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피딕 배대원 앰버서더 인터뷰
‘고수의 생각’은 고수의 철학, 나아가 그들이 사고하는 방법을 뜻합니다. 즉, 각 분야 고수들의 사고법을 배워 우리네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게 이 인터뷰 기획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으면 살면서 마주하는 생각의 지평이 넓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터뷰에는 단순 신변잡기보다는 고수의 생각이 담깁니다.
남녀노소 성인이라면 누구나 편히 즐기는 위스키가 최근 주류 문화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부어라’, ‘마셔라’ 하던 음주문화는 이미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 위스키 문화를 변화시킨 계기가 무엇일까? 배대원 앰배서더가 그 답을 알려 줬다.
국내 위스키 애호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넘버원 전문가’. 배대원 앰배서더를 수식하는 말이다. 그는 위스키가 국내 주류 시장에 정착할 날을 꿈 꾸며 쉴 새 없이 뛰어다닌다. 싱글 몰트가 무엇이고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를 가이드하고, 위스키 애호가들이 저마다의 취향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역량을 모으고 있다.
Profile 배대원
•글렌피딕 브랜드 앰배서더
지금까지 위스키 인식 변천사를 설명해주세요
위스키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사회 지도층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주로 마시다 보니 비싸고 독한 술로 여겨졌어요. 비싸니 바이어를 접대할 때 사용됐고, 자연스럽게 ‘음지 세계’에서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생겼죠. 그래서 ‘위스키는 폭탄주’로 인식됐어요.
2000년대 들어 싱글 몰트가 알려지고, 건전한 바 문화가 형성되면서 ‘개성 강한’, ‘좀 더 맛있는’, ‘고급스러운’ 술로 이미지가 변모했어요. 지금은 술을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시기보다 풍미를 즐기고 개성 있는 맛을 찾는 문화 가자리 잡으면서 위스키 소비도 늘고 있습니다.
위스키 앰배서더라는 직업이 생소해요
각 브랜드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글렌피딕에서는 내가 한국 유일의 앰배서더예요. 자리 자체가 홍보대사와 다름없어요. 다만 단순히 홍보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교육이나 가이드 역할도 합니다.
위스키 앰배서더가 된 계기가 있나요?
취미로 위스키 공부하는 걸 즐기다가 앰배서더가 된 케이스예요. 그래서 주변에선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불러요.
20대 때, 아버지는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꼭 위스키를 선물로 사 오셨어요. 겉포장에 ‘싱글 몰트’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궁금해서 해외 위스키 서적을 구입해 읽어보니 위스키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였습니다. 그 세계가 정말 재미있어서 파고들었고 동호회 활동까지 하게 됐죠. 거기서 이름이 알려지면서 영광스럽게도 글렌피딕 앰배서더 자리까지 오게 된 거예요.
'싱글 몰트' 위스키는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졌나요?
싱글 몰트는 우리나라 전통주처럼 스코틀랜드 혹은 유럽 일부 지역에서만 즐겨 마시는 위스키였어요. 그걸 글렌피딕이라는 위스키 회사가 상품화하면서 시장을 확대한 거예요. 1963년 글렌피딕이 미국에 진출하면서 싱글 몰트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이죠. 당시에는 싱글 몰트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스트레이트 몰트’라고 이름 붙여 유통했어요. 이후 큰 성공을 거두면서 싱글 몰트라는 카테고리가 생겼습니다.
1963년 이전에는 싱글 몰트를 즐기지 않았나요?
당시에는 싱글 몰트 증류소들이 대형 블렌디드 위스키 회사에 원액을 공급하는 개념으로 위스키를 생산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중간 도매상이 파산하면서 싱글 몰트 증류소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이를 계기로 글렌피딕도 원재료 납품만으로는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이후 싱글 몰트로 독자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시장 진출을 시도했어요.
그랬던 싱글 몰트가 지금은 ‘위스키의 최고봉’으로 대접받고 있어요
싱글 몰트가 대접받는 이유는 증류소의 특징을 오롯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위스키에 뭔가를 더하거나 빼지 않은 ‘오리지널’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또 증류소마다 노하우가 다른데, 그런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술이다 보니 희소성도 있어요. 실제로 스코틀랜드에는 130개 증류소가 있는데, 술맛이 제각각 다르죠. 싱글 몰트는 그런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술이기에 가치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가 색다른 것, 개성 강한 것, 원조를 찾는 소비자의 니즈와 부합해 싱글 몰트를 더 귀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싱글 몰트 위스키 마시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테이스팅’과 ‘드링킹’을 구분하면 됩니다. 테이스팅은 위스키가 지닌 풍미, 즉 맛과 향을 모두 느껴보는 걸 말해요. 그러니까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마시면서 위스키의 정수를 오롯이 느껴야 하기에 향을 모아주는 전용 잔에 마시는 게 좋아요. 전용 잔은 입구가 좁아 향을 모아주죠.
반면 드링킹은 그냥 편하게 마시는 거예요. 친구들과 마실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마실 수도 있어요. 그래서 잔이나 음용법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편하게 가족과 위스키를 마실 때 혼자 색깔 보고, 향을 맡으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죠. 드링킹 할 때는 얼음을 넣든 칵테일을 만들든 자유자재로 즐기면 됩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위스키 상식이 또 있을까요?
흔히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스트레이트 잔에 마셔야 위스키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스트레이트 잔은 지름이 작아 마실 때 잔이 코에 닿지 않는 만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없어요.
'목 넘김이 좋다'는 말도 어불성설이에요. 우리 목에는 감각기관이 없어 통증만 느낄 수 있어요. 통증이 적게 느껴지면 목 넘김이 좋다고 착각하는 것이죠. 위스키의 정수인 향은 코에 있는 감각기관을 통해 느낀다는 걸 간과한 이야기입니다.
병에 새겨진 숫자를 ‘X년산’이라고 읽는 것도 잘못됐어요. 그건 빈티지를 의미해요. 예를 들어 ‘12년 산’이라면 보통 ‘1912년 빈티지’를 얘기하는 것과 같아요. ‘12년 숙성’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보통은 바에 가서 창피당할까 봐 물어보기를 주저하게 돼요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바텐더는 술 전문가고, 자신의 전문 분야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바텐더들이 내 분야를 잘 모르는 것처럼 우리도 바텐더가 하는 일을 잘 모른다고 여기면 편합니다.
이때 ‘~님’ 호칭을 붙여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은 매너예요. ‘바텐더님’, ‘매니저님’이라고 부르면 상대방도 나를 손님으로 존중할 거예요.
기존 위스키 애호가에게도 조언을 한다면요?
위스키 좀 마셔본 이라도 자기 취향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대부분 남들이 유명하다는 술, 비싼 술, 숙성 연도가 긴 술이 최고인 줄 알고 마셔왔지만 정작 본인의 취향이 아닐 때도 많을 걸요? 그런 이들에게 브랜드나 숙성 연수에 구애받지 말고 새로운 제품을 마셔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본인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행’이라 여기고 다양한 위스키를 접해 보면 좋겠습니다.
또 취향은 변하기 마련이에요. 예를 들어 처음 위스키를 마셨을 때는 스모키한 맛이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실 향이 좋아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특정 브랜드나 상품만을 고집하는 건 지양하는 게 좋습니다. 늘 새로운 걸 시도하는 태도는 위스키 경험을 축적하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위스키는 적게 마시는 대신 더 좋은 걸 마시자.
예전처럼 폭탄주로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게 아니라
비싸지만 한 잔, 두 잔 내가 좋아하는 만큼만 마시고
그 분위기를 충분히 즐기는 게 진정한 위스키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