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어떤 존재인가?
'누가 함부로 선생님 되려고 하는가?'
영화를 보고 나서 나 자신에게 물었던 말이다.
이 영화는 사춘기.
끝이 보이지 않는 반항기의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마음을 다하는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맨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의 교사 경력은 15년을 지나고 있었다. 결코 짧지 않은 경력이었다. 영화는 나에게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주었지만 좋은 교사로 다시 태어나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만들었다.
나 자신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여러 번 영화를 보았다. 볼 때마다 가슴이 찡하고 깊은 울림으로 여운을 남겼다.
최근에 다시 영화를 보았는데 몇몇 장면에서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 내 곁에는 아이들도 선생님도 없는데도 말이다.
같은 교사로서 영화 속의 태커레이 선생님같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재능을 어떻게 하면 갖게 되는지 수없이 질문을 던지고 교육연구회 모임에도 기웃거렸지만 현실은 그런 열정을 잊게 만들었다. 하루하루의 수업과 업무처리로 정신이 없었다.
영화 속의 아이들은 선생님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변화를 가져왔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시켜 나갔다. 여학생은 숙녀로 남학생은 신사로.
선생님의 인내와 기다림이 그들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흑인 학생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꽃을 배달하는 문제에서 유색인의 장례식장에 가는 것은 금기시하고 있는 당시 풍습에 선생님은 혼자 꽃을 들고 찾아간다. 태커레이 선생님 자신도 흑인이었다.
대 반전이 일어났다. 장례식장에는 아이들이 먼저 와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미소 지었다.
서로를 이해하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이해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말이다.
친구들과 교사와 아이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힘들고 먼 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인내와 기다림 그리고 '분노'와 '화'와 같은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자제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인간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일이다. 그것도 몸과 마음의 발달이 미완이고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아이들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각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신이 내린 선물일 수도 있다. 유전자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 이러한 다른 아이들을 한꺼번에 여러 명이 모여 있는 곳이 교실이다. 그곳은 배움의 장소이자 깨우침의 시작이 되는 곳이다.
교사는 안내자이자. 조력자가 되어 그들이 깨우침에 거인의 어깨가 될 수 있다.
한 때 교사는 인기가 좋았다. 어쩌면 선생님이 되는 길은 쉬울지 모른다. 공부만 하면 발령을 받는 데는 걸림돌이 없다. 그러나 현장은 무수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 학부모와 관계, 각종 업무처리 등.
꿈꾸던 현장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진정한 교사가 되는 길은 험난하다. 인간이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많은 공부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교사의 길은 고난의 연속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고 포기한다면 안일한 교사로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