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혼자서 가는 출장은 드문 일이었다. 보통은 둘이 가서 서로의 일을 점검하곤 했는데, 이번만은 달랐다.
한낮의 공항은 조용했다. 체크인 카운터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니 활주로에 내리쬐는 햇살이 유난히 밝았다. 티켓을 받아들며 생각했다. 회사가 나를 홀로 보내는 것은 전적인 신뢰의 표시겠지만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도 따르는 일이다.
출국장으로 가는 길에 어떤 가족을 보았다. 어린 딸이 아버지의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며 웃고 있었다. 문득 집에 있을 아이들 생각이 났다. 급히 와주신 할머니께서 아이들을 돌보고 계실 터였다.
면세점 통로를 지나는데 어디선가 향수 냄새가 났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향이었다. 그 향기에 이끌려 걷다가 보니 어느새 게이트 앞이었다. 노트북을 꺼내 메일을 확인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구석자리에 앉았다. 옆자리에서는 세 식구가 도시락을 나누어 먹고 있었다.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 조용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콜라잔만 만지작거렸다.
창밖으로 해가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누군가의 이별과 누군가의 만남을 싣고 가는 비행기들이 오가는 활주로.
어둑해진 하늘 아래 게이트로 들어가기 전,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은 방금 어린이집을 끝내고 집에 왔단다. 아내는 오늘 야근이라, 할머니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고 계신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피곤함이 묻어났다.
밤이 된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공항을 설렘과 사랑이 가득한 곳이라 하지만 혼자가 되어서야 알았다. 이곳에도 삶의 무게가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