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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Sep 23. 2023

산산조각

103병동

산산조각




2021년 2월 3일. 


간혈관 초음파 검사로 간 시술 결과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였다. 오늘도 여전히 진통제, 간보호제, 항생제 등 다량의 약물 복용과 주사를 통한 약물 투입으로 속이 매스껍다. 비장 부분과 복부쪽 통증이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혈압과 체온 검사, 약물 투입은 24시간 주기적으로 계속 되었다.

 

현대 의학은 숫자에 너무 의존하는 양적 측정에만 매달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라도 환자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은 할 수 없는 걸까? 의술의 발달로 각종 첨단 장비를 이용한 시술과 수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각종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소멸시키는 약물도 많이 개발되었다. 증상이 있는 곳을 즉각적으로 치료하는데는 의술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에 비해 인간 생명체에 대한 통합적인 접근이 아쉽다. 과다한 약물을 사용하다 보면 자칫 여기가 좋아지면 저기가 문제가 발생되기도 한다. 오로지 수치로만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 같다. 


근대 이전 시대에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있다고 보았다. 육체 보다는 정신이나 영혼을 더 중요시하였다. 이에 니체는 크게 반발하면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에 속하는 어느 한 부분일 뿐'이라고 말했다. 몸과 마음은 완전 연결되어 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2021년 2월 4일 오전. 

전문의가 다녀갔다. 새벽에 채혈하여 검사한 결과에서 간수치가 높아서 퇴원이 취소되었다. 오후에는 열이 나고 시술 부위인 비장쪽이 너무 아팠다. 입맛을 완전히 잃었다. 약물이 계속 들어가니 몸이 감당을 못하는 것 같았다.


지난 6개월 동안 산사에서 1일 2식을 실천하면서 부드럽고 소박한 음식을 섭취 했다. 자연을 벗어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었다. 지금 당장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지만 언젠가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버텨보려고 애썼다. 

그런데 오늘은 아내에게 말하고 말았다. 문자를 주고 받다가 힘들다고 말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긍정적인 메세지만 보냈지만, 오늘은 나의 이성이 현실 앞에 무릎을 굻고 말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가장 두렵다. 이성이 육체에 굴복하는 것.



2021년 2월 5일. 

어제보다는 조금 좋아졌다. 여전히 입은 쓰다. 몸도 여전히 음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물도 거부하고 있다. 이 고통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하루를 또 살게했다. 


영원히 계속 될 것 같은 겨울도 태양이 가까워지면 봄이 되듯이 얼어 붙은 마음도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지금을 견디며 대지를 초록으로 물들일 봄바람을 기다리는 마음이 되고자 했다.


예상한 날보다 5일 늦게 퇴원해도 좋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퇴원은 곧 수술을 위한 시작이었지만 잠시 집으로 간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황금빛 햇살을 받는 것처럼 밝아졌다. 간 절제 수술하는 날이 정해졌다. 집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주일이었다. 허벅지까지 생긴 빨간 반점을 여전히 남아 있었다. 



태양은 매일 떠 오르지만 햇빛은 매일 우리를 찾아오진 않는다. 먹구름이 몰려와 비바람을 뿌리기도 하고 폭풍이 밀려오는 날도 있다. 그래서 대지는 기름지고 생명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인생도 매일 밝은 날만 계속 되지 않는다. 대지가 비바람으로 생명의 땅이 되듯이 삶도 고통과 절망이 있기에 의미가 더해지고 성장한다. 


어둠이 짙은 밤의 별이 더 빛나듯이 긴 고통 뒤에 오는 기쁨의 맛은 배가 될 것이다.


인생이 산산조각이 나 본 적이 있는가. 누구에게나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정호승 시인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은 것이 아닌가 그 조각을 가지고 살아가면 되지 않는가?'라고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어쩌면 산산조각이 나 봐야 그 사람이, 그 물건이 더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몸의 장기들이 산산조각이 나고 나서야 비로서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 이 순간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하고 위로한다.

 

오늘도 기도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희망을 잃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 중의 가장 큰 죄악이다'라고 헤밍웨이는 말했다. 

'정호승 시인도 '바닥은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누구나 바닥에서 시작한다. 
꼭대기는 골짜기가 있기에 존재한다. 
인생의 묘미는 언제 어느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걱정과 두려움을 가불하여 인생을 살지 마라.
사랑과 고통이 있기에 인생은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시인의 말을 생각하며 오늘도 고통의 두려움을 비우고 희망이라는 긍정을 마음에 가득 담아 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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