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귤과 함께 4일 차
오늘은 아예 커튼을 걷어놓고 잠이 들었다. 유리창으로 살짝 찬 바람이 들긴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바다의 뷰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전 7시 반에 또 자동으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벌써 몇 번을 보는지 모르겠는 범ㅋ섬ㅋ과 어스름한 바다였다! 눈을 뜰 때마다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이다.
오늘은 10시까지 자려고 했는데 8시쯤 할 일이 들어와 있었다. 아이폰에 아직 적응이 안 되어서 카톡을 켜기 전엔 알림 톡이 제대로 안 보여서 몰랐다. 일은 간단한 일이라 깔끔하게 잘 마무리되어 보람찬 하루의 시작이었다.
25분쯤 마무리하고, 40분 즈음엔 잠이 다 깨서 향도 좀 태우며 다시 출발할 마음을 가다듬다가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어제 친구 J 추천 카페에서 사 온 치아바타를 발사믹 올리브유 소스에 찍어먹고 배불러서 4분의 1 가량 남긴 후 커피도 우려먹고 준비를 시작했다. 치아바타는 향이 진짜 장난 아니게 좋았다. 하지만 먹다 보니 뭔가 질려서 두 번은 못 사 먹을 것 같다. 위장이 비루해서 그런가.... 아침부터 너무 빵이라 그런가 뭔가 많이 안 들어갔다.
오일로 양치를 하고 아로마 오일을 얼굴에 바르고 오늘은 화장이 하고 싶어서 살짝 눈썹과 눈 화장을 하고 근 11시에 집을 나왔다.
숙소 반대편으로 올라가기 싫어서( 너무 아스팔트 길) 바로 앞의 올레길 1코스로 걸으며 바다를 보고 도로변으로 다시 어기적어기적 올라가 한라산 치유의 숲으로 찾아가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그런데 지도에서 알려준 버스 정류장이 약간 간이식이었는지 정류장을 발견하지 못해서 한참을 걸어갔다. '왔? 왜 정류장이 없지? 오늘도 오지게 걸을 거란 예고편이군.' 이란 생각을 하며 열심히 길을 따라 올라갔다. 그래도 가다 보니 백년초 박물관? 같은 것도 있고 (박물관이라기보단 작은 카페같이 생겼다. 계단 아래에 먼가 있는 거 같기도 하지만 시간을 보내긴 애매해서 지나쳤다.)
좀 더 가다 보니 드디어 정류장을 발견하여 버스를 반가운 마음으로 탈 수 있었다. 아무리 뚜벅이가 빨라도 속도는 뚜벅 <자전거 <전동 킥보드 <버스 <자가용 일수밖에 없는 것.
버스를 타고 가다 천지연 폭포도 지나가는 걸 보고 오는 길에 오늘은 가고 말리라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중간지점까지 나온 건 좋았으나 치유의 숲 가는 버스가 진짜 1대뿐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기에 부츠용 깔창을 사기 위해 10분 거리에 있는 다이소에 갔다. (내가 있는 거리랑 폴댄스 학원 아주 가까이엔 다이소가 없다! 이마트는 있지만) 아파트 단지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있어서 멍미… 했지만 생각보다 큰 다이소여서 깔창과 부츠 굽 보호 테이프도 사고, 바로 옆에 친구 M이랑 친구 JJ의 브라이덜 샤워해줄 때 마셨던 봄봄 카페가 있기에 또 마침 친구 M양이 준 커피 홀더도 가방에 있어서 그 홀더에 1300원짜리 작은 아메리카노를 담아 다시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간을 썼는데도 버스는 아직이었다. 한참 기다리다 같은 번호인 버스가 갑자기 와서 탔는데 그것은 치유의 숲 방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ㅠㅠ 다음 역에 어떤 여자분이 물어보는 거 보고 알아서 나도 그다음 역에서 조용히 내렸다. 진짜 한 시간은 넘게 기다린 거 같고 12시 40분이 넘어서 배가 고팠기 때문에 기다리다 근방에 있는 던킨에서 도넛도 하나 사서 뜯어먹으며 버스를 기다렸다. 마스크 사이로 트위스터 동그란 거 하나씩 떼서 입에 집어넣고 씹었다. 그럼에도 좀 더 기다려서야 버스가 왔다. 걸어서는 1시간 넘는 거리에 버스가 있음에 감지덕지하며 버스를 타고 산을 올랐다! 오 기압이 의외로 높아지며 머리도 띵하고 주변의 산 풍경들이 신기해서 사진도 찍었다. 얼마 안 지났는데 이미 피곤하고 에너지가 없는 느낌이 들어서 하품이 났다. 치유의 숲까지는 그 버스로는 딱 3명이 갔나 보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치유의 숲은 차량 정원 및 숲 보호를 위해 하루에 600명만 받는 예약제 산이었다. 무계획하게 왔던 나는 퇴짜를 맞고 안내소 근방의 화장실이나 갔다가 치유의 숲 입구에 온 데에 나름 만족을 하며 내려왔다.
가는 길에 만난 아주머니께서 전날 1000원 내고 예약하면 숲 해설가님이 3시간가량 같이 숲을 걸으며 설명을 해준다는데. 당일 예약은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해서, 숲에 그 정도의 애정이 없고 숲을 조금 싫어하기도 하기 때문에 관두기로 했다. 생각해둔 다른 일정도 많은 데다 이미 숲 비슷한 입구를 걸어온 것에 오늘치 숲 할당량 만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로마 체험이 있는 프로그램도 있어서 그 프로그램이라면 참여를 하겠지만 지금은 숲 해설가님의 설명 정도가 다인 거 같아서, 다음에 다시 예약하고 갈 생각도 안 든다. 일단 찾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 버스가 너무 안 온다. 그래서 다시 숲길을 내려오며 간단히 어댑티브 향을 맡으며. 그래 예약하지 않은 나를 받아들인다 하며 길을 내려왔다.
한라산 둘레길이라도 가려고 했는데 버스도 없고 걸어서 무슨 2시간 반 거리라 좀 걸어가다가 포기하고 다시 반대로 방향을 돌려 중간에 있던 솔 전망대로 걸어갔다. 다시 치유의 숲 입구를 지나 조금 걷다 보니 추억의 길이라는 곳도 있어서 살짝 들어가서 포기브 오일을 바르고 향을 음미를 하며 숲 속 아로마 세러피를 나름 한 후 금방 나왔다.
뭔가 멧돼지 주의 표지판도 본 후인 데다 사람이 없어서 진짜 멧돼지를 만나면 사망할 거 같아 조금 무서웠다. 다시 전망대까지 대략 30분 거리를 갈대와 사진도 찍고 노래도 듣고 지나다니는 차와 트랙터들을 무서워하기도 하면서 걸었다. 찻길 옆 풀밭 오솔길이 울퉁불퉁해서 발목 연골 사망하기 딱 좋은 길이었다. 발목이 종종 꺾이고 길이 평탄하지가 않아서 상당히 뻐근했다. 이젠 예전의 발목이 아니긴 아닌 거 같다.
전망대는 겁내 심플하게 높이 있는 대 하나여서 약 3분 안에 다 봤다. 그리고 정말 그곳의 막차인 버스를 3시 조금 넘어서 타고 다시 내려왔다.
한 끼도 안 먹고 3시가 넘었기에 상당히 배가 고팠다. 그래서 산 중턱에 있는 커피집을 갈까 하다가 더 아래에 있는 식당으로 바로 갔는데 3시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 타임 ㅠㅠ
그래서 다시 버스를 타고 좀 더 시내 쪽에 있는 전복 문어장 비빔밥을 먹기로 했다. 그곳은 그나마 또 4시에 오픈이라 이건 운명이야 했는데 그 근방 가니 아직 3시 20분 정도라 전국 5대 뱅쇼에 든다는 뱅쇼 집에 가려고 했더니 그게 서귀포 시장 안에 있던 것이다!
눈이 또 휘둥그레 해지고 각종 귤들과 무슨 레드향이 아니고 처음 보는 붉은 귤( 홍매향이라고 한다 사진을 보니)도 있어서 그걸 엄빠께 보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갈치도 시장 한 구석에 있었는데 바로 보내기엔 좀 망설여지는 비주얼이었다. 제주 카롱 같은 집도 있고 아기자기한 기념품 집들도 근근이 있어서 눈이 즐겁고 재밌었다. 제주돼지 김치말이 등등 시장 메뉴들도! 다음 일정이 없으면 사가고 싶었는데 가방이 이미 너무 무거워서 좀 버리고 싶은 느낌이라 확 사기가 망설여졌다. (내일은 가방 좀 훨씬 가볍게 들고 나와야지. 타로카드를 빼거나 해야 할 듯. 탭이랑 키보드 다 빼고 글을 그냥 숙소에 가서 정리하거나 ㅠㅠ 진심 너무 무거워. 다닐 때 기운이 1.5배로 떨어지는 느낌이야. 내일은 학원에 갔다가 둘레길을 제대로 갈 생각이니까 더더욱 그래야겠다.) 그렇게 구경을 하다 보니 거의 3시 58분이 되어 음식점에 들어갔다. 홍매향은 나중에 먹어보고 사기로 마음먹고.
음식점은 굉장히 세련되고 예쁜 가게였다. 들어가는 길에 돌멩이가 있어서 자갈길 잘못 밟아 자갈 거리며 들어갔다......
혼자 여행 오신 분들이 많이 오시는지 이번엔 젊은 종업원분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자리에 앉아 편히 메뉴를 시켰다. 나름 전복과 문어가 들어간 메뉴인데 가게도 세련됐는데 어제 갈칫국과 거의 비슷한 금액이라 만족하며. 라면 같은 밀가루 메뉴가 아닌 영양밥이니 메뉴를 시키면서도 만족감이 들었다. 종업원 분이 손을 약간 떨면서 주셔서 국이 세 방울 떨어졌지만 뭔가 정감 가는 분이셨다. 그리고 아이폰이 20프로 대라 걱정이 되었는데 알아서 충전도 잘해주셨다. 밑반찬도 맛있고 ( 바질 마카로니 같은 메뉴 + 미역 초장은 건강해지려고 그냥 먹었다.) 간도 딱 적당하니 장도 비린내 안 나고 좋아서 싹싹 다 긁어먹었다. 다 먹을 즈음 다른 혼자 여행 오신 듯한 여자분도 오셔서 라면을 시키셨다. 여기 라면엔 황게가 들어간다는데 그걸 먹어봤여야 했나 싶었지만. 밀가루가 안 먹고 싶었다. 에너지 부족은 밥을 먹어줘야 한다는 옛날 사람.
밥을 먹었더니 또 기운이 불끈 나서 시장에 가서 일단 집에 시키기 전에 홍매향이 맛있는지 먹어보고 사러 갔다. 머리에 귀여운 두건을 하신 귀여운 아주머니분이 계신 가게에 섞어 귤이라는(ㅋㅋ) 딱 내 취향의 종류별로 먹어볼 수 있는 귤이 있어서 그걸 샀다. 보통 1킬로에 다 만원이던데 섞어 귤은 홍매향과 황매향 그리고 그냥 귤 종류별로 다 있는데 같은 가격이라 한 200프로의 매력이 있고 너무 귀여웠다. 봉지에 귤을 담아 배송료는 +5000원이라는 정보를 듣고 먹어본 후 다시 가게로 오기로 마음먹었다.
귤을 무겁게 들고 계획했던 마지막 코스인 천지연에 가는 건 걸렸지만 섞어 귤 안 살 수 없었다. 너무 귀여워 지금도 봉지를 보면 너무 귀여워 사랑스러워

무거운 가방과 섞어 귤 봉지를 들고 음식점에서 전화가 안 된 엄마와 전화를 한 후 천지연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왔다. 어제의 전화가 마음이 쓰이셨는지 무리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엄마는 대략 5만 원 정도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또 갈치 보는 안목을 못 믿는 눈치였지만 최소 엄마한테는 꼭 보낼 생각이다. 게다가 직장에 내가 제주도 간다고 자랑을 해둬서 일단 직장으로 귤은 꼭 보내달라고 하셨으니 ㅋㅋ 그것도 오늘은 말고. 오늘 보내면 도착 예정일이 주말이 되어버리고, 월요일 즘에 부쳐야 안심이 되니까 그러기로 했다. 일단 이 홍매향 먹어보고 말이야.
바람이 차가워져서 좀 추웠는데 탄소 의자가 앉으면 엉덩이가 따뜻해져서 앉아있다 보니 잠이 좀 왔다. 옆에 있는 할머니는 눈 감고 주무시더라. 고양이의 마음이 뭔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도 좀 노곤 해질 즈음 천지연 행 버스가 와서 버스를 타고 천지연에 가려는데 그것도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또 걸었다...... 살 빠지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
많은 코스를 갔지만 아직 5시 반 즈음이라 생각보단 밝았다. 천지연이 야경명소래서 "오히려 좋아"인 마음도 있었는데 무인 매표소에서 2000원에 매표를 하고 들어가 보니 날도 별로 어둡진 않고 무엇보다 벌레가 무척 많았다. 날파리가 너무 많아서 오래 머물기가 너무 힘들더라! 그래서 사진 좀 찍고 도망치듯 후딱 나왔다.
천지연 폭포는 생각보다 내부가 길거나 넓지 않아서 좋았지만 생각보다 엄청 멋지진 않았다. 친구 D랑 Y, L이 오면 천제연에 가기로 했는데 거긴 더 예쁘다고 하니 기대를 해본다. 천지연 폭포도 전등이 켜지길 기다렸으면 더 예뻤으려나? 그러기엔 날파리가 너무 많았지만! 하얗고 무리지은 날파리들 ㅠㅠ 겨울인데도 여긴 아직 따뜻해서 그런가! 그래도 폭포 소리는 시원하고 좋았다. 처음으로 사진 찍은 제주 명소다! 엄청 예전인 중학생 땐가 오고 오랜만이었다.
혼자 열심히 사진 찍으면서 다시 나오고. 나오는 길에 산타 모자 쓴 하르방도 귀여워서 셀카를 찍고 나왔다.
그리고 찾아뒀던 이쁜 카페로 또 걸음을 옮겼다.
준이라는 카페였는데, 언덕을 약간 올라야 했지만 엄청 이쁘고 브라운 크로플도 맛있고 뷰도 좋고 귤 에이드도 맛있었다! 여름엔 스쿠버다이빙 프로그램도 있어서 이전에 김병만도 정글의 법칙에서 다녀간 것 같았는데, 지금 입수했다간 심장마비 각이다.
멀리로 불빛이 켜진 다리도 보이고 전구들도 이쁘고. 브라운치즈크로플이 이전에 서울에서 소개받은 곳보다도 맛있어서 우걱우걱 순식간에 먹고
글을 오지게 쓰다가 8시 살짝 넘어서 나오니까 가게 정리하시더라.... 12시까지라고 하셔서 맘 놓고 글 쓰고 앉아있었는데. 그래도 덕분에 죽어가던 아이폰이 75프로까지 충전되어서 살았다.
노래도 거의 마지막에 내가 좋아하는 백예린의 Rest를 틀어주셔서 혼자 흥얼거리며 마무리하고 나왔다. 캐럴을 많이 틀어두셨는데 나란 솔로는 캐럴이 마냥 기쁘지 않았다. 물론 노래들은 다 좋으니까 싫어하지도 않지만
네이버 지도에 쓰여 있는 8시에 나온 건 좀 맛있는 커피 집에 들렀다가 또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였다. 이렇게 펑펑 쓰다가 파산할지도 모르지만 커피 한 잔 5000원에 파산하진 않겠지 하고, 나중에 생각나면 아쉬우니까 지금 이 카페로 왔다. 여긴 좀 힙하고 음악도 크고 인생 모카라는 커피를 시켰는데 원두가 맛있어! 크림이랑 그 위에 각종 견과류랑 초콜릿이 있어서 약간 커피맛이 제대로 안 나긴 하지만(+ 뭔가 급하게 원샷해버렸다. 맛있어서 그렇겠지?_사실 막차가 끊길까 봐 좀 무섭다. 걸어가면 57분이고 버스 타면 약 20분 거리라)
어제보단 돈은 덜 쓰지 않았을까 싶지만. 참으로 알차고 바쁜 하루였다.
스스로 성격이 여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인은 한국인인가 봐. 이렇게 바쁘게 다니다가 가고픈 곳을 거진 가고 나면 좀 더 여유가 생기려나?
일단 내일은 폴댄스에 갔다가 끝나면 학원 근방이나 둘레길 근방에서 밥을 먹고 둘레길을 갈 예정이야.
오늘은 얼른 돌아가서 귤 좀 까먹고 씻고 정리하고 자야겠다.
한가롭게 보내려는 힐링여행인데 나한텐 이렇게 바쁜 게 힐링인가?
JJ는 못 오게 되었지만 E도 와서 나랑 만나겠다고 하고... 공부할 땐 내가 세상 혼자인 것만 같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나 봐. E는 제주공항 근처 호텔을 잡고서 오겠다는데. 나야 E가 올 즈음엔 제주 북쪽도 보고 싶을 테니까 잘 된 거겠지??
음 이 일정으로 플리마켓 참여할 수는 있으려나?
사람들이 여기까지 날 보러 오는 건 내가 행복한 시기라 그런가?
끝없는 물음표...
아무튼 행복해. 좋아하는 것만 하는 요즘이니.
직장 인사과랑은 아직 연락이 안 되었어. 내일 다시 연락해봐야겠다. 통화하기가 너무 어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