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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Oct 01. 2023

봄이 오면

ㅣ치유의 숲

움츠려 잠든 뿌리를 봄비가 깨워냈다. 
뿌리는 대지의 기운을 벌거벗은 나무 가지로 보내 잎눈을 깨웠다. 
봄을 맞을 준비로 모두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꽃들은 바위에 부딪혀 튀어 오르는 계곡의 물거품처럼 대자연의 품속에서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봄은 땅 속에 감추었던 비밀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려는 듯 대지에 초록의 물결과 형형색색의 꽃들로 가득 채워 놓았다.



씨앗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속이 단단해져 강한 생명력을 지니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 때가 되면 대지와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 세상 속으로 흩어져 새 생명을 탄생시킬 준비를 한다. 

어둡고 축축한 땅 속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 

씨앗은 기다림의 끝이 시작임을 안다. 그래서 씨앗은 희망적이다. 


마침내 생명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의 얼굴을 하고 젖은 대지를 밀어낸다. 연한 연두색 새싹들로 움튼 씨앗은 땅속 깊은 곳으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지상에서는 풍성한 잎과 꽃들의 향연으로 세상에 보답한다. 


꽃의 향기로 대기는 달콤해진다. 이처럼 씨앗은 오랜 세월을 차갑고 어두운 땅속에서 기다린다. 이 기다림은 지상에서 펼칠 풍성하고 유혹적인 축제를 열기 위함이다.


백 년을 견뎌낸 씨앗이 기적적으로 발아가 되듯이, 나도 단단하게 여문 작은 씨앗이 겨울의 언 땅에서 침묵하며 기다리다 새 생명으로 돌아온 것처럼, 절망에서 희망을 보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했다.


오늘도 잠들기 전에 기도한다.

'봄바람에 꽃잎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이곳에서, 무한하고 신비한 대자연의 일원으로 살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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