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말이 없어도 통한다.
“슬픔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
1920년대. 전쟁은 끝났고, 재즈가 흐르며 모두가 ‘다시 웃고 싶다’고 말하던 시절.
그때, 영화관에서 들리던 건 대사가 아니라 웃음소리였다.
무성영화 시대. 아무 말 없이도 세상은 빵 터졌다.
채플린은 자신의 대표 캐릭터 ‘더 트램프(The Tramp, 떠돌이 신사)’를 통해, 가난하지만 품위 있고, 실패하지만 언제나 낙천적인 인물상을 그렸다. 이 캐릭터는 그의 거의 모든 영화에 등장하며, 전 세계 관객에게 보편적인 공감과 위안을 안겨주었다.
“나는 웃기지만, 웃기기만 하진 않아.”
『Kid Auto Races at Venice』 (1914): 더 트램프 캐릭터 첫 등장
『The Immigrant』 (1917): 미국 이민자의 삶을 따뜻하게 풍자했다.
→ 슬랩스틱 유머 중심이지만, 이미 사회적 풍자와 감정선이 깔려 있다.
『The Kid』 (1921): 고아 소년과의 사랑스러운 동행
『The Gold Rush』 (1925): 굶주림 속에서도 희극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City Lights』 (1931): 눈먼 꽃 파는 소녀와의 로맨스
『Modern Times』 (1936): 기계문명 속 인간성의 위기
→ 채플린은 대사 없이도 가장 ‘말이 많은’ 영화를 만들었고, 슬랩스틱을 넘은 시적 영상미와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완성시켰다.
『The Kid』영상링크: https://youtu.be/Lih7_P_hdNg?si=iEMkGFFR01-mZg-2
『The Great Dictator』 (1940): 히틀러를 풍자한 세계 최초의 반파시즘 코미디다.
→ “우리는 서로를 돕고 싶어 하지, 서로를 미워하지 않아요” 채플린의 연설 장면은 지금도 회자된다.
『Monsieur Verdoux』 (1947): 전쟁과 자본주의를 풍자한 블랙코미디
『Limelight』 (1952): 무대에서 사라져 가는 광대의 회고다.
→ 유성영화로 넘어가면서 채플린은 더욱 철학적이고 인간적인 영화를 선보였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세계는 단순히 웃음을 넘어서, 시대를 향한 깊은 메시지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가득 차 있다. 그가 가장 자주 다룬 주제 중 하나는 *‘빈곤 속 인간성’*이다. 그는 가난한 이들을 결코 조롱하거나 희화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인물들 속에서 인간의 품위와 존엄을 끌어올렸다. 떠돌이 신사는 늘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의 행동은 귀족보다 고결했다. 또한 그의 영화는 *‘사랑과 연대’*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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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의 캐릭터는 늘 누군가를 도우려 했고, 상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특히 『The Kid』에서 아이와 함께 만들어가는 유쾌한 동행은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를 넘어서, 인간 간의 따뜻한 연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채플린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잊지 않았다.『Modern Times』에서는 기계문명의 비인간성을, 『The Great Dictator』에서는 파시즘의 광기를 통렬하게 풍자했다. 그의 웃음은 단지 유쾌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대를 꿰뚫는 날 선 비판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후반기 작품들은 *‘예술가의 고독’*을 고백한다.『Limelight』에서는 한때 사랑받았던 광대가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 가는 과정을 통해, 예술가가 감내해야 하는 외로움과 잊힘의 슬픔을 그린다. 채플린은 웃음으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엔 누구보다 깊은 고요를 품은 이야기꾼이었다.
슬랩스틱 코미디: 뛰어난 신체 연기와 정확한 타이밍으로 연기한다.
무언의 감정 표현: 대사 없이도 사랑과 슬픔, 위로를 전하는 얼굴이었다.
시적 영상미: 도시의 거리, 빵조각,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까지도 이야기하는 요소로 사용했다.
자작자연 스타일: 각본, 연출, 주연, 음악까지 직접 담당 (거의 모든 작품)했다.
찰리 채플린은 오손 웰스, 페데리코 펠리니, 자크 타티, 미스터 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감독과 배우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AFI 선정 최고의 영화에 다수 포함되었다.
“채플린이 없었다면 영화는 지금처럼 따뜻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찰리 채플린은 ‘말’ 없이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영화는, 고요한 밤 한 편의 시처럼, 아무 말이 없어도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이 시기 코미디 영화의 무기는 바로 슬랩스틱(slapstick).
넘어지고, 쫓고, 맞고, 튀는 리듬감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안엔 삶의 아이러니와 사회 풍자가 숨겨져 있었다.
– 몸으로 웃기고 마음을 건드리는 코미디
언어보다 동작/ 대사 없이도 전달되는 유머. 무성영화 시대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형식이었다.
반복과 리듬/ 넘어짐, 추격전, 실수, 충돌 등의 동작이 리듬 있게 반복된다. 타이밍이 생명이며, 리듬은 웃음의 박자다.
과장과 예측 불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황도 웃음으로 승화. 예상되는 행동이 살짝 비틀어져 ‘웃음의 반전’을 준다.
보편성과 무 국적성 말이 필요 없기에, 국경과 언어를 초월함. 찰리 채플린은 전 세계인이 사랑했다.
찰리 채플린이 빵 두 개로 춤추는 『The Gold Rush』의 “댄스 오브 롤스”- 채플린이 빵 롤을 포크에 꽂아 춤추듯 입으로 옮기는 유머러스한 스틸샷이다. 이 장면은 인간미와 코믹함이 결합된 고전의 대표 이미지 중 하나다.
『The Gold Rush』영상링크: https://youtu.be/DltL_aTwfns?si=Fv7_uhgXvwWehvX6
제목: Safety Last!
감독: 프레드 C. 뉴마이어, 샘 테일러
주연: 해롤드 로이드 (Harold Lloyd)
장르: 무성 슬랩스틱 코미디
개봉: 1923년
한 시골 청년이 도시에서 성공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로스앤젤레스로 올라온다. 연인을 고향에 두고 출세를 다짐하지만, 현실은 백화점 점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성공한 모습만은 보여주고 싶은 그 상금을 걸고 고층 빌딩 외벽을 오르는 묘기에 도전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유명한 시계탑에 매달린 장면이 등장한다. 도시는 숨을 멈추고, 관객은 웃음과 긴장의 줄타기를 함께 타기 시작한다.
로이드가 거대한 시곗바늘에 매달린 채 고층에서 위태롭게 버티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영화사 최고의 슬랩스틱 스턴트로 손꼽힌다. CG 없는 시대, 실제 건물 외벽에 매달린 해롤드 로이드. 그는 2년 전 사고로 손가락 일부가 없는 상태였지만, 특수 장갑과 강철 멘털로 촬영을 마쳤다.
단순한 슬랩스틱이 아니라, 스토리 속 동기(사랑, 성공)에 기반한 코미디이다.
빌딩을 오를수록 높아지는 스릴, 커지는 웃음, 그리고 감정의 몰입을 유도한다.
로이드는 채플린의 떠돌이처럼 특이한 복장이 아닌, 평범한 안경 쓴 청년 이미지로 대중의 공감을 샀다.
그는 ‘특별한 재주’가 아닌 ‘보통 사람의 용기’로 영웅이 되었다.
『Safety Last!』는 대중성과 기술적 완성도, 그리고 배우 개인의 카리스마가 어우러진 1920년대 코미디 영화의 결정판이다.
당시 미국의 ‘성공 신화’와 도시화, 경쟁 사회의 초상까지 풍자적으로 담고 있다.
관객은 웃는 동시에, *"나도 저렇게 오르고 싶다"*는 공감과 희망을 얻는다.
“웃음은 두려움과 함께할 때, 훨씬 더 오래 남는다.”
『Safety Last!』는 단순한 유쾌함을 넘어, 보통 사람의 작지만 위대한 도전을 기억하게 하는 영화다.
그리고 그 시계탑에 매달린 순간은, 지금도 우리 마음속 불안과 희망 사이 어딘가에 매달려 있다.
해롤드 로이드가 시계탑에 매달린 『Safety Last!』- 높은 건물 옥상에서 거대한 시곗바늘에 매달린 로이드의 모습. 당시 실제 스턴트였고, 영화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순간으로 꼽힌다.
버스터 키튼은 ‘웃지 않는 코미디언’이었다. 항상 무표정한 얼굴, 고개를 갸우뚱한 채 위태로운 상황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그. 하지만 그 안엔 누구보다 치밀하고 혁신적인 감각이 있었다.
“표정을 짓지 않으면
관객은 상황에 더 몰입하게 된다.”
– 버스터 키튼
그의 무표정은 웃음의 여백이었고, 그 여백 속에 관객은 자신만의 감정을 담았다.
『Sherlock Jr.』 (1924)
극장 영사기사인 주인공이 스크린 속 탐정이 되어 모험을 펼친다.
영화 안에서 영화로 들어가는 초현실적 편집기법은 지금도 교과서적 장면.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메타시네마’의 시초가 되었다.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대작 슬랩스틱 코미디.
실제 증기기관차를 동원한 대규모 추격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다.
키튼은 직접 기차 위에서 달리고, 교량 붕괴 장면까지 실제로 연기했다.
집 외벽이 무너지는 유명한 장면에서, 그는 정확히 창문이 있는 자리에 서 있었고, 그 장면은 단 한 번의 촬영으로 완성됐다.
이 장면은 슬랩스틱과 스릴, 정교함의 결정체로 지금도 회자된다.
버스터 키튼의 영화는 한 편의 정교한 기계장치처럼 움직인다. 그는 거의 모든 스턴트를 직접 수행했으며, 그 어떤 위험한 장면에서도 대역을 쓰지 않았다. 열차 위를 달리고, collapsing house(무너지는 집) 앞에 선 그의 몸짓은 단순한 쇼맨십이 아니라, 리얼리티와 웃음을 동시에 설계한 엔지니어의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키튼의 슬랩스틱은 흔히 말하는 ‘우당탕’ 유머가 아니었다. 그의 유머는 타이밍의 예술에 가까웠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정확하게 맞물리고, 반응과 반전이 마치 시계태엽처럼 돌아간다. 그는 웃음을 계산했고, 그 정밀함이 오히려 더 큰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키튼은 카메라를 단순히 기록 장치가 아닌 연출의 도구로 삼았다. 『Sherlock Jr.』에서 보여준 화면 속 화면, 겹쳐지는 이미지,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편집 등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시도였다. 키튼은 무성영화 시대에 이미 영화가 영화 자체를 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인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키튼의 무표정은 단순한 연기 스타일이 아니라 그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철학이기도 했다.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오히려 그 빈자리에 관객이
자신만의 감정을 투사하도록 만들었다. 슬픔일 수도 있고, 놀람일 수도 있고, 심지어 공포일 수도 있는 그 ‘여백의 얼굴’은 오늘날까지도 가장 시적인 코미디의 표정으로 남아 있다.
인간과 기계의 대립: 『The General』, 『Cops』 등
개인의 고독과 생존: 작은 인간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분투하는 이야기
영화에 대한 영화: 『Sherlock Jr.』는 영화가 현실을 조종할 수 있다는 판타지의 시작점
키튼의 영화는 화려한 대사도, 뚜렷한 메시지도 없지만, 그 정교한 움직임과 연출 속에서 우리는 20세기 초의 불안, 도시화, 인간성의 위기를 느낀다. 그는 웃음으로 말했지만, 그 웃음은 늘 조용했고, 그 조용함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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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 키튼과 찰리 채플린은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두 거장이지만, 그들의 영화 세계는 서로 다른 결을 지닌다. 표정부터 다르다. 채플린이 감정을 얼굴로 드러내며 웃고 울고 사랑했다면, 키튼은 철저히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래서 ‘스톤 페이스(Stone Face)’라는 별명을 얻었고, 관객은 그의 표정 없는 얼굴에서 더 큰 상상력과 감정을 끌어냈다.
유머의 방식에서도 차이가 뚜렷하다. 채플린은 슬랩스틱 속에도 따뜻한 감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고, 웃음과 눈물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반면 키튼은 정교하게 계산된 슬랩스틱과 기계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움직임 자체로 웃음을 설계했다.
그의 유머는 감성보다는 구조와 정확성에 가까웠다. 다루는 주제도 미묘하게 다르다. 채플린은 주로 가난한 이들의 존엄, 사랑, 그리고 연대의 따뜻함을 이야기했다면, 키튼은 개인이 거대한 세상이나 기계, 도시 문명과 충돌하면서 생기는 불균형과 생존의 아이러니를 그려냈다. 그래서 그의 주인공은 언제나 너무 작고, 너무 약해 보이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는 존재였다.
기술적으로도 서로 다른 방향을 지향했다. 채플린이 감정 표현과 연기에 집중했다면, 키튼은 카메라 기법과 편집, 시각적 실험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Sherlock Jr.』에서 선보인 영화 속 영화 장면은 오늘날 메타시네마의 시초로 평가받을 만큼 앞서 있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객에게 전달했다. 하나는 따뜻한 눈물로, 다른 하나는 무표정한 눈빛으로. 우리는 두 사람 덕분에, 웃음의 깊이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찰리 채플린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버스터 키튼은 우리의 무의식 속 깊은 웃음을 자극했다. 그리고 때로, 웃음은 설명보다 정확하게 진실을 말한다.
버스터 키튼이 건물 정면이 쓰러지는데 창문 자리에 서 있어 무사한 『Steamboat Bill Jr.』- 무게 2톤의 집 외벽이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키튼이 정확히 열린 창문에 서 있어 무사한 장면. 완벽한 계산과 위험을 무릅쓴 대담함의 결정체다. 바람에 날리듯 넘어지는 집 외벽 스턴트의 순간 포착. 키튼의 표정 변화 없는 스톤 페이스와 그 상황의 아이러니가 돋보인다.
*모두 위험한 상황 속 ‘정확한 계산’이 만든 웃음이었다.*
출생: 1889년 4월 16일, 영국 런던
활동시기: 1910년대 초 ~ 1950년대
대표작:
『The Kid (1921)』 – 고아 소년과의 정감 어린 동행
『City Lights (1931)』 – 눈먼 꽃 소녀를 위한 사랑
『Modern Times (1936)』 – 기계문명 속 인간의 위기
『The Great Dictator (1940)』 – 파시즘을 풍자한 역사적 연설
감성과 풍자를 넘나든 ‘떠돌이 신사’의 창조자.
무성영화를 예술로 끌어올린 감독이자 배우.
출생: 1895년 10월 4일, 미국 캔자스
활동시기: 1910년대 후반 ~ 1930년대
대표작:
『Sherlock Jr. (1924)』 – 영화 속으로 들어간 영사기사
『The General (1926)』 – 남북전쟁 속 기차를 타고 펼치는 모험
『Steamboat Bill, Jr. (1928)』 – 무너지는 집 장면의 전설
‘스톤 페이스’로 불리며 슬랩스틱을 정밀한 예술로 끌어올린 영화 실험가.
출생: 1893년 4월 20일, 미국 네브래스카
활동시기: 1910년대 중반 ~ 1930년대
대표작:
『Safety Last! (1923)』 – 시계탑에 매달린 청년의 도전
『The Freshman (1925)』 – 대학생의 좌충우돌 성장기
『Girl Shy (1924)』 – 평범한 청년의 로맨틱 코미디
친근한 안경 쓴 청년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평범함 속 비범함을 그린 배우.
배우는 말 대신 몸으로 말했다. 무용수처럼, 리듬과 움직임으로.
CG 없이 진짜로 시계탑에 매달렸고, 진짜 기차 위에서 연기했다.
그리고 말없이 사회를 풍자했다. 빈곤, 계급, 인간성까지.
미스터 빈(Mr. Bean) – 대사 없이 몸으로 웃기는 영국의 국민 캐릭터
짐 캐리, 잭 블랙 – 얼굴과 몸을 총동원한 ‘현대적 슬랩스틱’
픽사 애니메이션 – 동작만으로 감정과 웃음을 이끄는 장면들이다.
*슬랩스틱은 여전히 살아 있고, 지금도 많은 영화와 콘텐츠에 그 뿌리를 남기고 있다.*
슬랩스틱은 대중에게 묻지 않는다.
"왜 웃었는지" 설명할 필요 없다.
그저 무의식처럼, 몸이 먼저 웃는다.
어쩌면 가장 본능적인 위로며,
가장 오래 남는 유머일지도.
1920년대 코미디는 지금도 유효하다. 채플린의 걷는 모습, 키튼의 무표정, 로이드의 안경 .이들은 지금도 패러디되고, 밈이 되고, 우리 일상에 녹아 있다. 그 웃음은 말이 없어도 통한다.
1920년대, 전쟁과 불황,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은 웃음을 찾아 영화관으로 모였다. 그들은 대사를 몰라도, 시대를 이해하지 못해도, 찰리 채플린의 눈빛에서 위로를 찾았고, 버스터 키튼의 무표정에서 공감을 느꼈으며, 해롤드 로이드의 고군분투에서 자신을 보았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도 다시 한 번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격해진 갈등, 침체된 경제, 미래에 대한 불안등. 우리 역시 다시 질문하게 된다. “지금 이 시대에 코미디가 무슨 소용인가?” 그러나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웃어야 할 이유가 분명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웃음은 현실을 망각하게 하려는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이자,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언어다. 말 없이도 세상을 바꿨던 그 시절 코미디처럼 지금 우리의 일상에도 누군가의 시계탑이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고, 무표정한 얼굴 뒤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숨어 있는지를 우리는 안다. 그래서 다시, 영화를 본다. 그리고 다시, 웃는다. 그 웃음이 우리가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작은 증거처럼.
말 없는 코미디는, 오히려 더 깊은 위로를 주었다. 말장난 없이도 웃길 수 있고, 지금 우리의 삶에도, 그 무성의 웃음 하나쯤, 슬쩍 놓아두고 싶다.
지금 대한민국은 빠르게 변화하며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밤하늘처럼 반짝입니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번성하는 서울처럼, 우리의 일상에도 웃음과 연대의 불빛이 필요합니다.
코미디는 단순한 유머가 아닙니다. 현실의 균열 속에서도 서로를 지탱하는 작은 기적입니다. 채플린의 위로, 키튼의 침묵, 로이드의 도전이 오늘 우리의 웃음에 합쳐질 때, 대한민국의 밤은 다시 한 번 빛이 날껍니다.
환하게 밝힌 도시처럼, 우리 안의 웃음도 다시 세상을 비출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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