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병동
산사에 봄이 오면
수술 부위가 조금씩 아물고 걷기도 수월해져서 복도로 나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봄은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한강변을 바라보다가 문득 산사가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복도 창가 난간에 잠시 기대어 김처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산사에 다시 봄은 오겠죠.."
순간 맑은 눈을 가진 김처사가 떠 올랐다.
"네~ 선생님! 지난해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 말에 내 마음도 녹아 벌써 산사에 가 있었다.
봄은 어김없이 다시 오고 있다. 내 몸과 마음에도......
눈물이 새어 나올까 입술을 깨물었다.
자꾸만 눈앞이 흐려져서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복도를 걷다가 다시 문자를 보냈다.
'스님도 잘 계시죠.
기도해 주시고 걱정해 주신 덕분에 저는 수술이 잘 끝나서 조금씩 회복 중에 있습니다.
여기서 보이는 한강변은 아직 눈발이 날리고 스산합니다.
새싹이 움트는 봄날에 산사로 가는 꿈을 꾸곤 한답니다.
부디 몸 조심하시고 스님께도 꼭 안부 전해주십시오.
뵈올 날을 고대하며.....'
지난 6개월 동안 산사에 머무면서 김처사님과 친해졌다.
호두 따기, 산행하기, 배추와 무밭에 물 주기, 스님 책 정리하기, 돌 나르기, 소나무 심기, 풍경달기 등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
김처사는 시내에서 일찍이 인쇄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각 기관의 홍보책자를 인쇄하면서 주로 관공서를 상대로 영업을 했는데, 선거철이 다가오면 홍보 판촉물 제작을 하여 수입을 꽤 많이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경기가 가라앉고 친구들과 지인들이 하나둘씩 관공서에서 퇴직을 하면서 일감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형님이 타 지역의 주지스님을 은퇴하고 돌아올 절을 만드는데 동참을 했다고 한다. 인쇄업은 거의 폐업상태라 산사에서 스님을 보살피며 살고 있었다.
병실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었다.
눈을 감았다. 그러자 봄이 다시 찾아왔다.
나는 스님과 김처사가 살고 있는 산사로 가고 있었다.
벚꽃 잎이 눈 내리듯 바람에 흣날리며 하얀 길에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