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살게 하소서

하루를 만나다

by 이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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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달력이
하얀 숨을 고르며
벽에 걸립니다


아직 아무 말도 쓰이지 않은
날들의 얼굴이
조용히 나를 바라봅니다


어제의 실수도
오래된 슬픔도

달력 뒤로 살며시 접어두고
오늘은
첫 사람처럼
다시 첫 마음으로 서 봅니다


새해란
시간이 바뀌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다시 열리는 일임을
나는 이제 조금 압니다


굳어 있던 생각은
부드럽게 풀어 주시고
지나치게 무거웠던 말들은
침묵 속에 씻어 주시고
아직 오지 않은 걱정보다
오늘의 숨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새 소망을 주소서
크게 빛나지 않아도
매일 꺼지지 않는 작은 불 하나를


사람을 미루지 않고
사랑을 오늘로 미루지 않으며
나 자신에게도
조금은 친절할 수 있는 힘을


이 한 해가
무언가를 더 가지는 해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아
가벼워지는 해가 되게 하시고


날마다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은총 하나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나는 새해 앞에
두 손을 모읍니다


아직 비어 있기에
무한히 채워질 수 있는
이 하루를 위하여


비어있는 하루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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