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병동
죽을 희망
수술 이후 남긴 상처는 고스란히 흔적을 남겼지만
고통은 밀려오는 물결이 모래를 조금씩 깎듯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러나 수술 이후의 상황은 또 다른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항암 치료와 암세포의 전이와 재발은 암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다가와 결국 마음까지 피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마음의 고통은 신경계에도 영향을 미쳐 신경전달물질이 과다하게 분비되도록 한다. 신경계의 균형이 깨지면 결국 면역체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가끔 마음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소란스러웠다. 생각을 통하여 떠오르는 공포와 근심은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아서 지금 이 순간의 평화를 깨트려 버리곤 했다.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고 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롯의 아내처럼 흔들리는 마음에 굴복하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가겠지만 현재의 시련과 고난은 마음까지 굴복시키려고 끊임없이 유혹했다.
원망으로
때로는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면서.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매 순간이 기적이요 신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수술 후 꼼짝없이 누워있어야만 했던 육체와 극심한 고통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이 며칠 만에 복도를 걸으며 환하게 웃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일출의 장엄하고 찬란함이 아침 내내 계속되지도 않고,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매혹적인 꽃의 향기도 한 때다. 폭풍우 사납게 몰아치던 치던 성난 바다도 마침내 잔잔해진다.
회복과 치유는 고통의 시간과 기다림이라는 언덕을 넘지 않고는 찾아오지 않는다.
'죽을 희망'이라도 가지고 싶은 적이 있었다. 몸의 감각회로와 뇌에서 느끼는 고통은 때로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기 때문에 이 고통이 영원히 사라지는 죽을 희망이라도 가지고 싶어 진다. 고통이 끝나는 곳. 바로 그곳은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은 죽을 희망도 없는 곳이라 했다.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는 곳이었다. 빛이 없는 곳이었고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지옥이라 했다.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고통이 없는 곳으로 가는 '죽을 희망'이라도 가져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도 한 때는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을 희망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시원한 생수 한 잔 '쭈욱' 들이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쾌함을 주는지, 한 번에 쏵 쏟아 내는 오줌발이 얼마나 큰 통쾌함을 주는지, 배를 움켜 잡을 만큼 마음껏 웃는 것이 얼마나 큰 유쾌함을 주는지 몰랐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였는지 몰랐었다.
구역질로 마음대로 먹을 수 없을 때 그 비참함, 오줌이 나오지 않아 화장실을 들락거릴 때의 고통, 덜 아문 배를 잡고 재채기나 기침이 나올까 늘 손에 물병을 들고 다닐 때 나는 알게 되었다. 행복이라는 것이 저기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일상의 평범한 일에 감사하라는 말이 가슴 깊이 들어왔다.
나는 병실에서 내 몸에게 말했다.
아픔을 주어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너는 아직 나를 위해 견뎌내고 있잖아. 그래서 더 고마워.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다 내 잘못으로 너를 힘들게 했어.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함에 감사하자. 누구를 만나든 어떤 일이 일어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