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담아, 애월 6일 차
21.12.25 토요일 밤 10시 4분
조용하고 가장 멋스러운 크리스마스.
오늘은 제주에 온 이래로 가장 추운 날이었다.
나름 눈이 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지만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다 부스러지는 가루눈이 내렸다.
지금도 밤하늘 아래 조금씩 눈이 흩날리는 것 같아. 창 밖의 야자수 나무가 흔들리고 소금 같은 눈이 사르륵 내리는 신기한 제주의 눈.
오늘은 크리스마스 및 추운 날을 맞아 방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있었다. 얼마 전 무리해서 해수욕장을 두 군데나 다녀왔더니, 은근 무리였는지 입가도 다시 터지려고 하고 날도 추워서 아무 데도 가고 싶지가 않았거든.
원래 조용하던 파도도 오늘따라 굉장히 거세게 쳐서 하늘색 부분이 많은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었다.
바람 소리도 엄청 매섭고 새들도 날아가다 바람에 뒤로 밀리더라구. 당황한 표정과 지저귐을 잊을 수가 없네. 안 다치게 조심해라 새들아…
푹 자고 9시가 조금 넘어 일어났기 때문에 천천히 일어나 밥 조금과 치킨을 먹고 어제 보던 겨울왕국 2를 마저 이어 봤다. 엘사와 뭔가 감정선이 겹쳐서 굉장히 울먹울먹하면서 감동적으로 봤다.
엄마랑 통화도 하고 주변사람들이랑 인사도 나누고
과언니에게 스벅 크리스마스 메뉴 쿠폰도 받고
친구 M도 핫팩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줬다. 감동
“올라프가 대신 전해줍니다“ 시리즈도 재밌게 다 보고 커피도 마셨다. 텔레비전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연속으로 틀어줘서 진짜 오랜만에 티브이를 내내 켜놓은 하루였다. 8시엔 상담도 하나 하고 해리포터를 마저 끝까지 다 봤나 봐.
하루종일 한 게 배고프면 치킨 먹고, 영화 보고 해리포터보고 보고보고 또 보는 하루였는데 상당히 괜찮았다.
그동안 영화를 잘 안 봤었는데, 보다 보니 또 다른 영감과 감성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다.
해리포터도 “엥 해리포터네 그냥 틀어야지”하고 튼 건데. 마지막에 스네이프의 사랑 나올 땐 진짜 눈물이 저절로 주룩주룩 이었다. 스네이프 이 바보 같은 사람…! 뭔가 공감도 가고 안타깝고 ㅠ 내 사랑방식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그랬을까? 가만 보니 머리스타일도 뭔가 지금 비슷하네
아무 생각 없는 크리스마스라 기대를 안 했는데 오랜만에 여러 영화를 보면서 눈물도 흘리고 참 값진 시간이었다.
이 순간에 정말 말 그대로 충실할 수 있는 편안하고 따뜻한 하루였어. 바닥도 정말 따숩고 커피도 맛있고 쿠키도 맛있고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 오래간만에 충전됐다.
터졌던 입도 많이 좋아졌어. 내일도 엄청 춥다니까 멀리는 안 가고 근방 카페정도만 들러볼까 봐 먹을 거 좀 사 오고 하는 정도로만.
어젯밤엔 크리스마스 파티를 나름 거하게 하고 내담자님 덕분에 치킨도 맛있게 먹고 비상식량 닭가슴살도 잘 쟁여두는 좋은 밤이었다. 조명도 이것저것 밝혀서 알찼어.
상담도 메일상담을 열어도 좋을 것 같은데
거기 쓰고 싶은 도안도 영화들을 보다 보니 좀 생각나서 그려볼 생각이야. 참으로 좋은 하루.
어제는 또 자기 전에 B군에게 지난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 및 생각 등등을 처음으로 솔직하게 밝혀봤다. 이해가 100프로 되진 않겠지만,
그런 적이 없기 때문에 속마음을 꺼냈다는 그 자체로도 상당히 만족했다.
B군도 그런 설명 및 편지 등이 뭔가 마음에 와닿은 건지 어떤 건지 프사노래도 사랑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식이라 조금은 감동을 받았다.. 말하길 잘한 거겠지?
B군은 오늘하루 성당 사람들이랑 이래저래 바쁘게 보낸 것 같은데. 뭐… 모르겠다.
오후즈음 쿠키 먹고 기분 좋아져서 M이랑 J랑 내 6개월간 연애운 대략 봤을 때 마음도 되게 편하고 사람도 이래저래 많이 들어오는 흐름이 있었는데 과연 어찌 될는지.
6개월 이내 연애운도 있다고 나와서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상당히 궁금하다.
셋의 운의 흐름을 보는데 내 것만 좋게 나온 게 좀 그랬지만, 재미니깐.
혼자 있는 크리스마스지만 크게 외롭지 않고
요가시간에 배웠던 “지금 여기 있는 것”을 실전에서 편하게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어.
여기에 있기 때문일까?
혹은 이젠 받아들임을 아는 사람이 된 거라 그런 걸까 궁금한 시간.
작년엔 정말 외롭고 많이 괴로웠던 기억이 나.
지금은 자발적으로 혼자 노는 해였는데, 이건 발전일까?
아님 그냥 재밌게 놀았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너무 이렇게 따지지 말고 말이야.
꼭 정의해야만 좋은 하루는 아니니까.
내일이랑 모레도 춥다는 것 같은데
지금 여기 나는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돌아갈까 기대하며 오늘 하루 그림 좀 그리다 마무리할래.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오늘도 열심히 보내주어서 고마워
상담 와주셔서 고맙고, 날 생각하며 인사해 줘서
다들 너무너무 고마워. 나도 포함해서.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