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어미닭과 병아리
햇볕이 따스해지고 나무들은 새싹을 틔워 연둣빛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었다. 마당에는 어미닭과 병아들이 모이를 찾아주느라 바쁘다. 엄마 닭은 땅을 파헤치고 병아리들을 모은다. 병아리들은 어미를 놓칠세라 '삐약 삐약' 거리며 총총 뛰어다니고 연한 부리가 달린 노란 머리를 연신 갸웃거린다.
병아리들이 알을 깨고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지난달. 암탉이 알을 낳고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조용히 지켜보시던 할아버지께서는 이제 암탉이 알을 품을 때가 되었다고 하셨다.
그동안 아껴 보관해 두었던 알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할아버지께서 손수 만들어서 매달아 둔 곳은 암탉이 알을 낳는 곳이다. 처마밑에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은 것은 할아버지가 암탉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동물의 접근을 막고 구석진 곳이고 높은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도 띄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하게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장소였다. 알 품는 곳에 스물 두 개의 알을 넣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암탉이 알을 품으러 올라가는 장면을 보려고 기다렸다. 마침내 암탉이 툇마루 끝에서 펄쩍 날아올라 알 품는 집으로 몸을 숨겼다. 이제 한 달 정도 후에는 노란 병아리를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매일 암탉이 있는 곳을 살펴보았다. 암탉이 놀랄까 봐 조심조심 다가가서 암탉의 상태를 보았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암탉은 제법 몸을 펼치고 앉아서 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노란 병아리를 보고 싶은 마음에 틈만 나면 암탉을 보러 윗마루에 올라서 처마안쪽에 매달려 있는 짚으로 만든 암탉의 보금자리를 훔쳐보았다.
며칠 전 골목길에서 앞집 어미닭과 병아리들과 마주했었다. 어미닭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한 쪽으로 비켜서서 한참을 기다렸다. 닭이 골목을 벗어나 앞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후에야 골목을 돌아왔다. 지난해에 병아리를 데리고 있는 어미닭에게 혼쭐이 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 같이 비좁은 골목길에서 병아리를 데리고 있는 어미닭과 마주쳤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어미닭은 병아리를 보호하기 위해 앞에 있는 내가 위협적인 존재로 대처하게 된다. 어미닭은 목의 깃털을 세우고 자세를 낮추고 날개를 펴고 사정없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너무 놀라고 무서웠다. 그 후로는 골목길에서 병아리를 데리고 있는 어미닭 가족을 만나면 무조건 돌아서 가거나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암탉의 두 배가 되는 덩치 큰 수탉도 아이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목털을 꼿꼿하게 날개를 검붉은 날개를 펼치고 큰 벼슬을 흔들며 거침없이 달려드는 모습이 흡사 만화에 나오는 장칼을 빼어든 거친 털을 가진 전쟁터의 장수와도 같았다.
마침내 엄마닭이 알을 품기 시작했다. 윗 마루에 올라가면 처마밑에 달려있는 암탉이 앉아 있는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매일 병아리를 기다리며 살펴보았다. 가끔 모이를 먹기 위해 잠시 내려오면 기다렸다는 듯 쌀겨나 아껴 두었던 곡식 모이를 주었다. 다른 닭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다가가 엄마닭만 먹게 했다. 배를 채운 엄마닭은 곧바로 알을 품으러 올라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관심이 없었다. 암탉이 알을 잘 품고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매일 들과 밭으로 나가서 저녁때가 되어야 돌아오셨다. 한 달이 되기 전에 노란 털을 가진 병아리들이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왔다.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훔쳐서 깨어 먹던 달걀에서 노란 병아리들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나오다니.
닭이 해가지면 집으로 돌아와 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자리한다. 홰는 외양간 한 켠에 만들어 닭들과 소가 함께 밤을 지내게 되었다. 어미닭과 병아리는 뜰 가장자리에 집을 마련하여 어미 품속에서 살도록 해 주었다. 닭을 키우면서 할아버지는 닭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나는 장닭의 왕 쟁탈전이 가장 재미있어 할아버지를 졸라 몇 번씩 들었다.
할아버지 이야기는 이러했다. 장닭이 많을 때는 싸움이 자주 일어났다. 누가 왕이 되느냐 하는 것 때문에 싸움이 있었다. 장닭이 두 마리 이상이면 그중에는 항상 왕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암탉은 왕에게 복종하는데 왕은 무리 중에서 가장 힘센 장닭 중에서 되었다. 싸움에서 마지막 승자가 왕이었다. 왕은 암탉들을 거느리고 깃을 세우고 목을 쭉 뽑아서 회를 치고 소리도 우렁차게 지른다. 걷는 모습이 포부가 당당했다고 한다. 한 번은 왕닭이 지붕에서 내려오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모이를 주었는데도 여전히 지붕에 있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은 도전닭에게 현재 왕이 패하여 자리를 그만 내주고야 말았던 것이다. 지붕에서 내려오면 바로 새로운 왕과 그 무리가 사정없이 쪼아대는 바람에 모이를 먹을 때도 다 먹고 흩어지면 재빨리 내려와 남은 모이를 먹고 다시 혼자 움직이더라는 것이다. 결국 그 장닭은 죽고 말았다고 한다. 나는 할아버지께 "왕이었을 때 많이 베풀었다면 저렇게 집단으로 따돌림을 하지 않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맞는 말이라고 하면서 항상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도움을 주고 인사를 잘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누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삶이라고 하셨다. 죽은 장닭처럼 적을 만들지 않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 특히 농악단 놀이를 할 때 내가 무조건 대장 노릇을 하겠다고 때를 쓰지 않겠다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도 네가 아이들과 놀 때 앞장서서 움직이는 것이 보기 좋다고 하셨다. 다만 저번과 같이 친구들과 주먹다짐을 하려고 맞서는 모습은 좋지 않다고 하셨다. 나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지금은 그 친구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잘 어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