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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thing special/ 연홍도,

15. 연홍도, 섬이 그린 그림(蓮紅島)

by 이다연


“섬인데도 벽이고,
골목인데도 화폭이다.”


누군가는 바다를 보러 가고,

누군가는 그 바다에 무언가를 남기러 간다.
연홍도는 그런 섬이다.

"벽화섬."
"남해의 작은 예술."
"섬이 만든 한 권의 그림책."

여기서는 길을 걷는 일이 곧 그림을 읽는 일이다.


1. 붓 대신 발걸음, 연홍도의 시작

전남 여수항에서 배를 타고 40분.
작은 부두에 내리면 가장 먼저 붉은색 벽이 인사한다.


연홍도라는 이름은 '연꽃 연(蓮)', '붉을 홍(紅)'
그리고 섬 '도(島)'의 조합이다.

이 섬에는 연꽃도, 붉은 꽃도 피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그려 넣은 마음들이 꽃처럼 피어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도,
그림은 벽에 달라붙은 사연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2. 다섯 개의 시점(視點), 다섯 개의 캔버스

✅ 연홍도 벽화골목

섬을 따라 도는 골목마다
100여 개의 벽화가 퍼져 있다.
아이의 낙서 같기도 하고,

어른의 상처 같기도 한 그림들.
하나하나 다르게 숨 쉬고 있다.


✅ 연홍예술쉼터

옛 마을 창고를 개조한 소박한 갤러리.
마을 할머니의 자수부터,
젊은 화가의 캔버스까지.
섬은 예술의 시간도 천천히 받아들인다.


✅ 포구의 노을벽

해가 질 무렵, 바다와 벽이 같은 색이 된다.
그 순간만큼은 섬이 하늘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연홍도의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


✅ 구들장 바닷길

비 오는 날이면 미끄럽지만,
그 위에 반짝이는 물웅덩이엔
하늘이 가득 담겨 있다.
걷는 발밑이 화폭이다.


✅ 연홍등대길

짧은 언덕을 오르면 빨간 등대.
그 옆에는 오래된 목재 벤치 하나.
바다와 마을,


지나온 벽화의 선명함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


3. 연홍도 정보 요약

행정구역: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연도리

면적: 약 0.78㎢ (아주 작은 섬)

인구: 약 50명 내외

교통: 여수 연도항 → 연홍도 (연도 경유 배편, 약 40~50분 소요)

특징: 벽화마을, 예술쉼터, 걷기 좋은 골목

대표 명소: 벽화길, 예술쉼터, 포구벽, 등대길


4. 섬, 그리다

이 섬은 작아서

걸으면 한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두 시간, 세 시간,

하루 종일 머문다.
왜냐하면 한 걸음마다 색이 다르고,
한 모퉁이마다 이야기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벽이 말을 걸고,
바다가 그림자를 그리면
나조차도,

이 섬의 일부가 된 기분이다.


5. Epilogue

연홍도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당신의 마음에도,
아직 비어 있는 벽이 있겠지요?”

“그 빈자리,
여기서 천천히 채우고 가세요.”


나는 그림 앞에서 멈췄고,
이름 모를 고양이와 눈을 마주쳤으며,
빨간 벤치에 앉아
연홍도를 그리지 않고도
기억 속에 색칠하고 있었다.

"연홍도에서의 하루는,
벽을 읽는 일이고,
기억을 칠하는 시간이다."



♡-Legend

《벽을 넘은 꽃》-♡

-“웃는 사람은 그림이 된다.”


옛날, 연홍도에
하루에 말을 세 마디도 하지 않는 노인이 살았어.

사람들은 그를 두고 이렇게 불렀지.

“저이는 고장 난 라디오야.”
“아냐,
바다에 목소리를 두고 온 사람이래.”

노인은 늘 같은 삶을 살았대.
날마다 배를 탔고,
작은 고기 몇 마리를 팔았고,
저녁이면 아무 말 없이 혼자 밥을 지었지.


동네 아이들이 장난을 쳐도,
시장 아지매들이 물건을 잘못 줘도
노인은 말이 없이 그저 담배만 피웠대지.


어느 날,

노인의 집 벽에 꽃 한 송이 그림이 나타났어.

마치 바람에 묻어온 색처럼,
누가 그렸는지 모르게 피어 있었지.


사람들은 아이들 장난이라 했어.

그런데 다음 날엔,

꽃 옆에 흰 바람결이 한 줄기,
글쎄, 그다음 날엔 작고 붉은 새 한 마리가 그려졌대.


그림은 하루하루 자랐어.
꽃은 줄기를 뻗고,
새는 눈을 떴고,
바람은 방향을 바꾸었지.


노인은 매일 밤, 그 벽 앞에 앉아 담배를 피웠어.
말은 여전히 없었지만,
그의 눈빛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지.


그리고 봄이 오던 날,
동네 사람들이 노인의 벽 앞에서 작은 잔치를 열었어.
처음으로 꽃과 새와 바람이 완성된 날이었대.


그날, 노인은 처음으로 웃었어.

작은 미소였지만...
그 작은 섬엔 그보다 큰일이 없었지.


며칠 뒤, 노인은 떠났어.
아무 말 없이, 아무 흔적 없이.
배도, 집도, 연기도 모두 남기지 않았지.


벽은 남았어.

그리고 지금도 그 벽엔
단 하나의 문장이 남아 있었대.

“웃는 사람은 그림이 된다.”


지금도 연홍도 벽화골목을 걷다 보면,
그 노인의 집이 어디였는지 누구도 정확히 몰라.


왜냐하면—
이제는 골목 곳곳에 웃고 있는 사람의 그림이 넘쳐나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말해.

“그는 이제 섬 전체에 살아 있어.”
“연홍도에선,
웃는 순간 네가 그려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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