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이야기

《루루 날다.》

by 이다연


프롤로그


바람이 조용히 속삭이던 어느 봄날,

햇살 가득한 들판 한가운데 노란 별처럼 피어난 꽃이 있었어요.

그 이름은 민들레였지요.

민들레는 수많은 꽃들 중에서도 마음이 가장 넓고 따뜻한 엄마였답니다.

하얗고 작은 홀씨 아가들을 품에 안고,

매일 아침 햇살을 먹이고, 바람이 불면 자장가를 불러주며

사랑으로 조심조심 아이들을 키워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 들판을 찾아왔어요.

"민들레야, 이제 시간이 되었단다.
네 아이들이 세상을 여행할 때가 온 것 같구나."


민들레는 가슴이 콕하고 무너지듯 아팠어요.

하지만 알고 있었지요.

홀씨 아가들이 머물러야 할 곳은 이 작은 둥지가 아니라,

세상의 넓은 어딘가라는 걸요.

그래서 민들레는 하얀 숨을 깊게 내쉰 후

아이들에게 속삭였어요.

"얘들아, 이제 여행을 할 때가 왔단다."


루루


루루는 민들레 엄마 품속에서 자란

수많은 홀씨 중 가장 작고 가벼운 아이였어요.

언제나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누구보다 반짝였지요.

아침 햇살에 젖은 물방울처럼 말이에요.


루루는 늘 궁금했어요.

"저 멀리 보이는 숲은 어떤 냄새가 날까?"
"그곳엔 나처럼 하얀 아이들이 살고 있을까?"


어느 날, 바람이 루루의 등을 살짝 밀어주어서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보기로 했답니다.

언제나 루루가 가 보고 싶은 숲이

눈앞에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루루의 모험이 시작되었답니다.


1장. 안개의 숲

— 길을 잃다


루루는 민들레 엄마의 품을 떠나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올랐어요.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들판이 점점 작아졌고,

멀리서 바라보던 숲이 어느새 눈앞에 다가왔지요.

"우와… 여기가 바로 숲이구나!"


루루는 바람을 타고 높이 날아올랐어요.
들판 저편 너머, 익숙한 풍경이 작아지고
하늘 위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죠.


저 멀리, 구름 사이로 펼쳐진 푸른 숲이 보였어요.

그 숲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초록의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숲의 색은 점점 더 짙은 초록으로 바뀌었고,
잎사귀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 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았어요.


햇살은 나뭇잎 틈으로 부서져 들어와

숲길 위에 조용히 금빛 무늬를 흘려놓았고,

멀리 어딘가에선 작은 숨소리처럼 들리는

여린 생명들의 움직임이 퍼져 나왔어요.

루루는 그 광경을 숨을 죽인 채 바라보았어요.

“저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숲은 말이 없었지만,
그 고요한 침묵 안엔
풀벌레, 나뭇가지, 열매, 그리고 누군가의 발자국 같은
수많은 소리들이 간직되어 있었지요.


루루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어요.
그리고 그 설렘을 안고
조심스럽게 숲의 입구로 날아들었답니다.

숲은 마치 오래 전부터 루루를 기다린 듯
조용히, 따뜻하게 그 품을 열어 주었어요.


숲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넓었어요.

루루가 숲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사르르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죠.

처음엔 희미하게 퍼지던 안개가 금세 숲을 가득 채웠고,

햇살도, 길도, 하늘도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어떡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왼쪽도 나무, 오른쪽도 나무,

아래를 내려다봐도 길은 없었어요.

바람도 루루를 인도해주지 않았지요.


그때였어요.

아주 작고 여린 소리가 들려왔어요.

치르르… 차르르르…

풀벌레의 노래였어요.

작고 조용했지만 선명한 소리였죠.


루루는 그 소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날았어요.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졌고,

두려움도 사라졌어요.


잠시 후,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한 줄기 스며들며

다시 길이 열렸어요.

루루는 조용히 웃었어요.

"그래,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들으려 하면 길은 꼭 열려."

그리고 다시 깊은 숲 속으로 향했답니다.


2장. 욕심의 돌무더기

— 딱정벌레의 거래


길을 따라 숲 속을 날던 루루는

커다란 돌무더기 아래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어요.

가까이 가 보니

반짝이는 보석처럼 생긴 이슬 조각들과 금빛 껍질,

빛나는 나뭇조각이 쌓여 있었어요.

그 옆엔 단단한 갑옷을 입은 딱정벌레가 있었지요.

"안녕, 작은 홀씨야.
네 날개가 참 멋지구나. 이 보물들과 바꾸지 않을래?"


딱정벌레는 금빛 이슬을 내밀었어요.

"이건 숲에서 가장 귀한 빛이야. 넌 곧 떨어질 텐데,
이걸 가지면 이 숲에서 반짝이며 살 수 있어."


루루는 자신의 날개를 보았어요.

엄마 품을 떠나 날아온 길,

바람을 타던 기억,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


루루가 웃으며 말했어요.

"고마워. 딱정벌레야.

하지만 나는, 세상을 더 보고 싶어.

그건 무엇과 바꿀 수 없어."

딱정벌레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루루는 다시 날개를 펴고 숲 속 깊은 곳으로 날아갔답니다.


3장. 절벽 끝에서 낙하하다.

— 보고 싶은 엄마


루루는 마침내 숲의 끝,

높고 깊은 절벽에 도착했어요.

이제 더 이상 바람도, 길도 보이지 않았어요.

날개는 지치고,

배도 너무 고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잠이 오기 시작했어요.

눈꺼플이 무거워서 눈을 뜰 수가 없었죠.

"이제… 정말 끝인가 봐."


루루의 눈이 감겼고,

절벽 아래로 툭— 하고 떨어졌어요.

깊고 조용한 어둠 속,

아무 소리도, 빛도 없는 낙하.


그때였어요.

퐁!

무언가 따뜻한 것에 루루가 사뿐히 안겼고,

눈을 떠보니 노란 풍뎅이의 등에 타고 있었어요.

풍뎅이는 말했어요.

"늦지 않게 도착해서 다행이야. 난… 너의 엄마가 보낸 친구야."

"엄마가…?"

"그래. 네가 혼자일까 봐,

엄마가 바람에게 부탁했어.

루루가 바람을 잃으면 우리 아가를 대신 꼭 안아줘'라고."


루루의 눈가에 투명한 물방울이 맺혔어요.

지금, 누구보다 엄마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어요.

풍뎅이는 조용히 하늘을 향해 날았고,

루루의 지친 날개도 조금씩 다시 펼쳐졌지요.


멀리서,

민들레 엄마의 속삭임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어요.

"루루야 , 사랑스러운 내 아가.
넌 언제나 엄마 품 안에 있단다."

루루는 조용히 눈을 감았어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힘을 내었어요.

그리고 하늘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죠.


마침내,

노란 들판.

민들레 엄마가 루루를 기다리는 게 보였어요.

힘을 내서 바람을 타고

사랑하는 엄마의 품에 안겼어요.

엄마의 품은 너무 따뜻했어요.



에필로그.

다시 들판에 피어나다


며칠 후,

들판에 작은 싹이 피어났어요.

햇살을 닮은 노란 꽃.

그건 바로, 루루였어요.

루루는 이제 엄마처럼

작은 씨앗들을 품게 되었지요.


그리고 봄바람이 부는 어느 날,

루루의 아가들에게 말했어요.

"얘들아, 이제 너희 차례란다."


수많은 하얀 홀씨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어요.


그중 한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푸른 숲을 바라보았지요.

"엄마, 저 숲에는 누가 살아요?"

어쩌면,

또 다른 루루의 이야기가 막 시작되고 있는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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