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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Sep 24. 2023

수술장 가는 길

103 병동

수술장 가는 길




'내 발로 걸어서 가고 싶어'


점점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술장에 걸어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왠지 누워서 이동하면 중환자처럼 보이는 것이 싫었다. 안내원은 무조건 이동침대를 밀고 와서 이름을 부르고는 매번 같은 말을 했다. 


'침대로 올라가 누워 주시면 이동하겠습니다'


그러나 병원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고 간호사는 부탁했다. 안내원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서. 


이동식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복도를 이리저리 빙빙 돌면서 굴러갔다. 심장은 오므라들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몸이 공중에 붕 떠는 것 같았다. 침대는 수술장을 찾아 한 참을 돌고 돌았다. 

천장의 하얀 형광등이 마치 기차가 플랫폼을 빠져나가면서 가로등이 지나가는 것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눈을 감았다.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멋진 장면을 생각해 냈다. 파란 하늘, 고향마을, 친구들, 텔레비전의 웃긴 장면. 지금 이 순간에 머물자. 


나에게 말했다. 

순응하라.



아픈 데가 없었다. 정말 그랬다. 간은 10%만 살아 있어도 맡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인지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CT촬영을 하지 않았다면 죽음이 임박해서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주 천천히 암이 자라서 인지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침대가 멈추었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저 문을 통과하면 새로운 간호사가 안내하게 된다. 이제 아내는 여기서 돌아가야 했다. 눈을 마주치고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말고 병실에 가 있어. 끝나며 간호사가 연락할 거야'


마지막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말 밖에 하지 못했다. 

수술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세 번째 보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새로운 방으로 들어왔다. 수술장으로 가기 전에 대기하는 방이었다. 이제 여기에 있는 의료팀에게 내 몸을 맡기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워 있기 때문에 수술장 주변은 볼 수는 없었지만 의료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많은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해진 수술방으로 가기 전 30분간 누워서 기다렸다. 간호사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자기 자리로 갔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으면 더 좋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장에 오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지난번에도 했었다. 그러나 병실에서 가슴 조이며 기다리고 있을 아내의 모습이 떠 올랐다.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으로 가슴이 쓰렸다.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이 하나둘씩 스쳐 지나갔다. 마음을 비우고 지금 이 순간에  상황에 순응하려고 했지만 마음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남자 전공의가 왔다.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수술부위에 대해 확인하고 침대를 밀고 이동했다. 수술장은 추웠다. 10년 전 처음으로 수술대에 올랐을 때가 생각이 났다. 마취하기 전에 온몸이 떨려서 턱을 덜덜 떨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마취과 전문의가 들어왔다. 마취제가 주입되었다. 나의 정신은 의식을 내려놓았다. 



누군가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다. 형언할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몸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살아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간호사는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의식이 회복되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입에 낀 액체를 연신 뱉어내라고 소리 질렀다. 회복실은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마치 전쟁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리 지르는 소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간호사, 수술을 마친 사람들이 간호사를 찾는 거칠고 따가운 목소리.

간호사는 여기저기 살피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나는 진통제 요청을 몇 번이나 했다. 고통은 이성을 몰아내고 동물적 감각만을 남기고 말았다. 


병실로 오고 마취가 풀리자 진짜 고통은 이제 시작이었다. 

고통에 대한 치유는 고통 속에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고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고통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고. 그 말을 새기면서 참았다. 

아내는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의 기운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병실은 위험한 곳이었다. 환자가 고통으로 신음하는 말과 몸짓은 주변에 전달되어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내는 내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며 잘 이겨 내고 있었다. 그저 미안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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