀차도 오전부터 상담을 하고 전날부터 뭘 제대로 못 먹어서 바로 가리비 칼국수가 엄청 푸짐한 곳에 밥을 먹으러 갔다. 너무 맛있어서 그릇까지 먹고 싶었는데 나트륨이니까 절반보다 조금 더만 퍼 마시고 낭쿰낭쿰에서 B군과 사장님께 배운 대로 딱새우도 살 남김없이 잘 파먹고 왔다.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돌고래 전망대!
빵 명장이라는 곳이 있다
가리비 칼국수 맛집에 도착
생각보다 푸짐한 비주얼!
정말 맛있었다.

그러고 나서 상담이 있어서 바로 썸의 시작?이라는 카페에서 이름은 마음에 안 들지만 뷰가 좋은 곳에서 상담을 하다가 카드가 날아가서 실내로 왔고, 실내에서도 어쩐지 상담이 더 들어와서 좀 더 상담을 하다가 피곤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썸의 시작 카페 근방에 요가학원도 있던데. 3개월씩 받아서 한 달은 못 다니고 1회권으로 이브날 가볼 생각이야. 이번에는 학원 안 잡고 진짜 편하게 있다가 돌아가고 싶어서.

썸을 시작하는 설렘을 말하는 거겠지?
티라미수 라떼를 시켰다
1층의 풍경
2층도 예쁘게 꾸며져 있다.
처음으로 포차를 봐서 찍었다
빵이 맛있을 것 같은 빵집. 일찍 닫았다.
유명한 수제비누집도 숙소 근방에 있었다. 서울로 출강을 간다는 멋진 곳!
모양도 색도 예쁜 비누가 다양한 피부 컨디션에 맞게 준비되어있다.
그리고 바다 해가 지는 중
근방의 멋지게 생긴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또 바다
돌아오는길 고양이를 만났다
시동을 걸더니
둘이 마구마구 애교를 부렸다! 그 적극성에 궁지에 몰린 나!

김밥을 하나 테이크아웃 하려고 했는데 김밥집이 일찍 닫아서 빈 손으로 왔다. 집에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데… 그래서 그냥 주욱 그대로 스타벅스까지 걸어가서 스벅에서 핑크색 제주 백년초 케이크를 테이크아웃해 집에 왔다. 다음날 아침에 먹으려고. 저녁거리는 딱히 뭐가 없어서 단백질 셰이크에 숙소 입구에 놓여있는 귤이랑 편의점에서 사 온 과자와 계란으로 때웠다고 한다.

숙소 근방 길을 걸어 전망대 쪽까지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와서 상담 좀 하고, 아로마 수업도 큰고모의 추천으로 1회 차를 들었다.

수업을 듣고 B군에게 카페쿠폰을 보내려고 하는데 그것만 띵 보내기 뭐해서 카드를 그리다 칼도 없고 마스킹 테이프도 계획과 다르게 구하지 못해서 색연필로 대략 꾸민 후, B군과 전화를 하다 잠이 들었다.

B군은 목소리가 굵진 않은데 부드러운 목소리다. 아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외로운가 연애할 생각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연락 등으로 마음을 써주고 제주까지 오고 하니까 내가 오히려 마음이 흔들리는 기분이다.

외모도 나의 취향이 아니고 불편한 점이 몇 군데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수인가? 모르겠다.

숙소 입구의 귤! 두어개 들고 길을 나선다.




오늘은 어제 스타벅스 방향으로 길을 익히고 난 후 자신감이 조금 붙어서 밑으로 쭈우욱 내려왔다.

좀 더 위쪽이라 그런가? 뭔가 햇살이 얼굴을 더 뜨겁게 비춘다. 모자를 사야겠다고 생각해서 찾은 길에 있는 카페로 내려오기 전에 있는 기념품 샵에서 모자들을 써봤는데 딱히 어울리는 게 없었다. 가격도 거의 브랜드 모자비용이었다. 이 가격이면 다른 모자를 사겠다 싶어서 그냥 주욱 걸어 카페로 향했다.

가는길에 올레길 명소 도장찍는 곳도 있다. 뭔가 핫한 느낌

너무 멍 때리면서 걸은 탓인지 찾은 카페를 지나쳐버려서 그냥 배고픔에 한라봉 주스 전문인 집에 들어갔다. 한라봉 주스를 시켰는데 (디저트 메뉴가 없었다… 점심 먹으려고 했던 타이 음식점이 닫아서 밥도 못 먹었는데….)

배고프고 좀 슬펐지만 카페 사장님이 귀여운 귤을 서비스로 주셔서

카페에서 상담을 하다가( 상담시간이 잡혀있어서 엄청 허둥지둥 카페로 들어왔었어 일해라 인간) 상담이 마음에 드셨는지 이어서 추가 상담을 하다가 마치고 다음 카페로 좀 더 걸어 내려왔다.

인디고 어쩌고 하는 카페였는데 애월에선 아직 그 카페가 제일 마음에 드는 상태야! 모던하면서도 아늑하고 바다도 잘 보이고. 커피도 고급스럽고 디저트도 고급스럽게 케이크 3종과 쿠키 3종이 감각적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래서 커피만 마시려다 커피+ 시트롱 어쩌고 케이크를 같이 먹었다.

거기서도 상담을 하고 또 상담이 들어와서 한 세 분정도를 더 보고 나니 착석시간인 2시간이 대략 지나서 우체국도 가야 하니 4시 10분 즈음 상담을 마무리하고 또 우체국 쪽으로 훠이훠이 걸어갔다.

찾았던 일식집이 ㅠㅠ마감 중이라 (그쪽까지 가니 4시 40분이 되어서) 우체국에 가서 등기로 3550원으로 B군에게 간단한 메시지와 급하게 어센드 오일을 뿌린 카드를 넣고. 쿠폰을 함께 보냈다.

등기로까지 보내긴 너무 부담스러웠는데…. 다른 가족분들이 받게 될 거 같기도 하고 24일에는 도착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대서 그냥 그렇게 보냈다.

등기비용이 커피비용 못지않으려나? 어차피 회사에서도 멀댔는데. 괜한 짓일 수 있지만 제주까지 온 것에 대한 고마움을 그렇게나마 보내고 싶어서.

크리스마스랑 이브도 되게 신경 쓰는 느낌이라. (이브도 일부러 나 돌아오면 같이 놀려고 비워놓은 분위기였다. 미안하다 왠지… 하지만 난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나의 특제 행운을 불러일으키는 그 카드라면 조금이나마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오만한 마음으로

그러고 나서 약국과 다이소에 가서 아로마테라피 2급 자격증 과정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사고 (정제수 1리터 때문에 너무 무거웠다.) 무거워서 버스를 타려는데 버스를 놓쳤다. 제기럴

그래서 별수 없이 배고프고 무거운 채로 집으로 막 걸어오는데 단톡방 큰고모의 말로 뭔가 진심 열받는 거야. (내가 케이크를 안 줘서 아빠가 서운하겠다는 뉘앙스였다.) 별생각 없이 하신 말씀이지만 당장 너무 배고프고 힘드니 더 짜증이 일었다.

그것까지가 이 제주여행의 패키지겠지만. 당시는 너무 배고프고 힘드니까 짜증이 났다.

사실 아빠 생신 때 같이 못 있는 게 죄송하고 한데 동생에 대해선 별말 없이 나보고만 챙기라고 하는 게 서운하기도 하고. 아끼면서도 갈치를 좋은 걸로 보냈는데, 다른 것들도 챙겨드리려고 이것저것 보내드렸는데… 그렇게 굳이 단체톡방에 말할 수도 없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 거 같아.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는 길에 봐뒀던 24시간 순두부집에서 정식을 시켰더니 너무 밥이 잘 나왔다! 돌솥밥도 제대로고 순두부는 조금 그냥저냥이었지만. 여기서의 가성비 갑은 그 집인 거 같다.

돌솥이 제대로였다!
밤풍경을 보며 전화하며 귀가

식당에 들어가니 마음의 여유가 좀 나서 그 카톡도 그냥 넘어갈까 하다 “제주에서 내 마음과 사랑을 담아 보냈다” 고 은유적으로 보낸 후 아빠 사랑한다고 남겼다. 유치하지만 그 정도로 뭔가 날 지켰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져서 밥도 잘 먹고 집으로 걸어왔다.

6시 반이 넘어서 밖이 깜깜해져 버렸지만. 별이 뜨고 하늘이 어두웠는데 B군이 가는 길에 전화를 해서 전화를 받으면서 집으로 좀 돌아왔다.

정제수 등의 짐이 너무 무겁고 오르막 길이 있어서 약간 헉헉거렸지만 가는 길에 누가 그렇게 신경 써주고 전화해 주니 좋았다.

아로마 수업에서 준비물로 말한 핫플레이트 대신 티라이트 버너도 쓸만하다고 알려줬는데 그것도 서울에 있고 다이소에서 그걸 더 사고 싶지 않다. 그냥 복도에 있는 전자레인지를 써보거나 그냥 물을 덥혀 중탕하는 식으로 때워볼 생각이다.

숙소에 도착한 후엔 너무 힘들어서 좀 멍 때리면서 쉬다가 상담을 두 건인가 좀 하고 (누가 후기글을 올려주셔서 새로운 분들이 많이 온다.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힘드니까 그.. 그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사실 그리 많이 오는 건 아니겠지만, 애초에 욕심 있게 해 볼 생각도 크게 없었으니 더더욱 그렇다… 너무 예상치 못한 일이야.)

욕심 있게 키워볼 생각은 없었는데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고. 오시는 분들도 감사하고 당장의 이런 인생 구조도 너무 좋고 만족스러워.

이번 생엔 무슨 역할이 나에겐 주어진 걸까. 원래 의도와는 다르지만 어찌 되었든 오신 분들이 조금이나마 치유와 위안을 받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사실 이전에 받던 타로나 상담에서 아쉬웠던 점을 보충해보려고 한 게 주요 포인트인데. 이 마음은 누군가에게 힘이 진짜로 될만한 진짜인 걸까?


밤엔 전화를 하는데 B군이 어젠 오랜만의 출근이라 그런가 좀 피곤한 눈치기도 했고, 이브에 혼자 있는 게 아무래도 너무 속상한가 봐.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전날은 오랜만의 전화라며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는데 좀 속이 상한 게 여기까지 느껴졌다.

나도 원래 크리스마스랑 기념일이 중요하던 사람이었는데. 2년간의 나름 힘든 시간이 날 돌로 만들어버린 건지. 내일이 이브인 것도 크리스마스에 혼자인 것도 전에 비하면 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몇 년 그때 혼자 공부를 했더니 별 날이 아니라고 각인이 되었나. 그냥 아무 일 없이 혼자 있어보니 그날도 그냥 똑같은 날이더라. 의미를 부여한 건 정말 외부의 일이고. 내가 무얼 하느냐에 따라 너무 그냥 별 일 아닌 평범한 날이기도 했었어서. 그런 설명을 해줘야 하나?

근데 그것도 굳이이고 그게 궁금하지 않을 거 같기도 하고, 그걸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도 상대보단 날 위한 거니까. 일단은 접어뒀다.

안 받아주면 어쩔 수 없지. 나 역시 그 친구의 서운한 점을 100프로 채워주지 못했으니까. 아직 별 사이도 아니고.

암튼 전화로 피곤하다고 한 건 처음이라. 금방 전화 끊고 그러고 너무 피곤해서 내가 먼저 잠들었다.

진짜 걷는 거 최고야. 몸과 마음 모두에.

내가 크리스마스가 별 날이 아니라고 여길 만큼 흉터투성이인 사람이 되고서야 만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스쳐가는 별일지언정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었으면.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

다른 무엇보다 내가 다시금 빛나는 별로 모든 것을 잘 이끌어갈 힘을 낼 수 있기를.


어젠 아빠 생신이라 전화도 드렸는데 우리 아빠는 진짜 금방 전화를 끊어버렸다. 맨날 엄마랑 전화하면 옆에서 사이드로만 이야기를 하고 왜 전화가 이리 어려운 거야.

본론만 말하는 건 지금은 진짜 효율적이고 편하게도 느껴지지만. 내가 더 아빠가 궁금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빠의 우주가 그만큼 조금은 쓸쓸했었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너무 날 사랑해 주는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우주 우리 아빠. 생신을 너무 축하드리고 사랑합니다! 엄마께서 맛있는 음식 (제주 고사리, 갈치구이, 등등)도 해주셔서 사진도 너무 귀엽게 찍으시고 영상편집도 요새 스타일로 해서 보내주셨던데 아빠의 우주가 조금 궁금한 하나의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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