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죽도(竹島)
“섬이 정원이 되고, 정원은 시가 된다.”
보령의 남쪽, 남포방조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바다 위의 정원처럼 고요히 떠 있는 죽도(竹島)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위에,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상화원(尙和園)이 있다.
‘조화를 숭상하는 정원’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자연과 사람, 바람과 시간 사이의 경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죽도는 본래 외딴섬이었다.
그러나 남포방조제가 놓이면서 육지와 연결되었고, 그 위에 한 남자가 평생의 시간을 걸어 만든 정원이 생겨났다.
상화원은 인공의 흔적보다는 ‘비워둠의 미학’으로 완성된 공간이다.
섬 전체가 하나의 정원이며, 바다와 산책로, 회랑, 한옥, 조각상이 한 폭의 그림처럼 이어진다.
특히 2km에 달하는 회랑(回廊)은
상화원의 상징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걸을 수 있는 길.
그 길 위에서는 하늘의 빛과 파도의 소리가 섞이며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흘러간다.
행정구역: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남포방조제 408-36
면적: 약 0.3㎢ (죽도 일대 전체 정원 면적)
지형: 바다 위에 형성된 구릉지형의 인공 정원 / 해송숲과 회랑, 한옥단지, 석양정원 등으로 구성
교통: 남포방조제 도로 이용 / 차량 및 도보 접근 가능 (보령 시내에서 약 30분 거리)
개방 기간: 4월 ~ 11월 (금·토·일·공휴일 개방)
운영 시간: 09:00 ~ 18:00 (동절기 17:00까지, 입장 마감 1시간 전)
대표 명소: 회랑길(2km), 해송숲길, 석양정원, 해변독서실, 명상관, 한옥촌, 예술 조각 정원
특징: 섬 전체를 전통정원으로 조성한 복합 문화정원 /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주제로 한 공간 예술 / 입장 시 떡과 차 제공
입구를 지나면
떡과 따뜻한 차 한 잔이 건네진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바람이 참 좋네요.”
이 짧은 인사 한마디에
이미 정원의 문이 열린 듯했다.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솔향이 진하게 감도는 해송림, 노을빛이 스며드는 석양정원,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해변독서실, 그리고 마음을 비우는 명상관이 차례로 이어진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조용하다.
말보다 바람을 듣고,
사진보다 눈으로 풍경을 담는다.
누군가는 연인의 손을 잡고 걷고, 누군가는 혼자 걸으며 자기 안의 기억과 대화한다.
상화원의 언덕 위에는 전통 한옥들이 자리한다.
전국 각지에서 옮겨온 객사와 사랑채, 고택들이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다.
기와지붕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그 시절의 숨결처럼 따뜻하다.
한옥 사이를 지나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마치 이 정원을 만들던 사람의 손끝에서 아직도 다듬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상화원에는 ‘한국빌라’라는 숙소가 있다.
밤에는 창문 너머로 바다의 숨결이 들리고,
새벽에는 갈매기 소리가 알람이 된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삶의 속도와 감정의 깊이가 달라진다.
“이곳에서는 시계를 잊고,
대신 마음의 시간을 기억하세요.”
직원이 건넨 그 말이
이 정원의 철학을 가장 잘 설명하는 듯했다.
노을이 섬의 가장자리를 감쌀 때,
석양정원은 하루의 마지막 빛으로 물든다.
붉은 하늘 아래에서 회랑의 기둥이 금빛으로 번지고, 바다는 그 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곳에 앉아 조용히 일기를 쓴다.
“오늘 나는 바다를 보았다.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죽도 상화원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그곳은 ‘기억의 정원’이며,
‘침묵의 미술관’이자,
‘바다 위의 산책길’이다.
누군가에게는 힐링의 공간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추억이 깃든 무대가 된다.
회랑의 끝에서 돌아보면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가 속삭인다.
“모든 조화는
기다림에서 시작된다.”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그 위에 사람의 시간이 쌓여 간다.
아주 오래전, 죽도에는
‘푸른 파도 소리’를 사랑한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는 매일 바닷가 절벽 끝에 서서
하루 종일 바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바다는 늘 제멋대로였다.
밀물 땐 다가왔다가, 썰물 땐 멀어졌다.
그게 불만이었던 나무는 외로웠지만,그래도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폭풍이 몰아쳤고
나무는 꼼짝달싹 할 수 없이 바닷물에 뿌리가 반쯤 잠긴 채로 절망하기 시작했다.
그때 바다가 속삭였다.
“이제 내가 널 지켜줄게.”
그 후로 나무는 더 깊게 뿌리를 내렸고,
바다는 잔잔한 파도로 그 곁을 감쌌다.
사람들은 지금도 죽도 해송숲길을 걸으며
그 나무를 찾는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들려오는 파도소리,
그건 바다가 아직도 나무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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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thing Special – 기억의 정원, 죽도 상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