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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Sep 24. 2023

창밖에 내리는 눈

103 병동

창밖에 내리는 눈



복대로 배를 감싸고 병동 복도로 나왔다. 

복도 끝 난간에 기대어 하늘 보았다. 

회색빛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렸다. 

낙하지점을 알 수 없어 이리저리 헤매는 털 달린 씨앗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때늦은 눈이 힘 없이 나부꼈다. 먹지 못하여 힘없이 서 있는 내 모습처럼 눈은 그렇게 힘없이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병이 들거나 노쇠하여 죽음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그제야 해 보지 못한 일, 가 보지 못한 곳, 좀 더 좋은 말을 하지 못한 일 등에 대해 후회를 하고 마지막으로 하늘과 별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번 더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 당장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바로 그를 만나러 가라.

완벽하게 준비된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그러다 영원히 놓치고 만다.


살아 있다는 것이 큰 기회요. 존재하는 자체가 큰 기회다. 

맨 발로 가시밭을 걷고 불덩이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두 발 서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기적이다. 

병동에서는 매 순간 고통을 만나기도 하지만 기적도 함께 만난다.


병실 복도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젊은 사람들도 종종 있다. 부모를 위해 간이나 신장을 이식한 사람들이 있다. 어제부터 배를 웅크리고 아픔을 이겨가며 한 발 한 발 걷고 있는 앳된 얼굴의 여자 두 사람. 

자주 마주쳤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불과 5일 전에는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둘은 자매지간으로 보였다. 언니가 수술을 했고 동생이 언니를 부축하여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서로 조곤조곤 주고받는 대화가 다정해 보였다. 


나같이 나이 든 사람이 수술을 하는 것은 안쓰럽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왠지 나이 어린 사람이 그것도 어린 여성이 고통받는 것을 보는 것은 나의 마음을 더 아리게 했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이기 때문일까? 

나의 부모님이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본다면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신이 내게 주어진 시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스님은 한 해를 넘기면서 "또 하나의 1년이 나한테서 빠져나갔다"라고 표현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살고 나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모른 척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이 무시하며 살아갈 뿐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이제는 새로운 변명거리를 찾아 내 인생을 허비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결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의 현재 상황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데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여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마음을 다 잡아 본다. 

지금의 이 고통이 나를 죽이고 재탄생하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면서 신의 뜻에 순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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