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은 여행*19] 편하다는 건 뭘까

사랑을 담아, 애월 7일 차 21.12.26 일요일

by 천백희

오후 3시 18분

참으로 변화무쌍한 제주의 날씨…

크리스마스엔 찔끔찔끔 오던 눈이 오늘따라 미친 듯이 오기 시작해서 몇 번을 바깥 시야가 안 보이다가 보이다가를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한 번도 눈이 쌓인 적 없는 제주의 날씨인데

처음으로 눈도 살짝 쌓이고 새가 바람에 뒤로 밀리는 장면을 또다시 봤다.

괜히 그려보는 꽃그림

방바닥에서 지지면서 푹 잔 오늘은 건조했는지 코피를 흘리다, 친절하신 부부 관리자 님들의 싸움소리에 눈치를 보며 물을 떠 오고, 수건을 밖에 내놓고.

못 나가려나 하고 방에서 닭가슴살에 밥을 먹고 커피와 홍차에 쿠키를 먹으며 심심해하다, 엄마와 통화 후 준비로 하루를 시작했다.

집에만 있으니까 너무 심심했다!

B군도 자기 일상으로 바쁘고 가족들이랑 있으니 크게 놀아주지 않을 거 같아서

집에만 있으면 처질 느낌이라 잽싸게 씻고 집을 나섰다.

비군이 전해 주고 간 차와, 미리 사둔 말차쿠키

준비하는 동안 친구 Y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며칠 전만 해도 크리스마스트리 이쁘게 꾸몄다고 자랑하는 이야길 전해 듣다 전혀 다른 얘길 들으니 멍했다.

알고 보니 상대에게 이성문제가 있어서 헤어졌고. 지난번에 제주에 와서 들은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욕이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좀 강하게 허탈함이 밀려왔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절친한 친구가 둘이나 헤어지다니.

그래서 결국 결혼한 친구 제외하고 거진 또 솔로파티가 되어버렸다는 후문.


사귄다는 건 뭘까.

어제 이진아 님의 ‘편하다는 건 뭘까’를 들으며 나의 관계들과 마음을 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있었는데, 많이 슬퍼졌다.

물론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좋은 인연과 이어지는 게 참 어려운 일 같아서 슬퍼졌다. 나는 그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아님 그건 그냥 헛된 희망일 뿐이고 적당히 포기하는 수밖에 없으려나 싶기도 하다.


왠지 분노에 찬 상태로 준비를 마치고, 날이 좀 개었을 때 나왔는데도 가는 도중 눈보라가 치더라

거의 우박처럼 눈이 머리를 때렸는데 아프지도 춥지도 않았다.

시원한 바다를 보고 몰아치고 물러가는 파도들을 보고

바다 위로 짙게 드리운 물안개를 보고 또 봤다. (바다가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껴서 너무 신기했다)

바람이 너무 불 땐 그럴 리는 없음에도 좀 날아갈 것 같아서 몸을 사렸지만.

그런 변덕스러운 광경조차도 너무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물결도 하늘색의 그러데이션이 너무 아름답고 눈이 미친 듯이 날리지만 나는 날아가지 않는 그 순간이

마법처럼 영원히 마음에 기억이 될 것 같다.

제주의 새들은 바람에 뒤로 날리곤 한다
시원한 풍경을 보다보니 풀리는 기분. 기분도 참 제주 날씨와 같다

눈보라를 헤치고 요가 수련원 근방의 카페에 올 즈음엔 날씨가 그래도 다시 개었다.

거짓말 같은 날씨와 사람의 마음과 “현재 여기 있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들어온 카페엔 사람이 가득 차있었다.

관리자 내외분께 드릴 떡만 사고 다른 카페에 갈까 하다 자리가 마침 나서 앉아 떡 메뉴를 시켰다.

오늘의 카페: 카페 쌀쌀


개인 떡카페 자체가 처음인 것 같은데 분위기가 좋다. 한라산 떡이라는 신기한 메뉴와 붕어빵 떡구이라는 메뉴도 있어서 나중에 한 번 더 오게 될 것 같다.

붕어빵 떡구이도 궁금한데 오늘은 일단 할라한라산 떡을 먼저 먹어보았다.

모양이 귀엽고 거기다 크림을 붓는 방식이 신기해서 주문한 떡인데 생각보다 떡도 쫀쫀하고 모양도 귀엽고 안에 있는 팥소와 위로 뿌리는 크림치즈 흑임자 소스의 조화가 상당히 괜찮았다.

떡도 따끈따끈하게 나와서 한라산 모양 떡 위로 김이 스르륵 올라오는데 너무 귀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배가 조금 고파서도 있지만 메뉴 자체가 맛있어서 몹시 맛있게 먹어치웠다.

근방에 돌모양으로 장식된 쿠앤크초콜릿쿠키 비슷한 것도 상당히 조화가 좋아서 풍미를 돋왔다. 커피를 시킬 걸 그랬나 살짝 어지러워서 청귤에이드를 시켰더니 조금 아쉽다.

그래놀라 바도 두 개나 주셔서 하나는 남았는데 얼른 지금 먹고 소화를 시켜야 이따 저녁을 먹을 텐데

저녁을 ”언니네식탁“이라는 가정식 비슷한 메뉴를 하는 식당에 가서 먹으려고 생각 중이라서 말이다.


주인아주머니 귤이 참 맛있어서 L아줌마께 보내달라고 엄마가 그러셨는데 , 저녁즈음엔 주인아주머니 기분도 좀 괜찮아지겠지?


추운데 눈보라를 헤치고 와서 배까지 부르니 굉장히 졸리다.

언니네 식탁에선 일단 그냥 테이크아웃을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1인분이 너무 많은 나로서는 그게 최선의 선택일 거라 생각했으나 가게가 오후 2시 반에 마감이다.

제주 온 이래로 5시 마감도 충격이었는데 2시 반이라니… 세상에나 마상에나…

다음에 요가 갔을 때나 가봐야겠다.

저녁 뭐 먹지. 날씨만큼 자유로운 제주의 마감


편의점 식품으로 대충 오늘 저녁과 아침을 때우게 생겼다. 서귀포에서보다 더 여러 가지가 좀 더 불편할 줄은 정말 꿈도 못 꿨다. 괴로워


제주시까지 익숙한 길을 뚫어야 좀 나으려나

여기가 제주시에서 거리도 멀어서 마트도 마땅히 없고 편의점도 가깝지가 않다.


나름 바다도 보이고 등대도 보이고 파도치는 건 잘 보이지만 괜찮을까 앞으로.

더욱 배고픈 한 달이라니. 행복하지만 내가 이 정도로 힘들다면 친구를 초대하긴 더더욱 조심스럽다.

친구 M은 그래도 오고 싶다고 하던데. 무당벌레나 그전까지 잡아야겠다. 창문을 안 열었는데도 계속 무당벌레가 어디선가 나온다.

점점 안 나오긴 하지만 어제도 종일 집에 있으면서 3마리인가 2마리는 잡은 거 같다. 오늘은 원킬정도.

어휴… 아무튼 식사는 집에 가는 길에 뭐가 특별히 없으면 진짜 그냥 편의점 음식으로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떡이 맛있어서 내일 아침에 먹을까 했는데 지금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물린다. 혹시 모르니 사다둬야하나. 비상식량이 필요할 줄은 진짜 몰랐네.

배고픈 낭만은 힘들어.


심지어 제주에서 정리하고 싶었던 글 초안을 네이버 메일로 글을 보내놨던 거 같은데

없다. 다음 메일에도 없고 놀다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건가.

마우스도 안 먹혀서 진짜 힘들게 보냈었는데 안 보내졌었나 보다. 황당하고 허탈하네

대가족분들께 쓸 편지도 정리되어 있었는데

좀 더 나중에 생각하라는 뜻인가 뭐야 이게…

야생의 제주 점점 야생이 되어가는 나.

밥 메뉴도 돌아가며 있는 거로 대충 해야 하는 찐 야생이라니…!

글을 쓰다 보니 4시 반이 되어서 5시엔 천천히 걸어가야 해지기 전에 갈 수 있다! 5시 40분쯤엔 해가 지니까

사람도 계속 많더니 카페도 마감이라고 새로 오시는 손님은 쫓겨나셨다.

제주의 카페란 뭘까. 제주의 음식점이란 뭘까.


엄마랑 전화도 잠시 하고

음료에 있는 청귤만 좀 먹고 찬찬히 가야겠다.

해가 벌써 지고 있는 데다 눈보라가 또 치고 있어서 가는 길에 슬슬 음식점을 보려면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

입가도 아직 살짝 다 안 나아서 간지러워.

탐험을 다시 재개하려면 정비를 다시 해야지!

오후 4시 44분

고즈넉한 풍경을 멍하니 보다 나온다.

사람이 거의 없어진 카페에서 잠시 바깥 풍경을 대략 본 후 먹거리를 사냥해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낑깡의 사냥이라 그런가 영 시원치가 않네.

즐거우니까 된 거겠지

어제 종일 집에만 있다 나왔더니 정말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맛있는 떡도 먹고! 집에서 또 써야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 신기한 점은. 돈이 좀 부족해진다고 생각할 때 상담이 정말 정말 많이 들어왔었는데

용돈 날이 지나자마자 갑자기 손님이 안 온다.

하늘은 정말 나를 도와주는 건가? 운이 좋은 건가?

당장은 너무 지쳐서 상담 그만하고 싶은 건 사실이라 오히려 좋지만 짧은 시간 내에 꽤 많은 돈이 모이는 걸 보고 신기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 주변 사람들도 많이 돕고.

작은 재능이 누군가에게 빛이 된다면

도움이 되는 한 상담은 계속하려고.

이번생 내 역할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고 몸부림치다 가야지.

PM8:38

하루 종일 혼자 난리를 치고 있다.

기분이란 건 참 신기하다.

불과 몇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이렇게 우울하고 짜증이 날 수가 있나.

카페에서 조금씩 간지럽던 입술이 더 빨갛게 커져서 그럴까?

저녁이 별 게 없어서 편의점 수제비로 때웠기 때문일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춥기 때문일까?

연애로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걸까?

방에서 무당벌레가 나와서 그럴까?

그 와중에 좋은 방을 찾는 역할을 맡으라는 게 싫어서 그럴까?

와서 영화도 재밌게 보고

사장님께 떡도 잘 드리고

귤도 무한으로 먹으라고 허락도 받고 그랬으면서.

지금은 수제비도 얹힌 거 같고 속도 울렁거리고….


왜 잡아도 잡아도 계속 무당벌레가 나오는 거야.

물론 바퀴벌레나 나방, 애벌레 같은 것보단 훨씬 낫겠지만 그냥 안 나왔으면 좋겠다. 환기시키기도 조심스럽다.


진심으로 진짜 너무너무 행복하고 팔자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팔자도 좋고 따뜻한 방바닥에 지지면서 행복하게 잘 자면서.

갑자기 고모부께서 역할을 두 개나 맡으라고 카톡을 주셨고 답이 없으니까 엄마가 전화로 고모부께서 전화하셔서 내가 숙소를 찾아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했는데. 왜 그런 거야. 못된 거야 귀찮은 거야? 둘 다인가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도 있는 것 같다. 혓바닥도 살살 아프고…

에너지가 떨어졌는데 뭔가 더 맡기 부담스러워서일 수도 있어.

어차피 내일도 눈이 와서 어디 못 갈 수도 있으니까.

자고 일어나서 답장을 드리는 게 좋겠다.


가족여행은 큰고모의 퇴임식이 2월이라

설 즈음 다 같이 온다는데. 지금 확실히 피곤한가 보다.

그럴 땐 컨디션이 좀 나을 때로 미룬다.

지금은 왜 귀찮은 일을 나에게 미루나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도 카페 갔다 오니까 얼굴이 누렇게 뜬 거야 집에서 영화 보고 쉬다 보니까 다시 원래 색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몸이 어디가 안 좋은 거지? 이상해.

입술 간지러운 거 말곤 크게 문제가 없는데

좋은걸 좀 더 먹어야 하는 건가…

나이 들수록 몸 관리가 더 어려워지는 게 맞나 보다.

법원직 공부는 어찌하려고…


일단 좀 씻고 누워서 뒹굴거리다

B군과 좀 놀다가 자야겠다.


일단 좀 자고 일어나서 잘 답장해야지.

밤 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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