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귤과 함께 3일째
아침 7시 반 저절로 눈을 뜨고 또 창문의 커튼을 친다. 그러면 또다시 믿을 수 없이 예쁜 풍경이 펼쳐진다.
오늘은 구름도 더 적고 날이 훨씬 밝았다. 어딜 가도 그 범섬이 있었어서 약간 벌써 익숙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찌 됐든 매일 건물들 사이에 있다가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기도 했다.
빈둥거리며 인터넷으로 강아지들 옷도 보고 지도를 조금 찾다가 오트를 타 먹고 폴댄스 학원에 갈 준비를 했다.
11시 시작이고 조금 일찍 오라고 하셨으니 10시 45분에 가기 위해 9시 45분 즈음 출발할 생각이었다. (도보 약 56분 거리)
조금 허둥지둥 나왔는데 웬걸, 보일러 튼 방이 어쩐지 너무 덥다 싶더니 날이 너무나도 좋았다. 어제의 날씨를 생각하고 패딩을 입고 나왔는데 10분 정도 걷자 이미 땀이 나고 있었다.
조금 지치고 힘들었던 차에 마침 버스가 왔고, 결국 버스를 타고 학원 근방에 내리자 10시 10분이었다.
일찍 가서 고등학교 친구 J가 추천해준 카페에 갈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망설임 없이 버스를 탔다. 그리고 약 30분 정도 가량 음료를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카페 분위기도 너무 좋고 사장님도 예쁘시고 틀어두신 음악도 완전 루시드폴이나 인디 쪽 내 취향의 노래만 트시는 것이다.
감성적이고 잔잔한 노래를 듣다 보니 조금 아련해졌지만 45분쯤 폴을 타기 위해 힘차게 걸음을 또 옮겼다.
폴댄스 학원은 1층 샤브 집 2층 유흥주점이 있는 3층에 위치해 있었다. 1층에 샤브 집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갈 때마다 유혹을 느낄 거 같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자 카리스마 있는 액션배우이시라는 폴 선생님이 계셨다. 비키니를 입고 오라고 하셔서 비키니 비슷한 꽃무늬 브라렛에 비키니 팬티만 입고 갔는데, 오랜만에 옷을 발가벗으니 상당히 민망하고 어색했다. 잘 먹고 에너지를 덜 쓴 몸뚱이가 포동포동한 것이 참으로 민망했다. 이전에 벨리댄스를 배울 때 그렇게 노출을 했었는데, 그때보다 더 많은 노출이고 지방이 늘어 살도 붙어서 더 그런가 어색한 기분이었다. 뻘쭘했지만 학원조차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고 너무 예뻐서 학원 내부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복장이 이게 맞나 싶었는데 선생님께서 옷을 잘 입고 왔다고 하셔서 안심이 되었다. 겨울이라 몸을 푼 후 폴댄스를 시작하는데 미끈덩거려서 선생님께서 알로에와 손에 마찰이 잘 되는 풀 같은 그립젤을 발라주셨다.
시팅이라는 동작을 먼저 알려주셨는데 먼저 다리를 겹쳐 폴에 매달린 후 몸을 앞으로 빼내 기울여 팔을 양쪽으로 펼치고 다리도 쭉 뻗는 동작이었다.
한 번 영상 보는데 진짜 푸둥푸둥하고 못한다... 어리바리하기 짝이 없다.
왜 자신감 있게가 잘 안 될까. 어쨌든 그래도 보통은 첫날에 그 동작만 하다 간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잘한다며 한 가지 동작을 플러스로 알려주셨다. 하지만 거기선 막혀서 그것만 하다가 왔다.
말로만 듣고 힘들다고 할 땐 몰랐는데 직접 폴에 타서 돌다 보니 멀미도 상당히 많이 나고 쓸리기도 살짝 쓸려서 쓰라리고 말랑하던 손바닥도 굳은살이 생기려는 듯 조금 뻣뻣한 느낌이다.
두 번째 동작까지 마스터를 하고 싶었는데 너무 멀미가 나고 속이 울렁거려서 다른 회원님이 나가는 거 보고 12시 조금 넘어서 나도 나왔다. (오전 11시 시간은 나와 나보다 나이 많으신 거 같은 분 둘 뿐이더라고 집중관리받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다.)
먹은 게 부실했나 어쨌든 너무 울렁울렁해서 친구 J 픽 해장국 집에 속을 풀러 갔다. 처음엔 잘 안 들어가고 속도 울렁였는데, 찬찬히 먹다 보니 속도 풀리고 정말 컨디션이 괜찮아졌다. 너무 컨디션이 별로라 안 먹던 비계 살도 먹고 오징어 젓갈도 후룩후룩 먹었다.
보통 5-15분 컷으로 마시듯 드시고 나가버리시던데 나는 뜨거운 걸 잘 못 먹고 톡으로 이것저것 찾아보고 지도도 보고 하느라 손님이 다 나갈 때까지 있었다.
그래도 진짜 멀미가 풀린 게 천만다행이다. 지금도 살짝은 울렁이지만 저질체력이라 이만큼 회복된 게 다행이다. 뒷목이 좀 뻐근한 정도라 괜찮다.
오늘도 바닷가 카페에 가고 싶어서 올림픽 경기장 쪽으로 걸어왔다. 중간에 이마트에 들러 매직 스펀지를 사고, 스벅에서 친구 M을 주기 위한 컵도 찾아봤으나 컵은 없고 제주도 특별 메뉴 2가지 정도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냥 오는 길에 있는 친구 J 추천 빵집에서 치아바타와 치아바타 용 올리브 발사믹 소스를 사서 바다로 바다로 무조건 걸었다.
3분가량 주욱 걷다 보니 지금 있는 또 J 추천 카페가 나왔다. 반대편 카페가 좀 더 끌리고 세련됐지만 여기서 또 죽 가면 있는 내가 고른 다른 카페에 또 갈 거니까 괜찮다.
여기도 아늑하고 뷰가 좋고 핑크색 차가 굉장히 예뻤다. 커피 먹고 폴 타서 울렁거릴 수도 있으니 중간에 이런 커피가 아닌 음료로 정화가 필요하지.
해장국도 전부 먹었는데 이상하게 배가 고파서 다음 카페까지 있는 올레길을 걷다가 중간에 치아바타를 먹고 가야겠다. 내일 아침이었는데...
폴댄스가 상당히 에너지가 드는 운동은 맞나 보다. 서울에 가서도 꼭 해야지. 하다 보면 복근이 안 생길 수가 없는 운동이다. 근데 영상의 나 진짜 육중하고 우람하다. 허벅지 봐 배 좀 봐! 이제 몸매를 어떻게 다시 다듬지?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체력도 좀 좋아졌으면 좋겠다. 그 점은 약 한 달간의 제주 생활로 나아질 수 있으려나?
아직 3일 차라 그런가 저질 체력은 여전하다. 아침에 경옥고도 한 포씩 먹고 있는데 말이야.
일단 다른 카페로 가야겠다. 오늘도 이쪽은 사람이 별로 없네. 이 카페도 조용하고 좋지만 밝을 때 바닷가 앞에 앉아있다가 좀 더 멋진 카페에 가고 싶어! 노래가 좋아서 혼자 따라 부르긴 좋다. 사람이 얼마 없어서! 이 카페에 있는 동안의 마지막 곡으로 아이유 셀레브리티까지 완벽하다.
해안을 따라 걷다 보니 여기 바다 처음으로 바닷가 가까이에 다가갈 수 있는 존? 비슷한 돌들이 있었다! 가려던 카페를 좀 넘어서 더 가야 했지만 가려던 카페가 계획하던 곳보다는 훨씬 가까웠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해녀 존이라는 물이 담긴 곳을 넘어 바다로 바다로 갔다!
일자로 된 얇은 길로 돌 사이로 갈 수 있었고 파도가 간혹 그 길보다 위에서 몰아치고 있기도 했다! 돌 사이에 고인 바닷물은 투명했고 안에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가 고스란히 보였다.
또 물을 담은 현무암의 숨구멍 하나하나를 그대로 비치는 물은 정말 아름다웠다. 슬쩍 허리를 숙여 물을 만져보니 바람이 차져서 차가운 공기와 달리 물은 따땃했다!
찬 공기와 다르게 따땃하고 맑은 물이라니! 더욱 환상이었다. 아마 낮엔 몹시 더웠기 때문에 물이 덥혀졌나 보다.
세상 마상 어떤 유료존보다 환상적인 내가 좋아하는 존
물론 카페 창 밖으로 보이는 멋진 바다의 뷰도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나에게 있어 정말 최고는 바닷물을 슬쩍 만질 수도 있고 눈앞에서 몰아치는 파도를 보며 그 소리를 듣는 거라 미끄러질까 조심조심하며 물을 살짝 찰박거리며 길 끝으로 갔다. 마침 해가 슬슬 지려고 해서 조금은 어두웠지만 거친 바람에 따라 격렬하게 치는 파도가 더욱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영상을 여럿 찍고 사진도 찍고 신발도 조금 찰박찰박 바다를 한동안 바라보다 다시 찾았던 카페로 갔다.
찾은 카페는 호텔 근방에 있는 칵테일과 커피 둘 다 파는 바깥은 형식의 카페였다.
그래서 커피 말고 제주살꾸얌 이라는 칵테일을 홀린 듯이 시켜버렸다. 바람을 하도 맞아서 머리가 살짝 얼얼해서 커피를 마셨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범섬과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카페의 뷰를 찍고 있자 주인아저씨께서 섬세하게 만든 칵테일을 가져다주셨다. 만천 원이라 생각보다 비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이 날아가버리는 이쁜 칵테일이었다!!!! 주황색 칵테일이 자갈 같은 얼음 가득에 남겨있었고 그 위에는 말린 귤칩과 귤잎을 슬쩍 가운데에 끼워 마무리한 모습이었다.
이미 비주얼에 반해서 바다와 섬과 칵테일을 마구 찍은 후 본 맛은 더욱 끝내줬다! 내가 좋아하는 시트러스 한 상큼 달콤한 한라봉? 귤? 맛이 나는 칵테일이었다.
원샷해버리고 싶었지만 너무 맛있어서 찬찬히 음미하며 잔을 비웠다.
외로울 새 없이 여기저기 열심히 카톡을 했는데, 이래저래 대학교 친구 E랑도 톡을 하고 사촌 언니랑도 톡을 하며 칵테일을 마시다 보니 바깥이 금방 어두워졌다. 겨울이라 해가 몹시 빨리 진다. 그래서 7시면 왠지 집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어제까진 들었다.
다른 사장님께서 장미향이 나는 와인잔에 담긴 초도 켜주셨지만 배가 고파졌기 때문에 5시 40분쯤엔 찾아두었던 현지인 식당으로 향했다. 갈치조림이 맛있대서 기대를 하며!
추운데 계속 돌아다니고 혈액순환이 잘 되어서인가. 별로 양이 얼마 안 되었는데 알딸딸하고 머리가 아팠다. 여기 온 후 중간중간 카톡으로 친구들한테 사진도 열심히 보냈는데 그게 갑자기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자랑을 그만하고 싶어졌다. 사진마다 설명하는 것도 귀찮게 느껴졌고 그래서 모든 연락을 넣어두고 식당을 향해 갔다. 가는 길에 꿀핀이라는 디저트를 파는, 오늘 닫은 줄 알았던 가게가 열어서 한라봉 꿀핀을 하나 샀고
계속 가다 보니 상상하던 번쩍번쩍 기념품 샵이 드디어 처음 등장하여 홀린 듯이 들어가 물건들을 열심히 관찰했다. 첫 기념품 샵이었기 때문에 다 사고 싶고 얼른 구매해야 할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위한 기념품을 보던 차에 엄마께서 전화를 하셔서 받았다. 다른 기념품은 필요 없고 필요한 것을 생각해보겠다고 하셨는데. 갈치를 계속 드시고 싶어하셨기 때문에 갈치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갈치를 막내 고모, 할머니까지 확장되어 보내라고 하시는 것이다. 한 박스에 가격이 상당할 것 같은데, 3박스에 할머니를 보냈는데 다른 가족분들께도 안 보낼 수가 없잖아. 술도 알딸딸했는데 머리가 갑자기 엄청 아파졌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유만 많으면 당장 보내고도 남겠는데, 이번 여행도 큰맘 먹고 숙소도 나름 합리적으로 구한 편이라 그 비용에 필적하는 비용이 계산이 되자 좀 속이 울렁울렁했던 거 같다. 돈이 넘치지 않는 게 슬펐고, 뭔가 몹시 부담스러웠다. 아빠께서 통화하는 엄마 옆에서 가족 생각일랑 말고 너 혼자 충분히 즐기고 오라고 하셨지만. 이미 마음이 무거워졌다. 물론 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 생각에 더해 돈을 벌기도 전 임시 백수 상태에 이미 저런 푸시가 들어오자 더 속상했던 거 같다. 제주 여행도 할아버지 이모 외숙모 등등 합격 기념으로 주신 용돈을 보태 올 수 있었고, 그래서 잘해드리고 싶은 건 사실인데. 받은 사랑이 너무 많다 보니 아직 부족한 내 능력으로 그걸 갚기가 어렵게 느껴졌나 보다. 일단 엄마께 귤이랑 갈치를 보내고 나서 다른 분들을 챙겨야 할 거 같아. 우선 엄마 아빠 먼저 챙겨드리고 나서 생각해보기로...
아픈 머리로 기념품 샵에서 일단 제주 귤젤리와 3000원짜리 귀여운 어린이용 동백 뜨개 반지를 사고 나와 갈치 집으로 향했다. 가게는 허름했지만 다른 가게에 비해 사람이 좀 더 있었다. 비수기라 그런가 전체적으로 인간이 없다.
갈치조림을 기대하고 갔는데, 갈치조림은 2인부터 주문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저씨께 1인이 되는 메뉴가 뭐가 있느냐 물으니 김치찌개? 같은 메뉴랑 갈칫국!!!? 이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갈칫국을 시켰다. 좀 비릴 것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안 먹어본 메뉴니깐!
그리고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약간 뽀얀 국물에 갈치와 단호박과 청경채 등이 들어있었는데 국물은 매콤 시원했고 후추를 뿌리자 살짝 더 매콤 시원하며 비린내도 하나도 안 났다.
갈치도 세 토막이나 들어있어서 허겁지겁 다 발라먹고 국물도 밥이랑 깨끗하게 먹었다! 그리고 밑반찬으로 나온 멸치볶음이 정말 맛있었다. 다른 반찬들이랑 나온 음식을 다 싹싹 긁어먹고 나왔네
그리고 먹고 나자 머리 아픈 것도 확 좋아지고 기운이 불끈불끈 솟아났다!!! 아픈 생각도 좀 날아가고. 뭔가 빨간 국물인 갈치조림보다 오히려 시원하고 입맛에 맞았다.
밥을 먹고 나니 기념품샵에서 파는 흑돼지 육포랑 말 육포는 아빠 사다 드리고 싶어 져서 다시 기념품 집에 가서 육포들을 사고, 약 40분 거리를 울끈불끈 한 기력으로 걸어서 숙소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지도에서만 보던 카페들과 시커멓긴 하지만 나름의 밤바다도 조금 보며 숙소로 들어왔다.
친구와 카톡으로 밤바다를 보기로 했기 때문에 숙소 바로 앞의 올레길에도 가보려고 했는데 깜깜해서 핵 무서웠기 때문에 그냥 집으로 들어왔다. 여긴 밤바다 그런 거 없다. 범죄의 표적이 될 거 같은 어둠뿐이라 강릉의 밤바다랑은 또 다르더라
숙소 문 앞에는 배송된 부츠가 도착해있었고, 진짜 배송 빨랐다. 굿굿 어제 보냈는데 진짜 하루 안 되어서 왔나봐! 제주라서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요샌 더 좋아진 모양이야. 집 돌아갈 땐 진짜 바리바리 다 택배 보내야지 그래서 기념품 사는 것도 걱정 없어!
바다 건너온 부츠는 상품평에 두 사이즈 이상 사래서 크게 샀더니, 엄청 크고 종아리도 생각보다 크긴 한데.... (빵빵 부은 채로 신었을 때 그렇게 자리가 남고, 얇은 수면바지 입고도 들어가니깐 ) 근데 그래도 그 정도는 되어야 겨울 바지나 청바지 입고도 들어갈 거 같아서 만족스럽다. 일단 모양은 진짜 이뻐. 한 사이즈 정도 작았으면 200프로 만족이겠지만 일단 깔창을 깔아봐야 확실해질 것 같다.
샤워를 열심히 하고 폴댄스 복을 빨고 넌 후 며칠 동안보단 조금 더 일찍인 12시 반쯤 잠이 들었다.
조금은 속상하고 복잡해진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다양한 활동을 했던 행복한 하루의 마무리였다.
범섬이 벌써 조금 질려서 내일은 한라산 쪽으로 가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