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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eal Jun 10. 2024

부끄러움

나의 이야기

내가 소년이었던 시절, 굉장히 어린 소년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우리 가족은 규모가 굉장히 작다. 엄마와 아버지, 형을 제외한 나머지의 가족과는 피가 섞였다는 것 외에는 큰 접점이 없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돌아가신 삼촌과 여전히 싱글이신 이모가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 가족(엄마, 아버지, 형과 나)은 2003년도부터 해외에서 살았다. 어쩌면 다른 가족분들과 접점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집안의 누군가가 돌아가셨다. 친할아버지나 친할머니의 형제자매 중 한 사람이었을거다. 돌아가신 분의 유골을 산소에 모시기로 했었고, 계단식 언덕에는 정장 차림의 아저씨, 아줌마들로 득실득실했다. 그들의 키는 너무나도 컸고, 조용하고 서늘했던 분위기가 어린 나에게는 너무 차가웠다. 나는 그 칙칙한 기둥 사이에서 편히 기댈 곳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아버지의 다리와 가장 비슷한 기둥을 끌어안으며 외쳤다.

“아빠!”

대답이 없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목이 꺾일 정도로 높은기둥이었다. 그러고는 돌아오는 묵직한 한 마디.

“내가 왜 니네 아빠야.”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부끄러웠고, 창피했다. 작고 여린 시절이었다. 지금의 우락부락한 내가 그랬다면 충분히 징그러웠을 테지만, 정말 귀여운 시절이었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아기인 시절. 꼭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꼭 그런 표정을 지어야 했을까. 그 사람의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슬픔에 젖어 갈라지던 투박한 중저음.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둥에 부딪히고 또 부딪혔다. 부딪혀서 느껴지는 아픔 때문에 고이는 눈물이 아니었다. 부끄러움. 생에 처음 느껴본 수치심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난 부끄러움이 적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끄러움에 대한 내성이 있다. 부끄러운 상황에 놓이면 몸은 당연히 그에 따른 반응을 보인다. 멋쩍게 웃어 보이거나, 볼을 붉히거나. 하지만 마음은 빠르게 평온함을 찾는다. 아직까지 그보다 더한 창피함에 맞서본 적이 없어서일까. 그때 그 음성이 다시 들려온다면, 나는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 당신이 선물한 수치스러움 덕에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수 있을까. 그 인사를 웃으며 전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칙칙한 옷차림과 굳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야 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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