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이름으로 나누는 고독

혁오의 'Die Alone'

by siyu


2026년의 오늘, 발매된 지 어느덧 9년이 지난 혁오의 정규 1집 [23]을 다시 꺼내 듣는 요즘이다. 2017년, 청춘의 한복판에서 염세와 허무를 노래하던 이 앨범은 시간이 흐를수록 여전히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지금 더 와닿는 듯하다. 9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어디에도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채 각자의 섬에서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optimize (2).jpeg [23] 앨범 커버


앨범 후반부의 'Die Alone'은 유독 재생 바의 ‘뒤로 가기’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게 만드는 곡이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들었다는 뜻이다.)


특히 날 계속 멈추게 하는 구절이 있다.

“날 떠날 사람은 얼른들 줄을 서요.”


왜 굳이 떠날 사람들에게 줄을 서라고 재촉했을까. 어차피 죽음이라는 종착역은 혼자 가는 것인데, 당신들이 가든 말든 상관없다는 서글픈 방어기제였을까. 아니면 내가 여기 있을 때 서둘러 떠나버리라는, 지독하게 냉소적인 심술이었을까.


edab45ee6db5be9ac499302f5765407e.jpg 출처ㅣpinterest


2026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혼자’라는 상태는 더 이상 특별한 결핍이 아니다.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일은 이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타인에게 감정을 낭비하기보다 스스로의 밀도를 높이는 삶을 택했지만, 그 덤덤함의 이면에는 사실 말로 다 못 할 두려움이 조금은 서려 있는 듯하다. 우리는 각자도생하며, 어찌 됐든 혼자서 늙어가고 있다.


노래 제목 ‘Die Alone’은 이 시대 청춘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신나는 분위기로 시작한 앨범이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을 쏟아내며 이 곡에 도달할 때, 우리는 거대한 허무와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고독의 문장에서 자꾸만 시선이 가는 건 ‘Alone’이 아니라 ‘We’, 그리고 ‘All’이었다.



“We all die alone.”

*문장은 참 아이러니하다. 왜 혼자라고 말하면서 자꾸 ‘우리(We)’라고 말하는가.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의지와 상관없이 관계 속에 던져진다. 그렇기에 다시 태어난들 관계는 끊어질 수 없고, 인간은 혼자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모순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결국 노래는 나만의 고독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고독을 한데 모아 서로를 확인하는, 내 고독이 당신의 고독과 닮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고독의 연대’로 다가온다.


가끔은 마음의 온도를 아주 낮추고 싶은 날이 있다. 어떤 기분에도 휩쓸리지 않도록, 차라리 텅 빈 방처럼 고요하게 남겨지고 싶은 그런 때. 예고 없이 닥친 무력감이 나를 바닥까지 무겁게 가라앉힐 때면, 나는 그저 이 소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린다. 그럴 때 이 곡은 내게 단순한 위로를 넘어 더 먼 곳을 내다보게 한다. 몇 년이 지나도 똑같은 가사와 멜로디겠지만, 내가 처한 관계의 좌표에 따라 이 노래는 또 다르게 들릴 것이다.


혼자이고 싶지만 같이 있고 싶은, 단절을 꿈꾸지만 연결을 갈구하는 우리들. 오늘도 나는 내 방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혼자'라는 운명을 '함께' 확인한다.

우리는 다 같이 혼자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이 노래를 자꾸만 되돌려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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