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등 전 세계 대부분 국가의 차량은 좌측 운전석과 우측통행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영국과 일본처럼 우측 운전석과 좌측통행인 국가도 20% 정도 된다.
좌측통행은 1300년경 193대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로마 순례를 할 때 좌측으로 통행하라’고 공고한 것을 시작으로 본다. 반면 우측통행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통해 시작됐다. 당시 마차를 탄 귀족은 좌측통행을 하고 평민은 우측으로 걸어 다녔는데, 혁명 이후 귀족들이 신분을 감추기 위해 평민과 뒤섞여 다니면서 우측통행이 일반화됐다. 1794년 프랑스 정부는 우측통행을 공식화했고, 유럽 국가는 물론 러시아까지 진출한 나폴레옹에 의해 세계 곳곳에 우측통행이 전파됐다.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 기본적인 교통수단은 마차였다. 마부가 주로 오른손으로 채찍을 휘두르다 보니 운전자인 마부는 오른쪽, 승객은 왼쪽에 앉았다. 이 같은 관습이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자동차가 처음 제작되고 증기자동차가 실용화되는 과정에도 반영됐다.
반면 독일에서는 운전석을 왼쪽에 둔 자동차를 생산했다. 오른손잡이가 많기 때문에 운전석을 왼쪽에 두는 것이 수동 기어를 변속하는 데 수월했기 때문. 이후 대부분 국가가 편의성을 감안해 왼쪽 운전석 방식을 따랐지만, 보수적이고 자존심 강한 영국은 오른쪽 운전석을 고수했다. 영연방 국가와 영국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 태국 등도 오른쪽 운전석 방식을 따랐다.
마차가 교통수단이던 중세 시대, 영국 마부들은 마차의 오른쪽에 앉기를 좋아했다. 오른손잡이가 채찍을 휘두르려면 마차의 오른쪽에 앉는 것이 편했기 때문. 마차끼리는 좌측통행을 했는데, 오른손에 채찍을 들고 휘두를 때 행여라도 거리를 지나는 사람이나 옆자리의 탑승자를 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반면 행인은 마차의 왼편으로 걸었다. 마부가 휘두른 채찍에 맞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고, 다가오는 마차를 피하기도 수월했기 때문이다. 이는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 영국의 식민지에 자연스럽게 전파되어 지금도 시행되고 있다.
총이 등장하면서 칼이나 창으로 싸우던 시대가 가고 보행의 역사도 바뀌었다. 기존에는 오른손잡이 기사가 창을 든 채로 말을 타고 공격할 때 좌측통행을 해야 상대를 찌르기에 유리했다. 하지만 빠른 공격이 관건인 총을 사용하면서 좌측통행의 관습에서도 차츰 벗어나게 됐다.
또 마차의 자리를 자동차가 대신하게 되는데, 초기 자동차는 성인 남자의 완력으로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 변속기어와 제동장치로 인해 더 힘이 강한 오른손으로조작하는 게 편했다. 운전석은 좌측으로 바꾸고 조작 레버를 우측에 두게 된 이유다. 하지만 영국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자동차의 운전석을 굳이 오른쪽에 배치하면서 지 차량 좌측통행 체제를 이어나간 것.
프랑스는 차량도, 보행자도 우측통행을 한다. 그 배경에는 그들의 영웅인 나폴레옹이 우측통행으로 승리를 거두었다는 심리가 한몫한다. 당시 전투에서는 적의 우측을 공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나폴레옹은 반대로 적의 좌측을 찌르는 전술을 사용했다. 이는 적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전술로, 매 전투에서승리를 불러왔다. 이 같은 전술을 수없이 훈련한 프랑스 병사들은 자연스레 거리를 걸을 때 오른쪽으로 걷는 습관이 생겼다. 이는 나폴레옹이 침공한 나라에 전파되어 지금도 그들 나라 대부분은 우측통행을 한다. 베트남, 라오스 등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아시아권 나라 역시 우측통행을 한다.
아메리카 신대륙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여전히 좌측통행을 고수했다. 그러다 1700년대 말 미국에서 대형 포장마차가 널리 이용되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코네스토가 계곡 지방에서 처음 이용한 포장마차에는 마부의 자리가 따로 없었다. 대신 마부는 오른손으로 채찍질을 할 수 있도록 왼쪽 끝의 말을 탔다. 오른쪽 끝의 말을 타면 오른손잡이의 경우 앞쪽 왼편에 있는 말을 채찍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왼편 말을 타고 있다면 오른쪽으로 다녀야만 앉은 자리에서 아래쪽을 살펴보며 마차 바퀴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마차의 바퀴와 충돌하지 않도록 신경 쓸 수 있다. 우측통행은 미국 전역에서 금세 자리를 잡았다.
미국에서 대형 마차를 사용한 것과 달리 영국인들은 소형 마차를 이용했다. 크기가 작을뿐더러 마부가 앉는 자리도 있었다. 마부는 채찍질할 때 채찍이 뒤에 있는 마차에 걸리지 않도록 마차의 오른편에 앉았다.'
때는 사무라이 시대. 동네마다 칼 좀 쓴다는 사무라이들이 존재했다. 그 시절의 골목은 매우 좁아서 우측통행은 곧 싸움의 씨앗이 됐다. 왼쪽 허리에 찬 칼자루가 부딪치는 순간, 냉혹한 무사들의 싸움이 시작된 것. 불필요한 싸움을 막기 위한 ‘사무라이 규칙’이 생겨났고, 좌측통행도 이때 정착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일본이 공식적으로 좌측통행을 시행한 건 메이지 14년, 경시청이 통보를 내면서부터다.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은 영국을 근대화의 롤모델로 삼은 만큼 좌측통행을 따랐다.
일본은 좌측통행을 고수함으로써 자국의 자동차 산업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자동차의 자국 진출에 일종의 무역 장벽으로 작용한 것. 미국 자동차 회사들로서는 미국보다 작은 시장인 일본과 영국 등에 수출하기 위한 좌측통행용 자동차의 생산 라인을 따로 만들어야 하니 생산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주저하는 사이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높은 생산성을 무기로 빠르게 발전, 1970년대부터 자국 시장을 장악하고 수출 비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1903년 고종 황제가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황제전용어차’를 들여오고 나서 2년 뒤, 대한제국은 ‘보행자와 차·마의 우측 규정’을 발표했다. 이것이 우측통행의 시작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이러한 통행 규정도 바뀐다. 1921년 조선총독부는 사람과 차량의 통행 방식을 일본과 같은 좌측통행으로 바꾼 것.
해방 후 1946년 미 군정기에 다시 우측통행이 도입되었는데, 당시 차량에만 적용되고 사람들은 그대로 일본의 보행방식인 좌측통행을 했다. 그러다 2009년 10월 우측보행제도가 시범 운용에 들어갔고, 2010년 7월 우측통행이 사람에게도 적용돼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첫째, 우리나라의 차량은 모두 우측통행을 하고 있고, 운전석도 이에 맞춰 왼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 한국교통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측보행 시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량을 바로 볼 수 있고 횡단보도에 진입하는 차량과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 교통사고가 약 20%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둘째, 차량이 우측통행을 하는 나라 중 사람이 왼쪽으로 걷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기 때문. 미국, 캐나다, 중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 대부분 나라는 차량과 사람 모두 우측통행을 한다. 영국, 일본, 싱가포르, 뉴질랜드는 차량은 좌측통행, 사람은 우측통행을 한다.
셋째, 오른손잡이 인구가 왼손잡이보다 많기 때문에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서도 우측보행이 편하다. 오른손잡이 사람들은 대부분 오른손으로 짐을 들고 다니므로 좌측 보행 시 짐끼리 부딪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