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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Sep 25. 2023

엄마와 아들

103 병동

엄마와 아들



아내가 먼저 집으로 내려갔다. 

입원하기 전에 시골에 집을 짓고 있었다. 

이사 준비도 해야 되고, 나는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으니 문제는 없었다. 다음 주면 퇴원하여 집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1인실에서 2인실로 방을 옮겨 주었다. 다인실로 가려고 했는데 빈 침대가 없다고 한다. 급한 대로 2인실로 옮겼다. 


그동안 경험에 의하면 수술하고 10일 정도면 퇴원을 한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복부에서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복수를 빼내는 관 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와 거즈를 연신 갈아야 했다. 전문의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발의 부기도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꿰맨 자리가 잘 못되었다고 다시 꿰매는 작업도 했다. 그것도 아무 마취도 하지 않고 그냥 몇 바늘을 꿰맸다. 


그 사이에 함께 있던 남자는 퇴원을 했다. 그리고 젊은 청년이 옆 침대로 왔다. 보호자는 엄마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청년은 오랜 세월 변비가 너무 심하여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시로 응급실로 와야만 했었던 것 같았다. 


젊은 아들은 몸이 괴로워서 그런지 말투가 심각할 정도로 거칠었다. 의사에게도 막무가내로 자신의 요구사항을 내 질렀다. 

"아 그러니까 똥이 나오게만 해주면 되지. 뭔 검사를 하냐고요. 네가 의사 맞아?"

뭐 이런 식의 말투였다. 엄마는 조마조마 마음으로 아들의 눈치를 보느라 숨죽이며 응석을 받아주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괴로우면 저렇게 짜증을 낼까? 이해가 되다가도 아들의 행동이나 말을 들으면 기가 막혔다. 엄마에게 막말은 물론, 의사에게도 심하게 말을 하자. 의사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장의 변을 제거하는 일만 하면 되지 무슨 검사를 그렇게 많이 하고 시간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 등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빨을 드러낸 야생의 늑대로 변신하곤 했다. 심리상태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아들이었다. 엄마에게도 자신의 감정과 기분 상태를 그대로 내뱉어 버려서 옆에서 듣는 나도 불안하고 심장이 심하게 요동쳐서 같은 병실에 있다는 것이 고통으로 다가왔다. 



인간의 뇌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거나 극심한 고통에 직면하면 도망가거나 부딪혀 싸우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조정한다. 그런 상황이 닥치면 우리 몸은 심장을 빨리 뛰게 하여 혈액을 빠르게 공급하여 위험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화나 분노 같은 감정은 자신의 마음 상태가 몸으로 나타난 것으로 마음의 구토일 뿐이다. 

타인에게 던져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괴로웠던 것이다.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다. 


청년의 침대에는 붉은 글씨로 '금식'이고 쓰인 표찰이 걸려 있었다. 식욕이 왕성할 나이에 얼마나 먹고 싶을까? 

식사 때가 되면 나는 고욕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얇은 커튼 하나로 거의 붙어 있는 침대에서 밥을 먹으니 냄새는 물론 소리까지 고스란히 다 들리니 내 마음도 괴로웠다.

씹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식사 때마다 정말 힘든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엄마와 대화를 하는 것을 듣는 것도 곤욕이었다. 엄마는 아들을 달래면서 그 고통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아들은 거칠게 감정을 쏟아내기만 했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였다. 모든 것을 받아 주었다. 어떻게 하면 아들이 고통에서 해방되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병원을 찾았을 것이다.

 


결국 나는 간호사를 찾아갔다. 최대한 빨리 다인실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마침 퇴원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화장실 옆이라 좀 불편할 수 있다고 했지만 가겠다고 했다.


며칠 후 지하 마트 근처에서 우연히 아들을 보았다. 먹을 것을 사면서 전화로 주고받는 대화가 좋아 보였다. 참 다행한 일이다. 

밝아진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청년의 병이 잘 치료되어서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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