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병동
이 또한 지나가리라
범인凡人들은 삶이 노래처럼 순탄하게 흘러갈 때는 날마다 기뻐하고 너그럽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고난이 닥치면 남 탓을 하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신을 찾기도 한다.
반면 비범非凡한 사람은 모든 일이 잘못 흘러갈 때 자신을 찾아온 고통이 기쁨의 씨앗이라는 것을 안다. 고통은 자신의 성장의 과정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고통 앞에서도 미소 지을 수 있다.
2021년 1월 30일.
링거액을 주입하고 잠시 팔에 꽂혀 있던 바늘을 제거했다. 팔이 자유롭게 되어 샤워를 했다. 한결 마음이 좋아졌다. 오늘 세끼 밥을 챙겨 먹었는데 변이 나오지 않는다. 이틀 동안 각종 검사로 금식을 했다가 음식이 들어가니 위와 다른 장기들이 놀랐나 보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위험 때문에 휴게실과 야외 산책로 가는 길이 막혔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커튼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과 복도가 전부다. 살아서 이곳을 나갈 수 있을까?
2021년 1월 31일 일요일. 오늘도 죽음을 먼저 생각할까 두렵다. 지난 육 개월 동안 산사에서 쑥뜸과 명상에 매달렸지만 수없이 많은 시간을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암이란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할 때는 누구나 기적을 비웃는다. 그런데 암이나 불치병으로 인생이 한순간에 캄캄한 어둠처럼 앞이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오면, 사람들은 오직 기적을 바라고 믿는다.
갑자기 믿지 않던 하느님을 찾고 십자가에 손을 모으기도 한다. 불당으로 달려가 금빛 찬란한 형상 앞에서 절을 하고 매달리기도 한다.
나도 산사에 있으면서 서울의 어느 한의원에서 처방한 돌가루를 먹기도 했다. 기적같이 암이 사라진 사례가 있다고 하는 광고에 현혹되었었다.
기적 같은 일은 가끔 있을 수 있다. 가령 에베레스트의 어느 산 골짜기에 있는 동굴에 기적을 일으키는 돌덩어리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하자. 그 돌덩이를 손으로 감싸 안고 기도를 하면 온갖 병이 낫는다. 소문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수만 명이 다녀갔다. 그중에서 우연히 자연적으로 치유가 되어 병이 완치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수 만 명 중에 한 두 명이라도 완치되었다면 그것은 효험이 있는 돌이 되어 버린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그 사건은 전파를 타서 수많은 불치 병을 가진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또 한 번은 의학적으로 인체메커니즘으로 다 맞는 방법이었다. 먼저 나의 혈액을 채취하고 그 혈액에서 백혈구 관련 세포를 배양하여 백혈수 수치를 높여주는 배양액을 주사하는 방법이었다. 한 번 주사하는데 수백만 원이지만 다행히 보험이 된다는 말에 작은 희망을 걸었다. 암세포가 작아지거나 사라지는 일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복잡한 인체의 메커니즘에서 우연하게 그 사람의 면역체계와 일치하는 것으로 의학적으로도 설명이 힘든 부분이었다.
의료장비를 통해 암세포가 발견되었다는 말은 적어도 수년 전부터 자라고 있었다는 말이다. 짧은 기간에 암세포가 갑자기 나타나는 일은 드문 일이다.
2021년 2월 1일. 9시에 혈액 검사를 했다. 채혈을 하고 간의 해독능력을 알아보는 검사도 했다. 오후에는 초음파실에서 간의 섬유화 정도를 검사와 전신의 뼈 촬영(PET)을 했다. 뼈와 전신에 전이된 암세포가 있는지 검사하는데 촬영 전에 방사성 의약품을 주사했다. 저녁에 금식이 해방되어 맛있게 먹었다.
2021년 2월 2일. 아침 식사 전에 혈액 검사를 했다. 식사 후에 간 혈관 상태를 확인하는 간혈관 도플러 검사를 했다.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 나와서 바로 간문맥 차단시술을 하기로 했다. 간의 우엽을 완전히 들어내는 수술을 하기 전에 절제할 간으로 가는 혈관을 막는다고 했다.
마취 없이 하는 시술이라는 말에 간단한 시술인 줄만 알았다. 시술하는 의사는 비장을 뚫고 지나가서 간의 혈관을 막는 시술을 한다고 했다. 중간중간에 CT 촬영을 하면서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신 마취는 할 수 없는 시술이라고 했다. 국부 마취를 하지만 의료장비가 들어갈 때 '좀 불편할 겁니다.' 라는말만 했다. 1시간 정도 시간이 걸렸다. 보조하는 의사들이 시술담당 의사의 요청에 분주하게 여러 가지 장비들과 도구들을 가져다 날랐다. 시술이 끝나고 바로 외과병동으로 옮기라고 했다. 개인 물품들을 침대에 대충 실었다.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침대에 누워 이동하라고 했다.
105동 외과 병동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이 38도 이상 오르고 추워지기 시작했다. 통증이 너무 심하여 진통제를 수시로 주사했다. 열이 나자 코로나 검사를 수시로 했다. 콧구멍과 입속으로 깊숙이 집어넣어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식사를 하고 식판을 옮기기도 힘에 부쳤다. 한 손으로 링거액 걸이를 끌고 한 손으로 식판을 들고 배식판 모으는 곳으로 가야 했다.
비장이 충격을 받아서인지 다리에 붉은 반점이 많이 생겼다. 혈소판에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은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담당 간호사와 전공의는 수시로 검사를 하면서 몸을 체크했다. 간수치, 백혈구, 혈소판, 단백질 등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열은 내렸지만 간 기능 문제로 퇴원이 되지 않았다. 퇴원할 수 있는 수치로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온갖 약물과 주사액을 주입했다.
비장에게 미안했다. 주인을 잘 못 만나서 이런 고생이 하고 있구나. 난 내 몸이 불쌍해졌다. 예고 없이 강제로 뚫었으니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은 혈관이 막히자 영양소나 산소 등 생명에 필요한 요소가 모두 차단된 상태가 되었다. 제 기능을 상실한 간이 쪼그라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간은 나를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나는 간을 힘들게 하고 아픔을 주고 있었다. 그들의 저항은 몸의 열과 통증으로 나타났다. 회복을 위한 자생적 노력이 몸으로 나타난 반응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뇌와 감각기관이 통증을 인지하는 한 고통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통증은 자연스러운 치유과정으로 손상 조직에서 발생한 염증을 회복하기 위해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 물질을 내 보내 조직을 회복시키고 있지만,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마음과 몸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언젠가는 결국 지나간다는 것에 희망을 걸어본다.
여기 고대 어느 왕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문구를 만들어 반지에 새겨 가져 오라고 했다.
신하들과 현자들은 밤새 모여 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하나의 글귀를 반지에 새겨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새겨져 있는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했다. 반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시인 렌터 윌슨 스미스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앗아갈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하루하루가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차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