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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thing special/ 우도

13. 초승달을 닮은 섬, 우도(牛島)

by 이다연


“섬인데도 중심이고,
바다인데도 안식이다.”


사람은 종종, 세상에서 아주 살짝 비껴 나 있는 곳을 그리워한다. 멀지 않지만 낯설고, 작지만 꽉 찬 감정을 주는 섬. 우도는 제주보다 조용하고, 바다보다 고요하다.

"제주 안의 제주."
"섬이 품은 또 다른 섬."
우도는 그런 곳이다.


1. 섬, '가까움과 낯섦 사이'

제주도 성산항에서 배로 15분, 우도는 너무 쉽게 닿는다. ‘소머리 우(牛)’자를 닮은 지형에서 이름을 얻은 이 섬은,
마치 뿔을 낮게 들이운 소처럼 조용하고 순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느슨한 시간, 여백의 리듬, 그리고 혼자만의 사유가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여기선 “시간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느낀다.”
섬은 작고, 길은 단순하지만, 마음은 그 안에서 여러 방향으로 흐른다.


2. 물과 땅, 흑과 백의 리듬


우도에선 가장 먼저 '색감'이 다르다.
밟는 길은 새까맣고, 부서지는 파도는 눈부시게 하얗다.
이질적인 조합이지만, 이상할 만큼 잘 어울린다.


▶️ 검멀레 해변의 짙은 현무암


▶️ 산호해변의 산호모래

그 두 극단이 하나의 섬에 공존한다.

검은 모래 위에 서면 차분해지고,
하얀 백사장을 걷다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
우도는 늘 정반대의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는 섬이다.


3. 일상의 속도, 우도의 느림


우도에서는 걷지 않는다.
느리게, 돌고, 멈춘다.

자전거와 전동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도는 것이 가장 흔한 여행법이지만, 그 속도조차 점점 느려진다.

왜냐하면 자꾸 내리고 싶기 때문이다.


작은 언덕 위의 등대,
무심하게 놓인 돌담길,
갑자기 튀어나오는 말(馬),
길가에 퍼진 조용한 바람.

그것들은 어느 순간

‘길’보다 ‘머무름’에 더 가까워진다.


4. Top 5: 다섯 개의 시점(視點)


검멀레 해변

현무암이 깔린 짙은 해안.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조차 낮게 울리는 곳.
동굴과 절벽이 만들어낸 그림자 안에서, 나는 깊어진다.


산호해변 (서빈백사)

동글동글한 산호조각이 흩뿌려진 하얀 해변.
발밑은 부드럽고, 바다는 맑고 투명하다.
우도에서 가장 반짝이는 낮의 순간이 여기 있다.


우도봉

우도의 중심이자 정상.
360도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제주 본섬, 성산일출봉, 바다, 오름…
모든 풍경이 한눈에 안긴다.


하고수동 해수욕장

사람의 소리보다 물의 소리가 많은 곳.
너무 얕고, 너무 잔잔해서
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느낌이 든다.


우도등대공원

바람을 피할 수 없는 곳.
높고 말 없는 등대 옆에서,
나는 말을 잃고 대신 바라본다.
바다는 멀지만, 마음은 가까워지는 자리.


5. 우도 정보 요약

행정구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일대

면적: 약 6.18㎢ (둘레 약 17km)

인구: 약 1,800명

교통: 성산항 → 우도도항 (도항선, 약 15분 소요)

특징: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 보전지역, 산호해변, 해녀문화, 전기차 섬

대표 명소: 검멀레 해변, 산호해변, 우도봉, 하고수동, 우도등대공원


6. 섬의 속도

우도는 시끄럽지 않다.
그러나 절대 조용하지도 않다.

여기서 들리는 소리는 바람 소리도, 파도 소리도 아닌 ‘나의 속도’가 다시 들리는 소리다.

세상의 리듬에서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걸을 수 있는 섬. 우도는 그 모든 것을 허락한다.


7. Epilogue

우도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네가 작아져도 괜찮다.”
“이 섬 안에선, 그마저도 충분하다.”


나는 산호 위에 발을 멈췄고,
돌담 옆에 등을 기대었으며,
등대 아래에서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가장 작은 섬이, 가장 깊은 평화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우도에서의 하루는,
하루가 아니라 한 편의 시다."



♡-Legend

《소가 된 자, 섬이 되다.》-♡

-여인의 절개


먼 옛날, 바람이 말을 삼키던 시대.

고려의 숨결이 사라지고, 조선의 서슬이 돋기 시작하던 무렵.
깊은 산골짜기에 조용히 살아가던 한 선비 부부가 있었다.


세상에 이름을 알릴 뜻도, 세상과 겨룰 야심도 없던 사람들.
그들은 하루하루를 밭일과 책으로 채우며 소박하게 살았다.

그러나 전란은 삶의 평온을 오래 두지 않았다.

불안한 세상에서 부부는 더 멀리, 더 조용한 곳을 꿈꾸었다.

“이곳보다는… 낫겠지요.”

그리하여 그들은 물이 빠지는 시간에만 건널 수 있는

조그마한 바다 건너 섬으로 향했다.

그곳이, 지금의 **우도(牛島)**였다.


섬살이는 고되었지만, 평화로웠다.
나무를 심고, 지붕을 얹고, 바다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은 조용히 작은 세상을 만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마을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육지 일을 보고 오리다. 며칠이면 돌아오겠소.”

그는 바다 건너 나라를 지키기 위해 떠났다.
하지만 그 길로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이 남긴 마지막 말은
“모진 세월, 부디 기다려주시오.”
라는 편지 한 장뿐이었다.


아내는 그날 이후 매일 해가 뜨기 전,
마을 뒷산에 올라 남편이 건너간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당에 작은 제단을 쌓고,
살아 있는 듯 살아 있지 않은 듯한 시묘살이를 이어갔다.

그 모습은 섬사람들에게도 슬픈 전설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육지에서 온 젊은 부잣집 사내가 그녀를 찾아왔다.
섬사람들 사이에 퍼진 이야기.
‘혼자가 된 여인’, ‘외롭게 남은 집’
그는 욕망과 호기심을 껴안고 다가왔다.

“외롭지 않으시오? 내가 당신 곁이 되리다.”

그러나 여인의 대답은 단호하고, 깊었다.

“그대는 내 남편처럼, 진정 무거운 마음 하나를 견딜 수 있겠소?”
“그렇다면— 소 울음 세 번을 외치고 오시오.”


사내는 놀랐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새벽어둠을 뚫고 산에 올라갔다.
그리고 고요한 하늘 아래, 온 힘을 다해 울부짖었다.

“으—으——으——”

어리석게도 그는 그것이 사랑을 증명하는 일이라 믿었다.


그 순간,

여인은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남편이 남긴 편지를 가슴에 품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아무 소리도, 어떤 고함도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이튿날.
사람들은 산에서 넋 나간 사내를 보았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눈빛은 멀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산봉우리 아래에서 수수께끼 같은 바위 하나가 솟아났다.

그 바위는 멀리서 보면
고개를 떨군 소의 형상을 닮았다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말했다.


“그가 소가 되었구나.
욕망이 몸을 잃고, 울음이 돌이 되었구나.”


그 뒤로 사람들은 그 섬을
소섬—우도(牛島)라 불렀다.

바다와 육지 사이,
고요와 욕망 사이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울림.
하나의 이름.


지금도 검멀레 해변 어귀에 바람이 불면
누군가는 귓가에서 들린다고 말한다.

“으—으——으—”

슬프고, 부끄럽고,
아름답기까지 한 울음.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 하나가 그 위에 얹힌다.

“기다렸소… 그대를.”


여행에세이, 섬, 여행감성

― 《섬 thing Special》: 《'가까움과 낯섦 사이', 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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